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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종료/그들의 목표

[그들의 목표: 시암 왕국] 영토를 보존하라

by 롱카이. 2022. 11. 21.
  • 대나무 외교
톤부리 왕국
톤부리 왕국

타이의 톤부리 왕국을 이끈 톤부리 대왕은 공격적인 영토확장 정책으로 타이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허나 톤부리 왕국의 전성기 시절 동으로는 대영제국이 인도제국 영토를 확장해나갔고 서로는 베트남 응우옌이 프랑스 제국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톤부리 대왕의 서거 직후 톤부리 왕국이 멸망하고 짜끄리 왕조가 등장했습니다.

대나무 외교
대나무 외교

이 때 프랑스 식민제국이 베트남에 본격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베트남을 식민지화했습니다. 그리고 대영제국과 프랑스 식민제국은 중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지화하려고 했습니다. 짜끄리 왕조는 이를 눈치채고 프랑스 식민제국과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허나 짜끄리 왕조는 프랑스 식민제국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굴욕적인 패배를 겪었습니다. 타이-프랑스 전쟁으로 열세임을 자각한 짜끄리 왕조는 프랑스 식민제국과 대영제국에게 영토를 조금씩 내어주며 주권을 유지하는 전략을 실시했습니다. 그것이 대나무 외교였습니다.


  • 위기에 빠진 짜끄리 왕조
대영제국과 프랑스 식민제국의 목표
대영제국과 프랑스 식민제국의 목표

짜끄리 왕조는 프랑스 식민제국과 대영제국에게 영토를 주면서 지연전을 펼쳤습니다. 허나 프랑스 식민제국은 더 많은 영토를 원했고 짜끄리 왕조를 끝없이 압박했습니다. 짜끄리 왕조는 메콩강을 경계로 메콩강 너머의 영토를 프랑스 식민제국에게 할양했고 캄보디아 영토도 프랑스 식민제국에게 줬지만 프랑스 식민제국은 짜끄리 왕조에게 북동부 지역을 요구했습니다. 대영제국 역시 남부지역을 획득해 인도제국과 말레이 제도를 연결하려고 했습니다.

시암 영토 분할 위기
시암 영토 분할 위기

짜끄리 왕조는 점차 영토가 줄어드는 것을 경계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짜끄리 왕조보다 더 거대한 중국도 분할하려고 하는 대영제국과 프랑스 식민제국을 짜끄리 왕조가 이길 수 없었고 짜끄리 왕조는 항상 마음을 졸였습니다. 다행히 1910년이 되자 유럽 열강은 유럽 본토의 문제에 집중했고 짜끄리 왕조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 영토 보존

https://doverequiem1914.tistory.com/280

[아시아-태평양 전구: 시암원정군] 타이의 참전

시암 짜끄리 왕조 19세기 중반 유럽 강대국들은 미지의 대륙인 청나라를 식민지화하기 위해 청나라에 접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청나라에 가까운 지역들은 청나라 식민지화를 위한 전초기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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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암원정군
시암원정군

1914년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짜끄리 왕조는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짜끄리 왕조는 영토를 보존하기 위해 동맹국에 가담할지 고민했지만 동아시아는 동맹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아 동맹국의 지원은 포기했습니다. 대신 상대적으로 관대한 대영제국의 편에 서 타이 왕국 보존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짜끄리 왕조는 가다르 운동을 진압하는데 협력하고 그 대가로 대영제국의 제정지원을 받아 근대화를 한 후 시암원정군을 서부전선에 파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더이상 시암을 분할하지 말라는 약속을 받아 영토를 보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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