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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2

[더 큰 전쟁으로: 크리스테로 전쟁] 혁명정부와 가톨릭 교회의 대결 멕시코 혁명이 끝나고 나서 소수에게 집중된 권력을 힘없는 민중에게 재분배하기 위해 발발한 멕시코 혁명은 1910년대를 휩쓸었습니다.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살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총을 든 자들은 멕시코 혁명 기간 동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멕시코 혁명 동안 멕시코 합중국 대통령이 된 자들은 토지개혁과 가톨릭 개혁 등 부의 재분배를 시도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멕시코 합중국에서 막대한 권력을 가진 가톨릭 교회는 자신들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혁명 세력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혁명 대척점에 섰습니다. 때문에 멕시코 혁명 당시 토지개혁이 진행되며 공화군과 가톨릭 간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었습니다. 1917년 멕시코 헌법 멕시코 혁명이 발발하기 전 멕시코 합중국 토지의 3/4는 로마 가.. 2022. 12. 5.
[주변국의 상황: 멕시코 합중국] 혼란스러운 혁명 멕시코 공화국의 위기 1864년 멕시코 제2연방공화국의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의 개혁에 반대한 세력들이 프랑스 제국을 끌여들여 대통령을 끌어내려고 했습니다. 허나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은 미국과 동맹을 맺고 반대세력을 공격해 반대세력이 프랑스 제국을 멕시코로 끌어들이기 전 대다수 토벌했습니다. 허나 프랑스 제국은 이를 기회라 보고 나폴레옹 3세의 지시에 따라 프랑스군을 멕시코로 보내 멕시코에 프랑스 괴뢰국을 세웠습니다. 프랑스 제국은 후아레스 대통령의 반대세력 수장인 막시밀리아노를 황제로 추대해 막시밀리아노 1세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시밀리아노 1세는 멕시코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별 소득이 없던 프랑스군은 괴뢰국을 세운 지 1년 뒤 철병했습니다. 프랑스군이 떠나자 막시밀리아노 1세는 곧 후아레스.. 2022.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