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1차 세계대전 종료

[제1차 세계대전 종료: 대전쟁의 끝] 전쟁이 남긴 것

by 롱카이. 2022. 5. 9.
  • 지옥같던 전쟁의 종료

뉴욕 타임지에 기재된 대전쟁의 끝
뉴욕 타임지의 대전쟁이 끝났다는 기사

1914년 7월 30일 시작되어 수많은 국가들을 수렁으로 빠뜨린 제1차 세계대전이 1918년 11월 11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항복으로 마침내 끝을 맺었습니다. 역사상 유래없는 큰 전쟁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은 전장의 군인들 뿐만 아니라 후방의 민간인들도 전쟁에 참여하는 대규모 전쟁이었습니다. 후방의 민간인들은 전쟁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농촌과 공장에서 생산물을 대량 생산해야 했고 식량이 전쟁터의 군인들에게 최우선으로 지급됨에 따라 식량 배급제로 국가가 정한 식량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마저도 제1차 세계대전이 장기화되면서 후방의 민간인들은 점차 줄어들고 맛이 없는 식량을 배급받았고 끝나지 않는 전쟁과 막대한 희생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과 민간인 모두 상당히 지쳤습니다.

 

대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대영제국 민중
대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대영제국 민중

그리고 1918년 미국원정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연합국으로 급격히 기울어졌고 동맹국이 연합국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줄줄이 항복하면서 1918년 11월 11일 마침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을 맺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종료는 누군가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던 수렁에서 벗어난 것이었고 누군가에는 새로운 질서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앚아간 끔찍한 비극이었다는 것입니다.

 

 

 

  • 제1차 세계대전 사상자

제1차 세계대전 징병률 지도
제1차 세계대전 국가별 징병률

전세계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해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은 대규모의 병력과 물자를 동원한 총력전이었습니다.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에 가담한 국가들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야 했고 전체 인구의 상당 부분을 병력 동원에 투입했습니다. 때문에 국가들은 보통 전체 인구의 15% 이상을 동원했고 이 병력들의 상당수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국가별로 1913년과 비교한 제1차 세계대전 경제력 비교
1913년과 비교한 국가별 제1차 세계대전 GDP 변화

그리고 유럽 국가들은 국가 경제의 중추인 젊은이들을 전쟁에 동원해 경제가 일시적으로 마비되었습니다. 국가의 모든 산업은 군수 산업 위주로 돌아갔고 노동력은 해가 갈 수록 부족해졌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동안 유럽 강대국들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고 국가의 재정을 전쟁 비용으로 소모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국가 재정은 빠르게 소모되었고 참전국의 경제는 침체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식량부족
제1차 세계대전 식량 생산률

제1차 세계대전 전쟁에 동원된 이들은 한 국가의 중추 역할을 해야 하는 젊은 세대들로 젊은 남성은 전쟁터의 군인으로, 젊은 여성은 간호사로 동원되었습니다. 또한 국가의 모든 산업은 오직 전쟁을 위해, 승리를 위해 군수산업으로 운영되었고 인간이 기본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산업은 상당수 약화되었습니다. 거기에 대영제국은 동맹국의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 동맹국을 해상봉쇄해 동맹국으로 향하는 자원과 식량을 차단했고 독일제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펼쳐 대영제국을 해상봉쇄했습니다. 동맹국과 연합국은 서로의 생명줄을 위협하는 치킨게임을 펼쳤고 그 과정에서 식량 수입과 생산률은 해가 갈 수록 낮아졌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장기화되자 국가에 식량부족 문제가 대두되었고 몇몇 국가에서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식량 배급을 받지 못하고 기아로 사망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유럽 사망자
제1차 세계대전 유럽 사망자

그리고 전쟁터에서는 고도로 발달한 무기로 사상자 비율이 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로 발생했습니다. 기관총은 수많은 병사들을 도륙했고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전술은 병사들의 사상률을 크게 높였습니다. 그리고 군 지휘관들은 높은 사상률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위해서는 병사들을 소모품처럼 축차투입하는 소모전만이 승리를 위한 전술임을 깨달았고 더 많은 병사들과 무기를 소모해 피의 승리를 이끌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잠깐 쓰고 버려지는 소모품 신세였고 수많은 이들이 헛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세계 사상자 비율
제1차 세계대전 전세계 사상자 비율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과 전쟁을 치루는 연합국은 식민지 병사들을 전쟁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장기화된 저출산으로 독일제국에 비해 인구가 낮았던 프랑스 제3공화국은 서부전선에서 독일제국에게 소모전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프랑스 제3공화국의 식민지인 알제리, 세네갈, 인도차이나에서 병력을 동원해 서부전선에 집중 배치했습니다. 또한 프랑스군은 해외에서 작전을 펼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적용해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는 알제리, 세네갈 출신의 외인부대를 파병해 프랑스군 소속으로 오스만군과 전쟁을 벌이게 했습니다. 대영제국은 전세계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마자 대영제국의 자치령과 식민지에 참전을 강력하게 권유했습니다. 대영제국은 적은 본토 인구와 모병제로 더 적은 영국군 병력 수를 만회하기 위해 자치령과 인도제국에 대전쟁에 참전하면 독립을 대가로 해준다고 약속했고 캐나다 자치령, 뉴펀들랜드 자치령, 오스트레일리아 제국, 뉴질랜드 자치령, 영국령 인도제국에서 수많은 자원병을 모집할 수 있었습니다. 대영제국은 자원병을 서부전선과 발칸전선, 대오스만 제국 중동전선, 아프리카 전선에 파병해 사방에서 동맹국과 전쟁을 치뤘습니다. 그 결과 대영제국 본토 외 자치령과 식민지 소속의 수많은 병사들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제1차 세계대전은 전쟁터 외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전세계 곳곳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 제1차 세계대전의 끝과 새로운 질서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유럽 지도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유럽 지도

제1차 세계대전은 동맹국의 패배로 끝이 났고 전쟁에서 패배한 동맹국은 재기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짓밟혔습니다. 동맹국 중 가장 먼저 항복한 불가리아 차르국은 영토 대부분을 보존받는 조건으로 지중해 해안지대를 모두 상실해 불가리아 차르국의 무역항 상당수를 상실하고 흑해 무역만 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무너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연합국에 의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강제 분리되었고 체코슬로바키아와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에 영토를 빼앗겼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멸망했고 튀르크 민족은 영토를 갈기갈기 분할당할 민족 최대 위기를 맞이했지만 새롭게 등장한 튀르크 공화국이 튀르크 독립전쟁에서 승전해 오스만 제국의 핵심영토를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항복한 독일제국은 독일제국 해군을 강제 해체당하고 상당한 영토를 상실했습니다.

 

독일제국 브레스트-리토프스크 협정 미틀오이로파
미틀오이로파Mitteleuropa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는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동맹국에게 항복한 대가로 러시아와 독일제국 사이의 완충지역인 미틀오이로파Mitteleuropa 영토를 헌납해야 했습니다. 독일제국을 주축으로 하는 동맹국은 미틀오이로파Mitteleuropa에 신생 괴뢰국들을 만들었고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서부와 남서부에 막대한 영토를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적군은 상실한 미틀오이로파Mitteleuropa를 포기하지 않았고 서방공세로 미틀오이로파Mitteleuropa 국가들을 점령해 붉은 군대의 영역으로 흡수를 시도했습니다. 때문에 러시아 내전은 오랜 기간 참혹한 국제전이 되었고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막대한 출혈 끝에 러시아 제국 고토의 대부분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동전선 전후 지도
제1차 세계대전 중동전선 전후 지도

또한 중동지역은 중동지역을 지배한 오스만 제국이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에게 밀려나 아랍 지역의 영토를 상실했습니다. 아랍인들은 오스만 제국이 떠난 자리에 아랍 민족국가 건립을 희망했지만 식민지 확장을 원했던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에게 배신당했습니다.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위임통치령이라는 명목으로 아랍인의 영토를 지배했고 아랍인들은 튀르크인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유럽인의 지배 하에 놓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 지도

아프리카 역시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제국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이 승전국의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는 민족주의 광풍이 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여전히 유럽 강대국의 식민지배를 받는 지역으로 남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엄청난 출혈을 받은 유럽 식민제국은 아직 건재했고 아프리카의 봄은 여전히 먼 이야기였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