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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2

[더 큰 전쟁으로: 독일-중국 동맹] 이해타산 경제협력 파트너 1929년 세계 대공황이 전세계를 휩쓸고 식민제국들이 블록 경제를 구축해 보호무역으로 돌아서자 독일국과 중화민국은 교역을 할 상대를 상실했습니다. 독일국은 아돌프 히틀러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약속하며 정권을 잡았고 중화민국은 대공황으로 무너진 산업을 살리고자 침략전쟁을 택한 일본제국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독일국은 수출입을 할 상대를 찾아야 했고 중화민국은 일본제국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할 병기를 당장 갖춰야 했습니다. 독일국은 소련을 제외한 국가들 중 문호가 열려있는 곳을 모색하다 중화민국을 발견했고 중화민국은 우수한 산업력과 국방력을 지닌 독일국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독일국과 중화민국은 서로를 찾았고 경제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독일국과 중화민국의 교류 1933년 5월 독일국 .. 2022. 12. 13.
[더 큰 전쟁으로: 5.4 운동] 중화해방 일본제국 손아귀에 놓인 중화민국 청나라가 더이상 대국의 지위를 발휘하지 못하고 망국이 들자 지식인들은 들고 일어나 천자국을 전복시키고 공화국을 설립했습니다. 이로서 1912년 중화민국이 탄생했습니다. 지식은들은 중화민국의 청사진을 제시한 쑨원 아래 응집해 중화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려고 했습니다. 허나 1915년 위안스카이가 돌연 중화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천자국을 부활했습니다. 이로서 중화 대륙은 위안스카이의 중화제국과 쑨원의 중화민국으로 양분되었습니다. 황제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던 위안스카이는 황제 지위를 견고히 하기 위해 일본제국에게 손을 벌렸고 그 대가로 21개조 요구를 받아들여 중화제국이 일본제국의 간접지배 하에 놓이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제국은 21개조 요구에 따라 칭다오靑島를 점령.. 2022.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