- 남아프리카 연방의 탄생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에 케이프 식민지를 건설해 네덜란드인들을 이주시켰습니다. 네덜란드 장로교 신도들은 카톨릭의 종교 박해를 피해 케이프 식민지로 이동했고 케이프 식민지에서 원주민들을 축출하며 식민지를 확장했습니다. 그 후 1852년 네덜란드 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으며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라녜 자유국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으로 네덜란드 공화국이 프랑스 제국에게 점령당하자 대영제국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바타비아로 보내고 케이프 식민지를 일시 점령했습니다. 케이프 식민지의 네덜란드 장로교 신도들인 보어인들은 대영제국에 반발해 1880년 제1차 보어전쟁을 일으켜 트란스발 공화국으로 독립했고 1890년대 트란스발 공화국에서 막대한 양의 금과 다이아몬드를 발견해 자원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차지했습니다. 대영제국은 트란스발 공화국을 호시탐탐 노렸고 1899년 제2차 보어전쟁을 일으켜 1900년 트란스발 공화국을 점령했습니다.
보어인들은 영국군의 보어인 국가 점령에 반발했고 게릴라 전술로 영국군을 위협했습니다. 그러자 허레이쇼 허버트 키치너 참모총장은 청야 전술로 오라녜 자유국의 보어인 마을들을 모두 불태우고 보어인과 아프리카계 현지인들을 수용소에 강제로 보냈습니다. 보어인 병사들은 병사들을 지원할 민간인들이 사라지자 궁핍해졌고 결국 1902년 영국군에게 항복하면서 보어 봉기는 끝이 났고 1910년 남아프리카 연방이 건국되었습니다. 그리고 허레이쇼 허버트 키치너 참모총장은 대영제국의 영웅으로 등극해 런던London으로 금의환양했습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 연방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 마리츠 봉기
https://www.youtube.com/watch?v=lDi3bx1iOTc
1914년 8월 4일 대영제국이 독일제국에게 선전포고하자 대영제국의 자치령인 남아프리카 연방과 독일제국의 식민지인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는 긴장상태에 돌입했습니다. 양측 병력은 국경지대에 병력을 배치하며 적을 감시했고 아프리카 원주민의 이동을 통제했습니다. 다행히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연방은 서부전선의 전쟁에 휘말려 동맹국과 연합국의 전쟁으로 전쟁을 벌이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연방이 전쟁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남아프리카 연방의 보어인들은 영국인에게 지배를 받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네덜란드 공화국이 중립을 선포하며 전쟁에 참전하지 않자 보어인 독립을 외치며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제2차 보어 전쟁의 핵심인물이었던 마니에 마리츠는 남아프리카 연방이 병력을 서부전선의 영국원정군으로 보내는 것을 확인하고 보어 독립의 때가 왔다고 판단하고 1914년 9월 15일 트란스빌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에서 마리츠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 마리츠 봉기가 일어나자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는 보어 해방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남아프리카 연방에 선전포고하고 남아프리카 연방과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 전쟁의 시작
https://www.youtube.com/watch?v=BIz0UAEoZCk
독일령 남서아프리카가 마르츠 봉기를 지원하며 남아프리카 연방을 지탄하자 남아프리카 연방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침공을 계획했습니다. 남아프리카 연방군은 남서아프리카군이 침공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기 위해 병력을 급히 소집했고 뤼데리츠Lüderitz 만과 칼라하리Kalahari 사막의 한가운데인 잔드폰테인Sandfontein을 공격해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의 남부를 점령하기로 했습니다. 1914년 9월 19일 남아프리카 연방군은 뤼데리츠Lüderitz에 상륙을 시작했습니다. 남아프리카 연방군이 공격한 뤼데리츠Lüderitz는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철도선 중 남부 철도선의 시작역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적이 뤼데리츠Lüderitz를 점령하면 철도를 통해 남서아프리카 중부로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슈츠트루페Schutztruppe는 필사적으로 항전했고 남아프리카 연방군은 뤼데리츠Lüderitz 항구를 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내륙으로 진격하지 못했습니다.
1914년 9월 26일 남아프리카 연방군은 기병대대를 이끌고 국경을 넘어 칼라하리Kalahari 사막으로 진격했습니다. 슈츠트루페Schutztruppe는 남아프리카 연방군의 침공을 확인했고 국경을 넘어 공격하는 남아프리카 연방군의 측면을 공격하며 적의 보급을 방해했습니다. 남아프리카 연방군은 슈츠트루페Schutztruppe의 방해에도 잔드폰테인Sandfontein으로 진격했고 슈츠트루페Schutztruppe는 기관총 부대와 기병대로 남아프리카 연방군을 집중공격했습니다. 남아프리카 연방군은 슈츠트루페Schutztruppe의 공격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물 보급 부족에도 시달려 결국 후퇴했습니다.
-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의 포르투갈령 앙골라 침공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와 포르투갈령 앙골라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에도 국경을 열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 포르투갈령 앙골라에게서 식량을 수입했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포르투갈령 앙골라에게서 식량 수입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 왕국은 중립을 고수했고 포르투갈령 앙골라는 본국인 포르투갈이 중립국인 상황이므로 동맹국인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에 식량 수출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는 포르투갈령 앙골라의 의견을 존중하며 식량을 수입하지 않았지만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와 포르투갈령 앙골라는 이후에도 인적 교류를 활발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 관계를 급격히 바꾼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914년 10월 14일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와 포르투갈령 앙골라의 국경지역인 나우릴라Naulila에서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의 슈츠투르페Schutztruppe 부대가 포르투갈령 앙골라로 향했는데 이들은 정부의 허락없이 포르투갈령 앙골라 영토를 침범했습니다. 이에 포르투갈군은 무단으로 국경을 넘은 슈츠트루페Schutztruppe를 체포하려고 했습니다. 포르투갈군은 체포한 슈츠트루페Schutztruppe를 나우릴라Naulila 항구로 보냈고 이 과정에서 슈츠트루페Schutztruppe는 항의하다 서로 유혈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포르투갈군과 슈츠트루페Schutztruppe에서 사상자가 발생했고 슈츠트루페Schutztruppe를 지휘한 지휘관 세 명이 숨졌습니다.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정부는 이 사건으로 포르투갈령 앙골라를 비난했고 슈츠트루페Schutztruppe는 10월 19일 포르투갈령 앙골라의 쿠앙가르Cuangar에서 2명의 공무원을 사살하고 6명의 군관계자들을 사살했습니다.
둘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고 1914년 12월 18일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와 포르투갈령 앙골라 사이에 큰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슈츠트루페Schutztruppe 부대가 나우릴라Naulila의 포르투갈군을 공격했고 나우릴라Naulila를 점령했습니다. 이어 1915년 연초에 슈츠트루페Schutztruppe는 포르투갈령 앙골라의 국경을 침공해 일부 영토를 점령했습니다.
- 남아프리카 연방의 보어 진압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와 포르투갈령 앙골라가 갈등을 벌이는 사이 크리스티안 페데릭 베이어스가 남아프리카 연방의 마리츠 봉기를 진압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는 남아프리카 연방군을 이끌고 오례 자유국과 트란스발 공화국의 보어인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보어 봉기 가담자들을 발Vaal 강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민병대였던 보어군은 정규군인 남아프리카 연방군에게 무참히 진압되었고 발Vaal 강에서 항전하던 보어군도 1914년 12월 9일 남아프리카 연방군에게 항복했습니다. 남아프리카 연방군은 남아프리카 연방을 혼란에 빠뜨린 보어군을 모두 체포했고 남아프리카 연방에 평화를 이룩했습니다. 남아프리카 연방군의 다음 목표는 보어군을 지원하며 남아프리카 연방의 혼란을 유도한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였고 이들은 1915년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에 대한 복수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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