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연표-전쟁 순서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첨부했어요.
- 우유부단한 카이저와 호전적인 군부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을 침공하면서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선전포고 전후로 전쟁을 국지전에서 멈추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먼저 러시아 제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최후통첩문을 세르비아 왕국과 전세계에 공표하자 러시아 제국 내에서 세르비아를 지원할 지리를 두고 차르와 재상 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차르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의 우방으로 세르비아를 보호할 이유는 있지만 사라예보 사건은 인민이 황제 가문을 공격한 사건이라 사라예보 사건에 회의적인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르비아 왕국을 지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재상과 군부는 유일한 우방 세르비아를 어떻게든 잃어서는 안된다며 세르비아를 도울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차르는 부분 동원령을 내려 세르비아 왕국을 돕기로 했습니다.
전쟁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독일제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유럽 대륙의 절대강국 독일제국의 지원을 세계에 알려 러시아 제국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독일제국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독일제국도 그 의도를 충분히 알았고 카이저 빌헬름 2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백지수표를 주며 지원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빌헬름 2세는 변덕이 심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백지수표를 발급해주고 노르웨이 요트 여행을 떠났습니다. 고국으로 귀국하던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선전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변덕을 부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전쟁을 중단하라고 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정작 전쟁이 시작되자 카이저는 전쟁을 두려워했던 것이었습니다. 카이저의 변심에 군부는 황당해하며 카이저의 명령을 무시했습니다.
카이저는 분위기를 눈치채고 이번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침공을 멈추라는 지시였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미 세르비아 침공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독일제국의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독일제국의 군부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공을 확인하고 바로 프랑스 공격 준비에 나섰습니다. 독일제국은 가장 위험한 적 프랑스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가 공격하기 전 빠르게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독일 군부는 독일이 양면전쟁에 처한 상황에서 기습공격으로 프랑스를 빠른 시간 내에 굴복시켜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을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슐리펜 계획을 세워 속전속결 침공 계획을 세웠습니다.
프랑스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한 이후 프랑스-독일 국경에 강력한 요새를 건설했습니다. 독일제국의 2차 침공에 대비한 방어책이었습니다. 독일제국은 프랑스 요새지대를 정면돌파는 기습공격으로 좋은 작전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있는 중립국 룩셈부르크 공국과 벨기에 왕국을 지나 텅 빈 프랑스 국경을 빠르게 돌파하려고 했습니다. 이 작전 이름을 작전 수립자 이름을 따 슐리펜 계획이라 했습니다.
문제는 벨기에 왕국이었습니다. 룩셈부르크 공국과 달리 벨기에 왕국은 대영제국이 깊이 개입되어있었습니다. 대영제국은 부상하는 독일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독일, 프랑스, 영국 사이에 중립국을 만들 것을 제안했고 그 제안으로 만들어진 것이 벨기에 왕국 중립국화였습니다. 그리고 중립국은 외부 침공에 취약해지므로 대영제국이 벨기에 왕국을 보호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때문에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면 대영제국과 충돌은 불가피했습니다.
독일 군부도 이를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독일군부는 당장 프랑스를 기습하기 위해 벨기에 침공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군부는 벨기에 왕국에게 독일군의 영내 통과를 허용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만약 벨기에 왕국이 요청을 거절한다면 벨기에 침공은 불가피했고 대영제국을 전쟁에 끌여들일 수 있었습니다. 카이저 빌헬름 2세는 이를 막고 싶어했지만 독일 군부는 프랑스 기습에 혈안이었습니다.
- 독일제국의 최후통첩
러시아 제국은 세르비아 왕국을 돕기 위해 부분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부분 동원령은 잘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제국의 전쟁준비는 늦춰지고 있었습니다. 이 사태를 본 러시아 외무장관은 차르 니콜라이 2세에게 부분동원령에서 총동원령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러시아 군부는 이에 호응하며 차르에게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차르는 결국 총동원령을 선포했습니다.
차르가 총동원령을 선포하자 독일제국의 카이저 빌헬름 2세가 차르에게 총동원령 철회를 부탁했습니다. 빌헬름 2세와 니콜라이 2세는 사촌지간이었고 빌헬름 2세는 독일과 러시아의 전쟁을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하면 독일 군부가 러시아와의 전쟁을 주장하고 카이저는 이를 막을 수 없으니 제발 총동원령을 철수하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이에 차르는 총동원령을 취소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외무장관은 차르를 붙잡고 설득했고 차르는 1914년 7월 30일 다시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독일군부는 러시아의 총동원령을 확인하고 속으로 좋아하며 전쟁준비를 끝냈습니다. 1914년 7월 31일 독일군부는 프랑스에게 총동원령 금지를, 러시아 제국에게 총동원령 철회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기한은 24일이었습니다. 당연히 프랑스와 러시아는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1914년 8월 1일 독일제국 군부에 떠밀린 카이저 빌헬름 2세는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독일은 카이저의 명에 따라 빠르게 전쟁 준비를 마쳤습니다. 프랑스와 전쟁하려는 서부전선과 러시아와 전쟁하려는 동부전선에 배치된 병력은 기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당일 4시 카이저는 영국에서 온 전보를 받았습니다. 영국은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지 않을 시 전쟁에 중립을 지키겠다는 전보였습니다. 카이저는 또 변덕을 부렸습니다. 프랑스와의 전쟁 취소를 명했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카이저의 말을 묵살했습니다. 슐리펜 계획의 지도자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는 모든 서부전선 병력을 동부전선으로 이동시키라는 카이저에게 서부전선 병력은 이미 출발했으니 막을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카이저는 카이저의 명에 반하는 몰트케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독일 병력은 프랑스를 향해 이동했습니다.
- 벨기에 침공과 대영제국의 참전
독일제국은 룩셈부르크와 벨기에 왕국에 독일 병력 통행권을 요구했습니다. 작은 공국이었던 룩셈부르크는 별말없이 독일에게 통행권을 주며 국토를 짓밟혔습니다. 하지만 벨기에는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독일제국에게 열세였던 벨기에 왕국의 국왕 알버트 1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요구를 묵살하며 독일 침공에 대비했습니다. 그리고 요새를 지어 독일제국의 침공에 맞써 싸웠습니다. 독일군은 벨기에의 저항을 맞이하며 속전속결의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독일이 프랑스와 전쟁을 시작할 당시에도 대영제국 내각은 참전파와 중립파로 나뉘어 국론을 논의했습니다. 대부분은 중립파로 유럽 대륙 내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영국은 프랑스, 러시아와 삼국협상을 맺었지만 굳이 프랑스와 러시아 문제에 개입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벨기에가 독일에게 침공당하자 내각 여론은 급격히 참전파로 돌아섰습니다. 대영제국은 프랑스와 러시아를 도와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심하고 1914년 8월 4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참전
1914년 8월 1일 독일제국이 러시아 제국에 선전포고한 이후 8월 5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러시아 제국에 선전포고했습니다. 이로써 독일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동맹국과 러시아 제국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선전포고를 시작으로 광대한 유럽 동부 평야에서 포성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연이은 전쟁의 패배로 국력이 휘청였습니다. 더불어 청년 튀르크당을 필두로 한 튀르크 민족주의는 다민족 체제인 제국을 위태하게 만들었습니다. 튀르크 민족주의가 발발하자 제국의 피지배 민족들도 자기들의 민족주의를 외치며 제국 해체를 요구했습니다. 제국은 피지배 민족들을 학살하며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어수선한 내외 상황은 제국이 전쟁에 신경쓰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오스만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는 중립을 지키고 싶어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표면적으로 중립을 지켰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세르비아 침공 당일 오스만 제국과 독일제국은 비밀동맹을 맺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친독일파들이 러시아 제국의 침공에 대비해 독일과 비밀동맹을 맺었고 친독일파 외에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제국의 신민들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이 비싼 금액을 주고 영국에서 구입한 함선을 영국이 되가져가자 제국 내 신민들 사이에서 반영감정이 고조되었고 제국의 여론은 반영 친독으로 기울었습니다. 이에 오스만 제국은 독일 동맹국에 가입해 협상국과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 기타 국가들의 연쇄참전
유럽 강대국들의 전쟁이 시작되자 다른 국가들은 일단 중립을 외치며 눈치를 보고 어느 편에 들지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각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진영에 참여했습니다.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일본제국은 영일동맹을 명분으로 세우며 협상국 편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독일제국 식민지를 공격하며 일본제국의 영향력을 크게 키워갔습니다.
삼국동맹의 일원이었던 이탈리아 왕국은 전쟁 시작 후 약 1년간 중립을 지키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공격하고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협상국 편에 들었습니다.
불가리아 왕국은 제2차 발칸전쟁 당시 러시아 제국에게 버림받았고 갈리폴리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이 승리하자 동맹국에 가입해 협상국 편인 발칸 국가들에게 복수를 감행했습니다.
루마니아 왕국은 전쟁 시작 후 2년동안 중립을 지켜오다 뒤늦게 러시아 제국 편에 서 전쟁을 시작했고 뒤늦은 참전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 강대국이 전쟁에 대거 참전하면서 큰 규모의 전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유럽 대륙과 유럽 식민지 전역에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1756년 유럽 대륙 전체와 식민지를 전쟁터로 만든 7년 전쟁의 재림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1.5세기 후 철도와 무기를 비롯한 기술의 발전은 7년 전쟁과는 비교되지 않는 거대하고 파괴적인 전쟁을 불렀습니다. 수많은 유럽 본토와 식민지 인민들이 전쟁에 휘말렸습니다.
북유럽 국가들과 스페인,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은 중립을 지키며 전쟁에 직접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간접적으로 전쟁에 영향을 주며 역으로 전쟁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극소수의 국가들을 제외한 전세계 모든 국가들은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을 시작으로 줄줄이 도화선에 불붙듯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전세계가 오직 한 전쟁에 개입한 대전쟁(the Great War)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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