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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전구/북아프리카 전선

[북아프리카 전선: 자안 전쟁] 베르베르 정신

by 롱카이. 2022. 4. 19.
  • 프랑스령 모로코 자안 베르베르인의 저항

페스 조약으로 분할된 모로코 술탄국
페스 조약으로 분할된 모로코 술탄국(연녹색: 프랑스령 모로코)

1912년 3월 20일 페스 조약으로 프랑스 제3공화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모로코 술탄국 중부를 프랑스 제3공화국 식민지로 인정받았습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바로 프랑스군 병력을 모로코로 보냈고 모로코 술탄국 중부의 도시들을 점령해갔습니다. 하지만 모로코 술탄국 중부의 도시들은 베르베르 부족의 정치적/종교적 지도자들이 지배하고 있었고 베르베르 지도자들은 프랑스군의 모로코 술탄국 식민지화에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베두인 지도자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모로코 술탄국 내부로 침공했고 베르베르 지도자들은 프랑스군에 맞써 싸웠지만 우수한 화력으로 무장한 프랑스군에게 모두 진압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모로코 베르베르들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고 특히 자안زيان 베르베르인들은 몇번의 전투에서 참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에 맞써 끝까지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프랑스령 세네갈 식민지인 부대를 동원하는 프랑스군
프랑스령 세네갈 식민지인 부대를 동원하는 프랑스군

그러자 프랑스군을 지휘하던 폴 프로스퍼 앙리 총참모장은 1914년 5월 자안زيان 베두인의 근거지인 타자تازة와 케니프라خنيفرة를 공격해 자안زيان의 공격을 꺾기로 했습니다. 폴 프로스퍼 앙리 총참모장의 프랑스군은 1914년 6월 10일 케니프라خنيفرة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자안زيان 베르베르 전사들은 프랑스군과 전면전을 피하고 프랑스군 보급부대를 집요하게 공격하며 프랑스군의 희생을 최대화했고 프랑스군은 자안زيان 베르베르인 전사들의 게릴라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폴 프로스퍼 앙리 총참모장은 프랑스군의 피해가 늘자 6월 말 공격을 취소했고 상실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프랑스령 세네갈과 알제리에서 프랑스 식민지인 부대를 동원해 프랑스령 모로코로 배치했습니다. 폴 프로스퍼 앙리 총참모장은 프랑스 식민지인 부대로 자안 베르베르인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1914년 8월 1일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모로코의 프랑스 식민지인 부대를 프랑스 제3공화국 본토로 보내야 했습니다.


  • 프랑스군의 공격

모로코 자안 전사
자안 전사

프랑스 식민지인 부대를 프랑스 제3공화국 본토로 보내라는 명령을 받은 폴 프로스퍼 앙리 총참모장은 난처한 입장에 놓였습니다. 프랑스 식민지인 부대를 유럽으로 보내면 모로코의 자안 베두인과 맞써 싸울 병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전쟁의 승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독일제국은 제1,2차 모로코 위기에서 모로코 술탄의 편에 서며 모로코 술탄국을 지원했음을 근거로 구 모로코 술탄국 영토에 독일군 병력 일부를 투입해 모로코 술탄에게 동맹국에 참가할 것을 설득했고 오스만 제국은 모로코 베르베르인 부족들에게 무기를 지원했습니다. 자안زيان 역시 오스만 제국에게 받은 신무기로 무장했고 침략자 프랑스군에 맞써 싸웠습니다. 자안زيان 전사들은 1914년 8월 4일 프랑스군을 공격했고 폴 프로슾 앙리 총참모장은 자안زيان의 근거지를 포위한 후 선별적인 공세를 취했습니다. 프랑스군은 1914년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케니프라خنيفرة를 공격해 자안군의 근거지 내부로 침투했습니다. 프랑스군은 이어 공세를 지속하며 자안군을 압박했고 자안군은 아틀라스Atlas 산맥으로 밀려났습니다.


  • 엘 헤리 전투

모로코 자안 전쟁 엘 헤리 전투
엘 헤리 전투

프랑스군은 케니프라خنيفرة를 공격해 자안군을 흩어지게 만들었고 아틀라스Atlas 산맥에 모인 자안군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군은 혹독한 겨울 자안군이 혼란에 빠져있을 때 공격하면 프랑스군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11월 13일 프랑스군 기병대가 엘 헤리الهري의 자안군 기지를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자안군은 기지에 없었고 프랑스군이 기지를 점령하는 동안 프랑스군의 측면을 공격해 프랑스군을 격퇴했습니다. 프랑스군은 엘 헤리 전투에서 상당한 병력 손실을 입었고 자안군은 자신감을 얻어 아틀라스Atlas 산맥의 프랑스군을 공격했습니다.

프랑스군과 자안군의 전투
프랑스군과 자안군의 전투

하지만 폴 프로스퍼 앙리 총참모장은 프랑스군을 재정리하고 1915년 3월 자안군을 다시 공격했습니다. 프랑스군은 케니프라خنيفرة 주변을 천천히 점령해갔고 아틀라스Altas 산맥의 여러 곳에서 베르베르인 부족 전사들과 프랑스군의 유혈사태가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둘은 연이은 소요사태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고 휴전을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1915년 11월 11일 자안군이 케니프라خنيفرة로 향하는 프랑스군 보급부대를 공격하며 휴전은 결렬되었고 베르베르 전사들과 프랑스군은 다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 프랑스군의 자안 전사 제압작전

자안군을 공격하는 프랑스군
자안군을 공격하는 프랑스군

1916년 1월 자안군의 대공격이 시작되었고 프랑스군은 자안군의 공격을 겨우 막아냈습니다. 프랑스군은 자안군의 도발을 막아내며 아틀라스Atlas 산맥의 포위망을 유지했지만 자안군을 격퇴하기에는 프랑스군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프랑스군 내부에서 대대적인 변혁을 취했습니다. 프랑스군 관계자를 바꾸고 병력을 충원한 프랑스군은 1916년 중순 자안군을 공격해 전쟁의 우위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1917년부터 프랑스군은 야포와 폭격기를 동원해 자안군을 공격했고 신무기 공격에 밀려난 자안군은 점차 그 영역이 줄어들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제3공화국은 1915년 카사블랑카 협약으로 프랑스 제3공화국과 프랑스령 모로코 보호국의 경제 예속을 더 강화했고 프랑스령 모로코 보호국의 독일인들을 추방해 베르베르 전사들에 대한 독일제국의 지원을 원천차단했습니다. 때문에 자안 전사들과 베르베르 전사들은 독일제국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했고 군사력은 날이 갈 수록 약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안군은 격렬하게 저항했고 자안군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프랑스군이 희생되었습니다.


  • 끝나가는 자안 전사의 불씨와 다른 곳에서 타오른 불씨

모로코 리프 전쟁
리프 전쟁

1918년 11월 최후의 동맹국인 독일제국이 항복하자 자안 전사들은 마지막 우방국마저 잃었습니다. 그러나 독립 열망이 강한 베르베르 전사들은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반유럽 봉기를 멈추지 않았고 자안 전사들은 그 정신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1919년 자안군은 아틀라스Atlas 산맥에서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프랑스령 모로코 보호국과 스페인령 모로코 보호국 전역의 베르베르 부족들은 유럽 침략자에 대항해 총을 들었습니다. 이윽고 모로코 전역에서 베르베르 봉기가 확산되었고 프랑스 제3공화국과 스페인 왕국은 제1차 세계대전 종료 직후 모로코 전쟁의 수렁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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