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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독감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확산] 전세계로 잠입한 신종 바이러스

by 롱카이. 2022. 5. 11.
  • 스페인 독감의 탄생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현미경 사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현미경 사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탄생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기원은 3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번째 설은 1917년 프랑스 제3공화국 서부전선인 에타플Étaples의 영국원정군 임시 병원에서 탄생했다는 설입니다. 영국원정군은 영국원정군 식량 배급을 위해 에타플Étaples에 닭과 돼지를 모아두었습니다. 그 중 에타플Étaples로 이동한 닭들이 조류독감에 걸렸고 그 조류독감이 변이를 일으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되었다는 설입니다. 두번째 설은 1917년 미국 캔자스주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탄생했다는 설입니다. 마지막 설은 1917년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입니다. 설이 세가지가 되는 것을 보듯이 아직 스페인 독감의 기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독감의 유행은 그 기록이 남아있어 어떻게 전세계로 전파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대서양을 건넌 바이러스

1918년 초 미국 뉴욕 사진
1918년 초 미국 뉴욕

1918년 3월 4일 미국 캔자스의 미군 훈련소에서 취사병으로 복무하던 알버트 깃첼이 고열과 콧물 등 독감 증상을 보이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며칠 뒤 미군 훈련소에서 첫 희생자와 똑같은 증상을 겪다 사망하는 미군 병사들 수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1918년 3월 11일 미국 뉴욕과 퀸즈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미합중국 정부는 신 독감을 주목하지 않았고 우드로 윌슨 미합중국 대통령은 미국원정군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독려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원정군은 대서양을 건너 대영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그리스 왕국으로 이동해 압도적인 물량으로 동맹군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도 잠복기 동안 미국원정군 몸 안에 조용히 숨어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이동했습니다.

 

 

 

  • 대유행의 시작

스페인 독감의 전파 경로
스페인 독감 전파 경로

1918년 4월 스페인 독감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4월 미국 동부 해안지대에서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고 프랑스 서부전선의 미국원정군 기지를 중심으로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습니다. 서부전선에 시작된 스페인 독감은 곧 프랑스와 스페인, 영국 본토로 전파되었고 서부전선 외에도 미국원정군이 주둔한 이탈리아 전선, 발칸 전선에 스페인 독감 확진자가 꾸준히 나왔고 4월 미국 동부와 서유럽을 강타했습니다. 1918년 4월 미국, 서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로 전파된 스페인 독감은 5월 연합국과 싸우던 동맹국인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전파되었고 중부 유럽에 위치한 동맹국을 거쳐 동유럽 지역인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러시아로 퍼진 스페인 독감
러시아로 퍼진 스페인 독감

특히 1918년 3월 3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동맹국이 정전을 협정한 후 동맹국이 러시아군 포로를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송환했고 그 과정에서 독일군에게서 감염된 러시아군들이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과 러시아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때문에 거대한 러시아 전역에 스페인 독감이 빠르게 퍼졌고 러시아는 러시아 내전의 화마 속에서 스페인 독감 유행이라는 이중고를 걲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참전국들은 전쟁이 발발하면 병사들 사이에 감염병이 유행한다는 것에 익숙해 있었고 스페인 독감 역시 여느 감염병처럼 전장의 병사들 사이에 전파된 감염병이라고 생각하며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스페인 독감 제1차 유행 당시 미국원정군 병원의 스페인 독감 환자
제1차 유행 당시 미국원정군 병원의 스페인 독감 환자

정부의 방치 속에서 4월 유럽에 퍼진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 독감은 숙주인 사람이 배를 타고 아시아로 가면서 아시아로도 진출했습니다. 1918년 4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스페인 독감 확진자가 발견되었고 이어 5월 영국령 인도제국과 일본제국에 스페인 독감 확진자가 나타났습니다. 미국은 이미 스페인 독감이 동부에서 서부로 진출했고 아프리카 역시 영국인이 영국령 아프리카 식민지로 이동하면서 아프리카에 스페인 독감이 전파되었습니다. 스페인 독감 제1차 유행은 이렇게 전세계로 퍼졌지만 스페인 독감에 주로 걸린 사람은 전장의 군인으로 후방에 민간인에게는 스페인 독감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최전방의 군인들은 심상치 않은 독감에 걸려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이를 목격한 많은 의사들과 학자들이 정부에게 심상치 않은 독감을 널리 알려 예방해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참전국 정부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는데 집중했고 치사율이 높은 독감이 유행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병사들과 후방 민간인들의 사기를 저하한다고 생각해 그들의 의견을 묵살했고 언론을 통제해 신종 독감에 대한 기사를 내지 못하도록 검열했습니다.

 

 

 

  • 스페인 언론의 발표

제1차 세계대전 병원 스페인 독감 확진자 병사들
제1차 세계대전 병원의 스페인 독감 확진자 병사들

제1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기울어지는 동안 연합국은 승리 확정을 위해, 동맹국은 미리 항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페인 독감에 대해 어떤 발표도 하지 않고 언론의 입을 막아 비밀을 유지했습니다. 때문에 신종 독감 바이러스는 그 어떤 이름도 붙지 않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병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독감을 불렀습니다. 프랑스군은 이 독감을 미국 독감Grippe Américaine이라 불렀고 영국원정군은 플렌더스 독감Flanders Flu이라 불렀으며 독일군은 플란데른 독감Flandern Fieber이라 불렀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은 이 독감을 미국 독감Influenza Americana이라 불렀지만 후에 독일 독감Influenza Germania 이름없는 독감은 전파 경로에 따라 다르게 불렸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이 독감을 프랑스 독감Gripe Francesa 혹은 나폴리의 병사Soldado de Nápoles라 불렀습니다. 브라질은 이를 독일에서 전파된 독감이라 생각해 독일 독감Gripe Alemã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브라질에서 독감을 전파받은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세네갈에서는 이 독감을 브라질 독감Grippe Brésil이라 불렀습니다. 세네갈 외 아프리카에서는 백인이 옮긴 백인 독감이라 불렀고 일본제국은 타이완의 스모 선수들이 옮긴 감염병이라 생각해 스모 카제相撲風라고 불렀습니다. 이란 카자르 제국은 알 수 없는 독감을 바람의 질병ناخوشی بد이라 부르며 두려워했습니다.

 

이름 없는 독감에 걸린 사람이 온몸이 파랗게 질려 죽어가는 것을 보고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은 그 무시무시한 감염병을 전파한 대상을 찾아 비난하는 식으로 독감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폴란드로 러시아 적군의 침공을 받은 폴란드군은 독감을 볼셰비키 질병Choroba Bolszebicka이라 불렀고 러시아 적군은 독감을 중앙아시아 백군 진영에서 전파되었다고 생각해 키르지스 질병киргизская болезнь이라 불렀습니다. 극심한 백인우월주의에 빠진 남아프리카 연방은 독감을 흑인 독감Kaffersiekte이라 부르며 아프리카 현지인과의 분리를 더 조장했습니다.

 

스페인 독감을 전세계에 처음 알린 스페인 언론
스페인 독감을 전세계에 최초로 알린 스페인 언론

그 와중 이름없는 독감이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언론을 강력하게 검열했던 연합국, 동맹국과 달리 중립국이었던 스페인 왕국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스페인 왕국의 기자들은 전세계로 퍼진 신종 독감을 추적해 제1차 유행이 한창이던 1918년 5월 21일 언론에 실어 전세계에 알렸습니다. 스페인 왕국의 기자들은 신종 독감을 삼일 열병Fiebre de los Tres Dias라고 명명하며 신문에 보도했습니다. 스페인 왕국 언론의 보도는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졌고 1918년 6월 2일 대영제국 런던 타임지는 스페인 왕국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신종 독감을 스페인 독감Spanish Influenza라고 명명했습니다.

 

런던 타임지에서 처음 명명한 스페인 독감
런던 타임지에서 처음 명명한 스페인 독감

대영제국의 런던 타임지는 1918년 6월 2일 첫 보도 이후로도 신종 독감을 스페인 독감Spanish Influenza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세계 최강대국인 대영제국의 최고 언론인 런던 타임지는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이었기에 전세계 언론들이 런던 타임지를 인용했습니다. 전세계 언론은 런던 타임지의 스페인Spanish Influenza를 무차별적으로 인용해 번역했고 그 과정에서 신종 독감이 스페인에서 유래되었다는 오해를 했습니다.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은 스페인 독감Испа́нский грипп을 스페인에서 시작된 독감으로 오해해 한동안 스페인의 소녀Испа́нка라고 불렀습니다.

 

독일제국 루덴도르프 공세
독일제국 루덴도르프 공세

스페인 왕국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신종 독감은 스페인 독감으로 명칭이 통일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참전국은 스페인 독감을 더이상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세계 국가들은 스페인 독감 확진자 수를 발표했습니다. 1918년 6월 미국에서 75,000명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고 스페인 왕국 마드리드Madrid에서는 1,000명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는 이미 프랑스군의 4분의 3이 스페인 독감에 확진되었고 영국원정군은 절반이 스페인 독감에 확진되어 작전에 투입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독일군은 900,000명의 병력이 스페인 독감에 걸려 병상에 누워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선은 스페인 독감 대유행으로 작전 불능상태가 되었고 독일제국의 최후의 일격인 루덴도르프 공세는 스페인 독감으로 차질을 빚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독감 제1차 유행은 1918년 6월 사그러드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전과 비교될 수 없는 최악의 대유행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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