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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시작/주변국의 상황

[주변국의 상황: 멕시코 합중국] 혼란스러운 혁명

by 롱카이. 2022. 1. 14.
  • 멕시코 공화국의 위기

프랑스령 멕시코 제국
프랑스령 멕시코 제국

1864년 멕시코 제2연방공화국의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의 개혁에 반대한 세력들이 프랑스 제국을 끌여들여 대통령을 끌어내려고 했습니다. 허나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은 미국과 동맹을 맺고 반대세력을 공격해 반대세력이 프랑스 제국을 멕시코로 끌어들이기 전 대다수 토벌했습니다. 허나 프랑스 제국은 이를 기회라 보고 나폴레옹 3세의 지시에 따라 프랑스군을 멕시코로 보내 멕시코에 프랑스 괴뢰국을 세웠습니다.

 

멕시코 제국 막시밀리아노 1세
막시밀리아노 1세

프랑스 제국은 후아레스 대통령의 반대세력 수장인 막시밀리아노를 황제로 추대해 막시밀리아노 1세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시밀리아노 1세는 멕시코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별 소득이 없던 프랑스군은 괴뢰국을 세운 지 1년 뒤 철병했습니다. 프랑스군이 떠나자 막시밀리아노 1세는 곧 후아레스에게 채포되어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베니토 후아레스 멕시코 대통령
베니토 후아레스

멕시코 대통령직을 되찾은 후아레스 대통령은 마저 개혁을 진행하며 멕시코 민중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멕시코의 영웅이었던 그는 1872년 혁명전쟁에서 사망했고 멕시코는 다른 통치자의 지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 포르피리아토Porfiriato

멕시코 포르피리오 디아스 장군 대통령
포르피리오 디아스

포르피리오 디아스는 후아레스 대통령과 함께 멕시코 제국 시절 프랑스군과 싸우던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후아레스와 동맹이었지만 야심 많던 그는 본인이 멕시코의 통치자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마침 후아레스 이후 대통령이 된 마누엘 곤살레스가 부패와 무능으로 민심을 잃었습니다. 포르피리오 디아스는 민심을 확인한 후 다음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고 민중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멕시코 근대화
멕시코 근대화

민주적 절차로 대통령이 된 그는 멕시코를 근대화시키며 멕시코 산업을 키워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멕시코 민중을 가르치고 치료하는 역할을 하던 가톨릭 교회들을 탄압하고 무력을 동원하며 시민들에게 디아스만 선거하도록 협박하며 장기집권했습니다. 그는 독재체제로 멕시코 정권을 장악했고 산업화를 명목으로 민중들을 착취했습니다. 그와 가까운 관계였던 멕시코 자본가들은 부를 축적하고 민중들은 수탈로 가난해졌습니다. 멕시코의 빈부격차는 심해졌고 멕시코 민중은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거기에 디아스는 미국에게 땅을 할양하며 국토 면적을 줄였습니다.

 

사람들은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독재정치를 하던 시기를 포르피리아토Porfiriato라 불렀습니다. 멕시코 민중들은 포르피리오 디아스를 증오했고 1910년 대선에서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얻었다는 발표에 분노한 민중들은 들고 일어났습니다.

 

 

 

  • 1차 멕시코 혁명: 마데로 정권

반 디아스 멕시코 혁명
멕시코 혁명군

포르피리아 디아스가 독재를 하던 1910년 젊은 지식인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자 디아스는 마데로를 위협으로 판단하고 그를 감옥에 투옥시키고 본인이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탈옥 후 미국 텍사스로 도망가 [산루이스포토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저서를 읽은 마데로 지지자들은 전국에서 봉기를 일으켰고 수많은 사람들이 타도 디아스를 외치며 규합했습니다. 멕시코 전역에서 혁명군이 등장해 도시들을 점령해갔고 두려움에 떤 디아스는 1911년 대통령직을 사임하면서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프란시스코 마데로 멕시코 대통령
프란시스코 마데로

멕시코 혁명군과 미국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된 프란시스코 마데로의 통치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그는 디아스 타도 만을 공유하며 모인 다양한 사람들을 어울러 통치하지 못했고 즉각적인 개혁정치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마데로를 떠났습니다. 특히 마데로의 농지개혁을 지지하던 멕시코 농민들은 그가 농지개혁을 미루자 실망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마데로는 군부를 보내 반란을 진압하게 했습니다. 그는 멕시코 혁명 당시 디아스의 독재에 맞써 싸운 판초 비야를 반란 진압군의 지휘관으로 임명했지만 그의 지지도가 높아지는 것을 우려해 그를 사형하려고 했습니다. 판초 비야는 미국으로 도망가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 비극의 열흘

멕시코 비극의 열흘
비극의 열흘

멕시코 국민들에게 급속도로 지지를 잃고 사방이 적이 된 마데로는 빅토리아노 우에르타를 멕시코 연방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마데로의 신변보호를 명했습니다. 하지만 빅토리아노 우에르타는 미국의 허락을 구하고 멕시코 반란군과 가짜 전투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실제로 교전을 벌였고 멕시코시티는 시체들이 즐비했고 가옥들이 불탔습니다. 때문에 이 열흘간 벌어진 가짜 전투는 비극의 열흘이라고 불렸습니다.

 

교전 후 우에르타는 반란군, 미국과 대사관 협정을 맺어 1913년 빅토리아노 우에르타가 멕시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세계 여러 국가들은 빅토리아노 우에르타를 대통령으로 인정했고 그에게 자리를 뺏긴 마데로는 며칠 뒤 암살당했습니다.

 

 

 

  • 위태한 우에르타 정권

멕시코 빅토르 우에르타 대통령
빅토르 우에르타

허나 새로 대통령이 된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우에르타를 멕시코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멕시코 민중들도 우에르타가 마데로를 죽이고 정권을 잡은 것에 분노해 우에르타 정권에 대항해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베누스티아노 카란사는 미국의 비밀 지원을 받고 혁명군을 결성해 반란을 일으켰고 판초 비야도 혁명군을 만들어 우에르타 정권과 싸웠습니다. 판초 비야 군대는 제1차 토레온 전투에서 우에르타 정부군을 격퇴하고 멕시코시티로 쾌속진격했습니다. 미국 역시 함대를 보내 베라크루스 항을 점령하면서 우에르타가 독일의 지원품을 받던 항구를 막았습니다.

 

1914년 멕시코 혁명군은 멕시코 시티 근처까지 진격했습니다. 빅토르 우에르타는 결국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도망쳤습니다. 우에르타가 사라지자 혁명군끼리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혁명군들은 우에르타 타도를 위해 모였지만 혁명에 미국을 끌어들여야 할지를 두고 대립했습니다.

 

 

 

  • 멕시코의 주적 미국

유카탄 반도와 멕시코 만
유카탄 반도와 멕시코 만

미국은 멕시코를 틈틈히 노려왔습니다. 미국은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북아메리카 서부지역을 빼앗았고 멕시코 북부 지방들도 돈으로 사들였습니다. 거기에 미국은 석유가 나오는 멕시코 만을 노렸습니다. 미국은 멕시코 만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 유카탄 반도를 노렸습니다. 미국은 마땅한 명분을 찾지 못해 유카탄 반도를 침공하지 못했지만 멕시코인들은 미국이 멕시코를 언제든 침공할 수 있다는 공포심에 떨었고 반미감정이 심했습니다.

 

미군 멕시코 베라크루스 항구 무력 점령
베라크루스 항구를 무력 점령한 미국 해군

이 상황에서 미국이 해군을 이끌고 베라크루스 항구를 무력 점령한 것을 두고 멕시코 혁명군들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미국의 무력 영향력 행사를 용서할 수 없다는 파와 미국과 함께 우에르타 타도를 해야 한다는 파로 갈라졌습니다. 이들은 이 안건을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양측 감정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 두 파로 갈라진 혁명군

멕시코 혁명 판초 비야와 에밀리아노 사파타
판초 비야와 에밀리아노 사파타

멕시코시티를 눈앞에 둔 멕시코 혁명군들은 두 파로 갈라졌습니다. 혁명군들은 대지주 출신으로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졌지만 농지개혁에 관심을 두지 않은 베누스티아노 카란사와 비적 출신으로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만 농지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던 판초 비아 양대 세력으로 갈라졌습니다. 두 세력은 서로 신뢰하지 못했고 독단행위를 하며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모습은 멕시코 정부군과 혁명 연합군의 마지막 전투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멕시코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대통령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이들의 대립은 우에르타 대통령이 사라져도 지속되었습니다. 결국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세력과 판초 비야 세력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14년 우에르타가 사라진 직후 새로운 긴장이 멕시코 전역을 덮었습니다. 그 와중 유럽에서 대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멕시코로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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