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전구/이탈리아 전선8 [이탈리아 전선: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 최후의 승전 1918년에 급격히 변한 전선 1918년 동부전선은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러시아 내전으로 사실상 붕괴되었습니다. 동맹국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동부전선을 정리했고 독일제국은 서부전선에 최후의 공세인 루덴도르프 공세를 준비하기 위해 병력을 끌어모았습니다. 독일제국은 이탈리아 전선에 배치된 스투름투르펜Strumtruppen을 비롯한 독일군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투입했고 이탈리아 전선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 병력만 남았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18년 붕괴 직전에 놓여 있었고 이탈리아 전선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탈영으로 제 살길을 찾아 떠났으며 군 장교는 병사들의 탈영을 막지 않았습니다. 반면 미합중국으로부터 서부전선에 미국원정군을 투입함을 약속받.. 2022. 3. 9. [이탈리아 전선: 카이저 카를 1세] 비운의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카를 1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카이저 프란츠 1세는 1914년 대전쟁이 터질 때 고령의 나이였습니다. 그는 카이저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전제군주제의 카이저였고 그가 부재하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마비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때문에 프란츠 요제프 1세는 그의 후계자를 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정은 비극적이었고 그의 후계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의 유일한 아들 루돌프 황태자는 아버지와의 심각한 갈등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후계자로 임명했지만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신분이 낮은 여성과 귀천결혼을 해 그의 자식에게는 제위 계승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1914년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하며 사망했습니다. 결국 카이저.. 2022. 3. 9. [이탈리아 전선: 카포레토 전투] 이탈리아 왕국의 대위기 연합국의 합동공세 1917년 초 서부 전선에서 니벨공세가 대실패로 끝난 후 페르디낭트 포슈가 프랑스군 총참모장으로 등극했습니다. 페르디낭트 포슈 프랑스군 총참모장은 1917년 루이지 카르도나 이탈리아군 총참모장을 만나 서부전선과 이탈리아 전선에서 합동공세를 의논했습니다. 1916년의 브루실로프 공세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귀멸되면서 1917년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독일군의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했고 프랑스 제3공화국과 대영제국은 이탈리아 전선에서 공세를 시작하면 독일군은 서부전선과 이탈리아 전선 두 전선을 상대하느라 병력이 분산되어 버티지 못하고 돌파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루이지 카르도나 이탈리아군 총참모장은 5월 초에 이손초Isonzo 공세를 할 것을 약속했고 프랑스 제3공화국과 대영제국은 이탈.. 2022. 3. 8. [이탈리아 전선: 하얀 전쟁] 흰눈 위의 산악 작전 자연요새 알프스Alpi 산맥은 이탈리아 왕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경 지역에 있는 산맥지대로 험준한 산맥은 각국에게 자연 방어물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대병력이 충돌하는 주요 전투는 험준한 산맥이 아닌 이손초Isonzo 강가 혹은 고원지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험준한 알프스Alpi 산맥으로 적이 대규모 기습병력을 파병해 통과해 기습 우회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아무리 험준한 산길이라 하더라도 적국의 침공을 감시해야 했습니다. 양측 병력은 소규모 병력으로 분산해 험난한 산맥을 넘어다니며 국경을 감시했고 한파와 눈 등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병사를 보호하기 위해 땅굴이나 건축물 등 피난로를 만들었습니다. 양측 병력.. 2022. 3. 8. [이탈리아 전선: 트렌티노 공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역습 베르됭Verdun 전투 1916년 2월 독일제국은 서부전선의 베르됭Verdun 요새 지대로 대규모 공세를 가하면서 대전쟁 동안 벌어진 전투 중 최대 전투인 베르됭Verdun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급작스러운 대공세를 맞이한 프랑스 제3공화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고 조제프 조프르 프랑스군 총참모장은 연합국에게 동맹국에 대한 공세를 촉구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은 조제프 조프로 프랑스군 총참모장의 요구를 받아들여 다섯번 째 공세를 준비했습니다. 허나 이탈리아군은 갑자기 공세를 준비하느라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지 못했고 급하게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제5차 이손초 전투 루이지 카도르나 이탈리아군 총참모장은 1915년에 시도한 공세와 동일하게 톨민Tolmin과 고리치아Gorizia를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야.. 2022. 3. 8. [이탈리아 전선: 제1~4차 이손초 전투] 이탈리아군의 부진 이탈리아 왕국의 목표 연합국의 승전에 큰 공헌을 하고 싶었던 이탈리아 왕국은 1914년 러시아 제국이 실패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부 침공 작전을 성공해 빈Wien을 함락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멸망시킨 뒤 러시아 제국과 함께 독일제국을 압박한다는 원대한 작전을 구상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국경지대의 알프스Alpi 산맥을 제외하고는 평야 지대였고 평야는 공세에 최적화된 장소였습니다. 허나 평원 앞에 놓인 알프스Alpi 산맥은 험준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게 자연 방패물이 되었고 이탈리아군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방어선을 돌파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군은 헝가리 대평원Alföld으로 진격하기 위해 먼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주요 군사거점인 트리에스테Trieste 항구를 점령하기로.. 2022. 3. 7.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