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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구

[제1차 세계대전: 중동전구]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불꽃

by 롱카이. 2022. 3. 21.
  • 중동전구

https://www.youtube.com/watch?v=fNzA_Ct-Q6Q

중동전구 하루 변화



  • 부흥을 꿈꾼 제국

독일제국-오스만 제국 비밀동맹
독일제국-오스만 제국 비밀 동맹

오스만 제국은 20세기 초 이탈리아-튀르크 전쟁과 발칸전쟁으로 국고를 탕진하고 영토를 상실했습니다. 더불어 대영제국 등 유럽 강대국의 자본은 오스만 제국 깊숙이 침투했고 오스만 제국의 내부 개혁을 실패해 오스만 제국의 기세는 기울어져갔습니다. 발칸 전쟁에서 패배해 유럽 영토 전체를 잃은 오스만 제국의 내부에서 제국의 생존을 위해 개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오스만 제국은 군사 개혁을 비롯한 모든 방면에서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습니다. 허나 오스만 제국은 개혁을 시행하기 위해 인재를 초청해 개혁을 배워야 했는데 당대 강대국이자 선진국이었던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은 오스만 제국의 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오스만 제국을 도울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오스만 제국의 성장을 철저하게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은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의 적이면서 강대국이자 선진국인 독일제국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독일제국 역시 동맹국을 확장하고 대영제국이 지배하는 식민지를 우회해 대양으로 나가기 위해 중동의 바다를 지배한 오스만 제국의 요청에 승낙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군사 개혁을 원했고 독일제국 역시 오스만 제국의 군사력을 강화해 함께 대영제국의 군대에 대항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에 각종 고문단과 기술자를 파견했습니다. 1914년 8월 2일 대전쟁이 터진 직후 독일제국과 오스만 제국은 비밀협정을 체결해 오스만 제국은 동맹국에 가입하고 독일제국은 오스만 제국에게 군사 고문단을 파견했습니다.

1914년 오스만 제국 영향권
1914년 오스만 제국 영토(진녹색)과 간접지배지역(연녹색)

오스만 제국의 동맹국 가입 소식은 협상국에게 긴장감을 주었습니다. 대영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러시아 제국 삼국협상 가입국은 독일제국의 우방이 늘어날 경우 협상국에게 부담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동맹국에 가입한 오스만 제국은 그 지정학적 위치 그 자체로 협상국에게 위협이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와 흑해의 관문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차지하고 있었고 대영제국&프랑스 제3공화국과 러시아 제국의 무역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거쳐 흑해와 지중해를 통과해 이루어졌습니다.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뛰어난 산업 생산력을 보유해 병기를 자체 생산할 수 있었지만 농업의 쇠퇴로 식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러시아 제국은 뒤늦은 산업혁명으로 산업 생산력이 저조해 병기를 자체 생산하지 못하고 수입에 의존해야 했지만 우크라이나 흑토지대를 비롯한 광대한 농지를 보유해 식량 생산량이 높았고 유럽 최대 식량수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삼국협상 가입국은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러시아 제국에게 신무기와 포탄 등 병기를 수출하고 식량을 수입했고 러시아 제국은 두 서유럽 강대국에게 식량을 수출하고 신무기와 병기를 수입했습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동맹국에 가입한 후 보스포루스 해협에 협상국 상선의 출입을 금했고 삼국 협상 가입국은 무역로가 막혔습니다. 더불어 오스만 제국은 독일제국의 지원 하에 흑해의 주인 자리를 탈환하려고 했고 러시아 제국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이로서 흑해 해전이 발발했고 러시아 제국은 오스만 제국에게 공격당했습니다.


  • 석유와 전쟁

제1차 세계대전 오스만 제국 지도
오스만 제국과 주변 열강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대영제국을 비롯한 유럽 강대국들은 전쟁병기를 작동시킬 에너지 자원으로 석유를 선호했습니다. 석유는 기존의 에너지 자원인 석탄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액체인 특성 덕에 수납공간도 석탄에 비해 작았고 무게도 작았습니다. 더불어 석탄과 달리 꾸준히 에너지 공급이 가능했고 때문에 석유는 차량, 전함 등 운송수단에 이용되었습니다. 특히 비행기는 동체가 작고 동체 내구도가 약하며 엔진 출력량이 적어 무거운 석탄 대신 가벼운 석유로만 기동이 가능했습니다. 항공기는 전쟁의 항공정찰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항공기의 연료인 석유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불행히도 1914년 당시 확인된 석유 매장지는 카스피 해 인근 지역으로 오스만 제국의 북동부에 위치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카자르 제국의 이권을 강탈하며 카스피 해 인근 지역에 경제적 영토를 획득해 석유를 무상으로 채굴해갔고 오래 전 장악한 캅카스 지역에서 채굴되는 석유를 이용했습니다. 대영제국 역시 카자르 제국의 재상들에게 로비활동을 하며 석유 무상 채굴권을 획득해 카자르 제국에게서 석유를 채굴해갔습니다. 1914년 석유 채굴지는 러시아 제국의 카스피 해와 카자르 제국에 집중되어 있었고 오스만 제국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제국의 북동부에 있는 석유 체굴지를 노렸습니다. 러시아 제국과 대영제국 역시 석유 체굴지를 잃지 않으려고 했고 오스만 제국과 협상국의 전쟁은 검은 기름에 의해 발발했습니다.


  • 신앙과 이념

기도하는 무슬림과 초승달
기도하는 무슬림과 초승달

오스만 제국은 중동의 강자로 메카مكة المكرمة와 메디나المدينة المنورة를 차지하고 스스로 칼리파국으로 선포했습니다. 칼리파خليفة는 이슬람 세계의 종교 최고 권위자로 이슬람 세계의 행정을 담당했습니다. 초창기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의 맘루크 술탄국을 멸망시키고 맘루크 술탄국의 칼리파를 콘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로 이주시켰을 뿐 실권없는 칼리파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허나 러시아-튀르크 전쟁으로 오스만 제국의 권위가 추락하자 오스만 제국은 제국의 지배자인 술탄이 종교 지도자인 칼리파를 겸하는 술탄-칼리파제를 실시해 칼리파국을 선포했습니다. 허나 칼리파خليفة는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부터 권위를 상실하고 상징적 존재로 잔존했습니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의 칼리파에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고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종교관을 보여주는 아야 소피아
오스만 제국의 종교관을 잘 보여준 아야 소피아

또한 오스만 제국은 초창기부터 이슬람 국가 건립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스스로 제3의 로마라고 생각했으며 이슬람을 국교로 하되 동방 정교회와 가톨릭 등 다른 종교도 박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스만 제국은 동방 정교회를 믿는 유럽 및 아르메니아 민족을 2등 신민으로 간주하고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 쿠르드인 등의 민족을 3등 신민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는 무슬림은 그 어떤 구분 없이 알라الله의 신실한 백성으로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슬람의 교리에 반한 것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1등 신민인 튀르크인과 차별대우를 당하는 3등 신민인 쿠르드인과 아랍인은 오스만 제국은 쿠란القرآن의 가르침과 달리 같은 무슬림을 차별하는 악독한 국가 취급했습니다.

오스만 제국 청년 튀르크당 혁명
청년 튀르크당 혁명

튀르크인의 다른 신민 탄압은 오스만 제국에 민족주의 열풍이 불며 더 심해졌습니다. 1889년 술탄 압둘 하미드 2세가 러시아-튀르크 전쟁을 명분으로 오스만 제국의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전제군주제를 부활하려고 하자 제국의 진보 개혁가들은 청년 튀르크당을 개설해 술탄 압둘 하미드 2세에 반발해 청년 튀르크당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서유럽에서 교육받은 진보 개혁가들은 민족주의에 고무되어있었고 오스만 제국 위에 튀르크 민족 국가 건립을 추구했습니다. 문제는 제국이 된 오스만 제국에는 튀르크 민족 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 민족, 아시리아 민족, 쿠르드 민족, 아랍 민족 등 다양한 민족이 혼재해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오스만 제국을 각 민족들의 영토를 지정해 분할하는 것은 청년 튀르크당 당원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청년 튀르크당은 오스만 제국 영토에서 소수민족을 제거하는 인종청소를 택했고 콘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 등 대도시와 특정 민족들이 모여 사는 지역을 습격해 학살하며 인종청소를 자행했습니다.

오스만 제국 쿠르드 기병
쿠르드 민족

피지배민족은 학살로 인종청소를 시도하는 튀르크 민족에게 적개심을 품었고 이에 반발해 봉기를 일으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피지배민족은 수백년간 지배민족에게 지배를 당했고 쿠르드 민족과 아시리아 민족, 아르메니아 민족은 여러 국가들에게 분할당한 체 수백년의 시간이 흘러 서로 동질감을 가지지 못했고 아랍 민족은 유목 생활 특성 상 규합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민족 내에서도 일부는 오스만 제국에게 충성했고 일부는 민족주의 독립을 주장했으며 일부는 연합국에 가담하는 등 서로 다른 세력으로 분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튀르크당의 활동으로 오스만 제국의 피지배민족들은 민족주의에 대해 알게 되었고 민족 국가 건립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석유의 저주

바쿠 석유 유전지대
바쿠 유전지대

중동 전선은 비단 오스만 제국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중동 전선의 가장 큰 격전지는 러시아 제국과 카자르 제국의 영역인 캅카스Кавказ 일대로 캅카스Кавказ 동부 카스피Каспий 해 근처에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유전지대가 존재했습니다. 그곳은 바쿠Баку 유전지대로 20세기 초 급격하게 에너지 자원으로 성장한 석유는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면서 무거운 전함과 전차, 가벼운 항공기를 운용하기 위해 필수 자원이 되었습니다. 바쿠Баку를 차지한 러시아 제국은 연합국에게 석유를 제공하면서 연합국을 전쟁에서 유리하게 만들었지만 1916년 러시아 제국이 붕괴 직전에 놓이고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면서 수많은 세력들이 바쿠Баку 유전지대를 점령하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고 캅카스 지대는 전보다 더 큰 화마에 휩싸였습니다.


  • 오스만의 철도

오스만 제국 헤자즈 철도
오스만 제국의 헤자즈 철도

청년튀르크당의 혁명으로 개혁을 진행할 수 있었던 오스만 제국은 근대화의 필수요소인 철도건설에 열을 올렸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다른 유럽 기독교 국가들에 비해 근대화가 많이 늦은 만큼 철도 건설을 빨리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은 산업 생산력이 높지 않았고 철도에 대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은 철도를 자체 부설하는 것 대신 철도기술을 보유한 유럽 국가들의 철도회사의 도움을 받고자 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철도계획을 유럽에 발표했고 경매에 부쳐 유럽 철도회사들을 모았습니다.

오스만 제국 철도선
오스만 제국의 철도선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는 제국의 서부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제국의 전범위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동부는 술탄의 중앙권력이 미치지 못했고 자치정부가 대리 통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 동부의 자치 정부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을 배신하고 대영제국과 힘을 합치려고 했고 오스만 제국은 제후국의 배신과 영토 상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은 수도 콘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의 병력과 인력을 동부지역으로 빠르게 파견해 신속하게 중앙 정부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방정부를 감시하고 싶어했고 철도는 인원을 빠르게 수송하는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를 중심으로 제국의 모든 곳으로 철도를 연결하려고 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스스로 이슬람 종주국을 선포했고 때문에 다른 곳은 잃어도 이슬람에게 상징성이 큰 메카مكة المكرمة와 메디나المدينة المنورة, 쿠드스(예루살렘)القدس만큼은 보유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은 헤자즈 철도를 건설해 콘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에서 출발해 쿠드스القدس을 거쳐 메카로 가는 철로를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제국의 전폭적 지원 하에 베를린-바그다드 철도 건설을 추진했지만 베를린-바그다드 철도 공사가 진행되는 와중 대전쟁이 터지면서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 다중 전선

제1차 세계대전 중동전선
제1차 세계대전 중동 전선

러시아 제국과 대영제국에 포위된 오스만 제국은 제국의 여러 곳에서 연합국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 제국과는 캅카스 지역과 카자르 제국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고 대영제국과는 메소포타미아 전선과 시나이-팔레스타인 전선, 갈리폴리 전선, 남아라비아 전선에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연합국은 오스만 제국을 유럽의 병자 취급했지만 오스만 제국은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된 연합국의 공격에 쉽게 패배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연합국을 상대로 공세를 하는 등 제국의 위엄을 보여주었습니다.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은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하기 전 전 이미 망국의 길로 접어든 오스만 제국은 전쟁에서 빨리 항복할 것으로 예상했고 예상 외의 오스만군의 선전에 연합국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1914년에 전쟁을 시작해 1918년까지 전쟁을 치뤘지만 다른 동맹국과 마찬가지로 연합국의 물량에 밀려 결국 항복했습니다. 그럼에도 오스만 제국은 마지막 순간까지 제국의 위엄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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