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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합작2

[더 큰 전쟁으로: 제1차 국공내전] 죽지 않은 중국공산당 중국 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의 국공합작 위안스카이의 북양정부가 중화민국을 혼란에 빠뜨리자 쑨원은 중화민국 남부로 이동해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동맹을 맺고 1912년 8월 25일 난징南京에서 국민당을 창당하고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출범했습니다. 이에 위안스카이는 1913년 국민당을 해산시켰고 쑨원은 광저우廣州로 이동해 중화혁명당을 조직했습니다. 위안스카이 사후 북양정부가 여러 군벌로 분열하자 쑨원은 북벌을 주장했고 5.4운동이 발발하자 1919년 10월 10일 중화혁명당을 국민당으로 재정한 후 세력을 모았습니다. 1924년 쑨원은 삼민주의를 외치며 중화민국 통일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당은 정예군벌인 북양정부 군벌에 못미치는 작은 군벌세력으로 이들을 대항하려면 더 강한 강자가 필요했습니다. 이때 국민당에.. 2022. 12. 13.
[더 큰 전쟁으로: 영풍함 사건] 천하를 논하다 제2차 호법운동 1915년 돤치루이의 안휘군벌을 정벌하려고 시작한 제1차 호법운동(호법전쟁/호국전쟁)이 실패하자 쑨원은 상하이上海로 피신했습니다. 그는 상하이上海에서 은거하며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그러다 1919년 5.4운동이 천하를 뒤흔들자 쑨원은 중화 독립운동에 대한 희망을 다시 품고 1919년 10월 10일 중국국민당을 창설했습니다. 그리고 세력을 모아 다시 한번 북벌해 중화민국을 통일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쑨원과 천중밍 쑨원이 상하이上海에서 은거하는 동안 광둥廣東지방은 계계군벌 루룽팅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루룽팅은 계계군벌 세력을 확장하며 돤치루이의 안휘군벌에 비견하는 군벌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허나 루룽팅은 국정을 농단하며 독선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의 세력은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이에 .. 2022.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