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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전구

[아프리카 전구: 아프리카 식민지배] 아프리카의 비극

by 롱카이. 2022. 4. 18.
  • 유럽의 아프리카 점령

유럽 해안 식민지와 아프리카 독립국
유럽의 해안 식민지와 아프리카 독립국

19세기 아프리카 대륙에는 술탄국과 제국, 부족 국가 등 수많은 국가들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문화를 이룩하고 문명을 건설해 국가를 운영했고 일부는 오래 전부터 이슬람 세력과 유럽 세력과 교류를 했습니다. 유럽은 대항해시대를 열면서 아프리카 해안지역에 항구 식민지를 건설했지만 이는 선박을 정박하고 보호하며 아프리카 국가들과 무역을 하기 위해 세운 것이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해안 식민지로 아프리카 국가들과 무역을 해 아프리카에게 무기 등의 물건을 팔고 상아, 금과 자원, 농작물 등의 상품을 수입하면서 둘은 동등한 관계로 교류를 했습니다. 하지만 1873년 유럽에 닥쳐온 장기불황은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 장기불황과 제국주의

비엔나의 검은 금요일
비엔나의 검은 금요일(주가 폭락)

1865년 끝난 미국 남북전쟁과 1871년 끝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으로 유럽과 미국은 잠시 경기 침체기를 겪다 신기술 개발 등으로 투자 붐이 일어나 유럽 국가들은 철도회사 등에 엄청난 투자를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하자 투자에 거품이 꼈고 1873년 4월 8일 비엔나 증권회사에서 거품이 꺼져 주가가 폭락하는 사건이 발발했습니다. 모두들 이 현상을 비엔나에서만 일어난 현상이라고 생각했지만 1873년 9월 18일 미국에서 제이 쿡 은행과 노던 퍼시픽 철도회사가 도산하면서 수많은 미국 은행이 파산했습니다. 미국 은행 파산의 여파는 미 대륙과 유럽을 덮쳤고 유럽은 1873년부터 장기 불황에 시달렸습니다. 유럽은 장기불황으로 정치적, 사회적 혼란에 빠졌고 거품이 심하게 낀 철도회사들은 거품이 꺼지면서 줄줄이 파산했습니다. 전세계를 지배했던 대영제국 역시 장기불황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었고 프랑스 제3공화국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배상금 지불과 장기불황 두 경제위기로 침체되었고 독일제국은 불황으로 불만이 쌓인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연금을 제공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아프리카 철도건설
아프리카 철도건설

유럽 국가들은 임시책으로 불황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했지만 장기불황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고 유럽 국가들은 새 경제 블록 확장을 장기불황 타개책으로 내놓았습니다. 그 대상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유럽 국가들은 넓은 아프리카 대륙에 철도를 건설해 철도회사를 가사회생시키고 신기술로 탄생한 철강, 전기, 화학산업을 아프리카 인프라 개발에 사용하며 회사들을 살리기로 했습니다. 더불어 식민지 구역을 정해 식민지는 무조건 본국과만 무역할 수 있게 함으로서 유럽 본국의 수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본국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 내륙으로 식민지를 건설하는데 열을 올렸고 이렇게 아프리카 제국주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배

제국주의 풍자화
제국주의 풍자화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 대륙의 광활한 크기와 풍부한 자원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 국가와 교류하는 대신 그들을 정복해 식민지를 건설함으로서 식민지의 자원을 모두 소유하고 본국의 생산품을 아프리카에 팔아넘겨 수출량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앞다투어 탐험가와 군대를 아프리카로 보내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확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 식민지 영토를 두고 갈등을 벌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1885년 베를린 회담으로 아프리카 분할을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유럽 군대의 아프리카 점령과정에서 아프리카와 유럽군은 당연히 충돌했습니다.

벨기에령 콩고를 가혹하게 착취한 레오폴드 2세 만평
벨기에령 콩고를 가혹하게 착취한 레오폴드 2세 만평

벨기에령 콩고를 개인재산으로 만든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고무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개인재산을 불렸고 고무 생산량을 채우기위해 벨기에령 콩고의 콩고 현지인들을 노동착취했습니다. 그는 고무 생산량을 채우고 콩고인의 저항을 막기 위해 할당량을 체우지 못한 콩고인은 손목부터 잘려 마지막에는 목이 잘렸고 콩고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서로의 고무를 빼앗는 살육전을 벌여 서로를 죽이는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벨기에령 콩고는 아프리카 식민지 중 가장 잔혹하게 탄압한 사례이며 다른 유럽 국가들의 아프리카 식민지배도 마찬가지로 가혹했습니다.

아프리카 식민지의 플랜테이션 농업
아프리카 식민지의 플랜테이션 농업

유럽 국가들은 비약적인 농업 생산력으로 농산물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아프리카의 비옥한 토지를 모두 매수한 후 플랜테이션 농업지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작물을 대규모 생산해 값싼 가격에 수입해 의복, 음료, 사치품 등의 산업을 발전시켰습니다. 아프리카 현지인들은 플랜테이션 농업을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렸고 그 와중 자신들이 먹을 식량을 수입해야 했습니다. 허나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에 식량 농업을 소멸시켰고 유럽 본토에서 비싼 가격에 식량을 수출했습니다. 아프리카 현지인들은 적은 월급을 받고 비싼 식량을 수입해야 했고 아프리카 경제는 날이 갈수록 피폐해졌습니다. 이는 비단 플랜테이션 농업 뿐만 아니라 광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프리카 현지인들은 노예와 다름없는 노동착취에 고통받았고 몇몇은 이에 반발해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 아프리카 봉기

헤레로 전쟁
헤레로 전쟁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 현지인들을 노예취급할 뿐만 아니라 유럽 본국의 문화를 아프리카 현지에 강제 이식하려고 했습니다. 1902년에는 포르투갈령 앙골라에서 현지인들이 가혹한 플랜테이션 농업에 반발해 발룽도 봉기를 일으켜 포르투갈인을 공격했지만 포르투갈군에게 제압당했습니다. 1904년에는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에서 헤레로족이 독일제국의 가혹한 식민지배에 반발해 봉기를 일으켰고 독일제국은 봉기를 진압하며 헤레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독일제국은 전쟁에서 승리하며 헤레로족을 오마헤케Omaheke 사막으로 몰아넣어 수많은 사람들을 탈수와 기아로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독일제국이 헤레로족을 말살하기 위해 행한 헤레로 대학살이었습니다. 이어 1905년 독일령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마지마지 봉기를 진압했습니다. 1906년에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차드에 존속했던 와다이 술탄국이 프랑스 제3공화국의 가혹한 식민통치에 반발해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고 프랑스 제3공화국은 와다이 술탄국에 프랑스군을 파병해 와다이군을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와다이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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