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1차 세계대전 시작/강대국의 상황

[강대국의 상황: 러시아 제국 편] 제 3의 로마

by 롱카이. 2021. 12. 24.

러시아 차르 왕관
러시아 차르의 왕관

  • 동로마 제국의 멸망과 제3의 로마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로마노프 왕조기

로마 제국은 유럽 기독교 세계의 정체성을 확립한 제국으로 유럽의 유일한 황제(임페라토르)국이었습니다. 오직 로마의 계승자 만이 유럽에서 황제로 권위를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황제의 의미는 강력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처음 등장한 황제는 로마 혼란기를 겪으며 분열했고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세가 황제 자리의 정통성을 다시 부여했고 이후 동로마제국은 1000년 이상 기독교를 수호하는 황제국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하자 로마노프 혈통을 잇고 있던 루스 차르국이 스스로를 로마라고 주장합니다.

 

러시아 제국은 고대 로마를 제1의 로마, 동로마제국을 제2의 로마, 루스 차르국을 제3의 로마로 주장하며 기독교 세계의 수호를 자청했습니다.

 

 

 

  • 차르국에서 제국으로 성장

전성기 러시아 제국 영토
18세기 초 러시아 제국

모스크바에서 성장한 루스 차르국은 우랄 산맥 너머 시베리아로 진격해나갔습니다. 그리고 루스 차르국 로마노프 왕조 4대 군주 표트르 1세는 서유럽의 발전에 발맞춰 루스 차르국을 개혁했고 발트해 주도권을 두고 북유럽 강자 스웨덴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경쟁자 스웨덴 제국을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하였고 표트르 1세는 그 공으로 황제로 임명됩니다.

 

황제 칭호를 받는 제국이 된 러시아 제국은 기독교(동방 정교회)의 마지막 보루이자 수호국으로 성장하며 자신감을 얻고 사방으로 확장했습니다.

 

 

 

  • 부동항과 그레이트 게임

러시아는 사방으로 가공할 만한 영토확장을 이루어냈지만 러시아 제국 영토는 추운 북방이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제국의 기본인 강력한 해군을 건군해 세계로 해상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했고 겨울에 어는 항구는 강력한 해군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였습니다. 때문에 러시아 제국은 일년 내내 얼지 않는 항구 부동항을 원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부동항을 얻기 위해 남쪽으로 진군하는 남진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제국은 이미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남쪽으로 패권 진출을 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을 공격해 크림반도를 차지하고 발칸반도 국가들을 해방시키고 중앙아시아를 차지하며 인도양으로 진격하려 하고 사할린과 연해주로 팽창을 시도한 것도 부동항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이미 세계의 바다를 장악한 대영제국은 러시아 제국의 남방 팽창을 위협으로 여겼습니다. 러시아가 부동항을 차지하면 러시아 해군의 작전 수행을 막을 장벽이 사라지게 되어 대양에서 대영제국 해군과 러시아 제국 해군의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또 대영제국은 제국을 먹여살리는 인도 식민지를 무척 소중히 여겼는데 중앙아시아를 통해 남쪽으로 진격하는 러시아 제국이 인도 식민지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공포에 떨었습니다. 때문에 대영제국은 사방에서 남쪽으로 진군하려는 러시아를 막으려고 했고 전세계에서 벌어진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의 충돌을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으로 불렀습니다.

 

그레이트 게임 러시아 제국 대영제국 인도제국
그레이트 게임 [남방 진출하려는 러시아 vs 인도를 지키려는 영국]

 

 

 

  • 물거품이 된 발칸반도의 꿈과 러시아-세르비아 혈맹

러시아 제국 팽창 풍자화
1877년 유럽 풍자화

부동항을 얻으려는 러시아 제국과 이를 막으려는 대영제국은 세계 각지에서 대결을 펼쳤습니다. 대영제국은 이란과 동맹을 맺어 러시아 제국의 중앙아시아를 통한 남진을 막고 러시아 제국에게 연전연패하며 발칸반도를 러시아에게 넘겨주던 오스만 제국을 도와 러시아 제국의 팽창을 저지했고[크림 전쟁] 새로 등장한 일본제국과 영일동맹을 맺어 일본이 러시아의 남진을 가로막도록 도왔습니다[러일전쟁].

 

그리고 러시아 제국은 크림전쟁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제국을 끝내 발칸반도에서 몰아냈지만 발칸반도 국가들끼리의 전쟁으로 러시아와 발칸반도 관계는 약화되었습니다. 불가리아 왕국은 러시아 제국의 적성국 독일제국 편에 섰고 그리스 왕국의 왕실은 친독파로 러시아보다 독일과 더 가까웠고 남은 세르비아 왕국만이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제2차 발칸전쟁 이후 세르비아 왕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불가리아 왕국 동맹 사이에 끼어있어 동맹국을 견제할 강력한 국가 러시아 제국에 더 의존했습니다. 러시아 제국도 세르비아 왕국마저 잃을 수는 없어 세르비아 왕국의 보호국을 자처했습니다. 이는 러시아 제국이 세르비아 문제에서 발을 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 지배층의 사치와 흔들리는 제국

러시아 제국은 남진정책으로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국가 재정을 소모했지만 지배층의 사치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며 국가 재정을 갉아먹었습니다. 그리고 차르는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전제군주정을 고수하며 동방 정교회의 수호자 인식에 갇혀 헤이해졌습니다. 제국을 이끌 지배층은 민생을 돌보지 않고 향락을 즐겼습니다.

 

그 와중에 제국은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해 농노를 해방시키고 공장을 가동해 신민을 노동자로 양성하려 했지만 재무장관의 무능으로 민중은 저임금과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았습니다. 러일전쟁으로 파탄난 국가재정 역시 민중을 괴롭혔습니다. 1905년 러시아 민중은 차르에게 급료 인상을 요구하려 겨울궁전으로 모였고 차르는 민중을 총과 칼로 진압하기를 명했습니다. 군대는 민중을 잔인하게 진압했고 이 사건은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피의 일요일 사건
피의 일요일 사건. 차르는 인민을 버렸다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충격받은 민중들은 더이상 차르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민중은 항의의 표시로 전국 각지에서 파업이 일어나 러시아 제국 경제는 파탄났지만 차르와 귀족은 이를 무시하고 여전히 사치를 즐겼습니다. 지배층의 행보에 분노한 민중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리고 벌어진 대전쟁은 폭발한 민중이 지배층을 전복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은 발칸을 두고 다툰 러시아 제국의 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