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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전쟁으로

[더 큰 전쟁으로: 독일-중국 동맹] 이해타산

by 롱카이. 2022. 12. 13.
  • 경제협력 파트너

독일-중국 동맹
독일-중국 동맹

1929년 세계 대공황이 전세계를 휩쓸고 식민제국들이 블록 경제를 구축해 보호무역으로 돌아서자 독일국과 중화민국은 교역을 할 상대를 상실했습니다. 독일국은 아돌프 히틀러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약속하며 정권을 잡았고 중화민국은 대공황으로 무너진 산업을 살리고자 침략전쟁을 택한 일본제국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독일국은 수출입을 할 상대를 찾아야 했고 중화민국은 일본제국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할 병기를 당장 갖춰야 했습니다. 독일국은 소련을 제외한 국가들 중 문호가 열려있는 곳을 모색하다 중화민국을 발견했고 중화민국은 우수한 산업력과 국방력을 지닌 독일국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독일국과 중화민국은 서로를 찾았고 경제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 독일국과 중화민국의 교류

중국에 파견한 독일인 고문관
중국에 파견한 독일인 고문관

1933년 5월 독일국 국방성 요하네스 한스 프리드리히 레오폴트 폰 젝트는 상하이上海를 방문해 중화민국 대표에게 독일국이 경제원조와 군사력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수출시장이 필요했던 독일국에게 인구가 많은 중화민국은 거대한 시장이었고 독일국은 이 시장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한 장차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군사물자를 생산해야 했는데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국 내에서 생산하지 못하자 중화민국에 군수공장을 세워 중화민국에 수출한다는 명목으로 그곳에서 전쟁물자를 생산하며 전쟁을 준비하려고 했습니다. 중화민국 대표는 그 제안을 환영했고 1934년 1월 중화민국에 독일국 공장이 설립되었습니다.

 

독일국 군사교육을 받는 국민혁명군
독일국 군사교육을 받는 국민혁명군

또한 1935년에는 알렉산데르 에른스트 알프레트 헤르만 퓌러 폰 팔켄하우젠 육군장교가 장제스 군사고문관으로 중화민국에 파병되었습니다. 중화민국은 독일국의 군수산업 공장을 설립해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국민혁명군 군사력을 향상시켜 다른 군벌들을 제압하고 일본군의 침공을 막아냈습니다. 독일국은 중화민국에 군수공장을 세워 경제 성장을 이룩했고 군수물자를 확보해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독일국은 중화민국 군수산업 공장에서 신무기를 제작했고 군벌내전 실전에 투입해 성능을 확인했습니다.

 

 

 

  • 일본제국 문제

쿵샹시와 아돌프 히틀러
쿵샹시와 아돌프 히틀러

중화민국 쿵샹시 재무장관은 일본제국이 화베이華北로 진격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1937년 6월 아돌프 히틀러와 한스 게오르그 폰 막켄젠을 만나 일본제국의 침입을 막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일본제국을 동양의 이탈리아 왕국이라 칭하며 독일국과 함께 항일 전선을 형성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일본제국이 칭다오靑島를 점령해 독일국-일본제국 관계가 속으로는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를 제안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와 한스 게오르그 폰 막켄젠은 이를 정중히 거절했고 햘마르 샤슈트로부터 반공 협정은 중화민국을 고립시키려고 만든 협정이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는 원하는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독일국이 중화민국을 배신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했고 독일국은 중화민국, 일본제국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방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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