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독립과 아메리카 대륙의 독립
1756년부터 1763년 7년에 걸쳐 일어난 7년 전쟁은 유럽 전역과 북아메리카를 전쟁터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며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를 몰아냈습니다. 하지만 대영제국은 전쟁비로 국고를 탕진해 빠르게 국고를 다시 채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식민지인 미국에 더 세금을 붙여 팔면서 재정을 충당했습니다. 이에 식민지인들이 반발했고 영국 의회는 이를 도발로 간주해 1775년 본토와 식민지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미국 독립전쟁입니다.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독립을 얻어냈습니다.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의 첫 독립국의 탄생이었습니다. 1787년 미국은 필라델피아 대표 회의에서 미국 헌법을 세웠고 세계 최초로 대통령제로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더불어 1789년 민족주의를 내세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민족주의가 확산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1791년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에서 설탕농사로 착취받던 아프리카계 노예들이 혁명을 일으켜 아이티 독립국가를 건설했습니다. 이는 노예들이 혁명을 일으켜 독립국가를 건설한 첫 사례였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독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지배계급 민족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유럽인과 인디오 혼혈로 유럽인 혈통을 이었지만 유럽인에게 인종차별과 간섭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라틴아메리카 식민지를 둔 스페인의 국왕 카를로스 3세는 예수회 선교사 국외 추방을 명하고 그의 아들 카를로스 4세도 라틴아메리카의 인프라를 담당하던 성직자의 특권을 취소시키며 라틴아메리카를 동요하게 만들었습니다. 식민지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왔고 라틴아메리카 식민지들은 독립을 열망했습니다.
- 라틴아메리카의 독립
마침내 때가 왔습니다. 나폴레옹이 자기 입맛에 맞춰 스페인 국왕을 바꿔버리는 스페인 왕위찬탈로 본국이 혼란에 빠지자 라틴아메리카의 지배층들이 평의회를 건설해 자기들이 라틴아메리카를 지배하기를 주장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스페인은 다시 라틴아메리카를 무력진압하며 지배하려고 했지만 군벌들이 들고 일어나며 산발적인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스페인 군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벌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 독립전쟁은 미겔 이달고 코스티야 신부를 중심으로 일어난 멕시코 독립전쟁, 시몬 볼리바르를 중심으로 그란 볼리비아 운동, 산 마르틴을 중심으로 라틴아메리카 남부 독립전쟁이 일어났습니다.
- 멕시코 독립전쟁
미겔 이달고 코스티야 신부는 계몽사상을 접하고 돌로레스의 외침으로 농민들의 독립전쟁 가담을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군에 맞써 전쟁을 벌였고 코스티야 신부는 채포되어 처형당했지만 멕시코는 여저니 독립전쟁을 벌였고 결국 1821년 멕시코 제국은 독립했습니다.
- 그란 콜롬비아의 등장과 해체
시몬 볼리바르는 미국을 방문해 교육을 받고 베네수엘라로 돌아와 라틴아메리카 합중국 건설을 꿈꿨습니다. 1811년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를 독립시켰지만 스페인 군의 반격으로 실패했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독립국 아이티와 대영제국의 지원을 받아 1819년에 콜롬비아를, 1821년에 베네수엘라를, 1822년 에콰도르를 독립시켜 세 나라를 하나로 묶어 그란 콜롬비아를 건설하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후 1824년 페루를 독립시켰고 1825년 볼리비아를 독립시켰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중부를 독립시킨 그는 라틴아메리카를 하나의 연방제 국가로 만들려고 했으나 각국의 지배자의 의견충돌로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183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사후 그란 콜롬비아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세 나라로 분열했습니다.
- 라틴아메리카 남부의 독립
산 마르틴은 1816년 아르헨티나를, 1818년에 칠레를 독립시켰습니다. 그는 북상해 1821년 페루를 해방시켰다고 선포했지만 페루는 1824년 볼리바르에 의해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 브라질의 독립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은 스페인 식민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독립했습니다. 포르투갈은 1807년 나폴레옹의 침입을 받자 포르투갈 국왕 주앙 6세가 포르투갈 본토를 버리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수도를 천도해 도망갔습니다. 그 후 나폴레옹이 몰락했음에도 주앙 6세는 본토로 돌아가지 않다 본토에서 입헌군주제 봉기가 일어나자 본토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왕자 페드루는 브라질에 남았습니다. 브라질 기득권들은 페드루에게 독립을 부추겼고 그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1822년 브라질 제국을 선포하며 스스로 황제 페드루 1세에 등극했습니다. 브라질은 이렇게 독립했습니다.
- 먼로 독트린과 미국의 야욕
1820년대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했습니다. 카리브해에는 여전히 식민지들이 남아있었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이 독립했고 유럽국가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1823년 미국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는 먼로 독트린을 선포하며 유럽 국가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간섭을 중지하고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도 유럽 국가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거라는 선포를 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을 다시는 식민지화하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당시 신생국이었던 미국의 선포에 유럽국가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대영제국은 대서양을 통해 남아메리카와 무역을 하며 이득을 볼 수 있어 좋아했고 다른 국가들은 남아메리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먼로 독트린을 수용했습니다.
당대 강대국이었던 유럽국가들의 무관심을 확인한 미국은 빠르게 아메리카 대륙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 명백한 운명
미국은 미국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1803년 프랑스 본토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나자 나폴레옹은 미국에 루이지애나를 헐값에 팔았습니다. 이로 미국은 서쪽에 그동안의 영토에 맞먹는 영토를 얻으며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을 내쫒았습니다. 그리고 빈 땅을 개발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서부개척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루이지애나를 개척한 미국인은 더 서쪽으로 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부로 진격하던 미국은 멕시코와 충돌했습니다.
멕시코는 독립하고 보니 자기 영토에 미국인들이 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텍사스에 수많은 미국 이민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멕시코 정부는 텍사스 미국 이민자들에게 무장해제하고 미국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이민자들은 이 최후통첩에 반발하며 대반란을 일으켰고 멕시코와 텍사스는 전쟁을 벌였고 멕시코가 패배해 1836년 텍사스 공화국이 등장했습니다.
멕시코에서 독립한 텍사스 공화국은 미국으로 편입되었고 이런 행보에 분노한 멕시코는 미국과 국교를 단절했습니다. 이에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1846년 미국-멕시코 전쟁이 벌어졌고 승리한 미국은 멕시코 북부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대영제국으로부터 오리건 지역을 구매해 현재 북아메리카 미국 본토 영토가 완성되었습니다.
미국은 이런 영토확장을 스스로 "명백한 운명"이라고 부르며 합리화했습니다. 미국이 영토를 확장하는 것은 스스로 부여받은 거부할 수 없는 "명백한 운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합리화를 하며 영토를 확장한 미국은 이제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 카리브해로 진격한 미국
미국-멕시코 전쟁 이후 미국은 1861년 남북전쟁으로 혼란기에 빠졌습니다. 1865년 북부의 승리로 내전을 종식한 미국은 남쪽으로 확장을 시도했습니다. 대상은 카리브해 국가들이었습니다. 미국은 가장 먼저 쿠바를 노렸습니다. 쿠바와 카리브해 국가들은 스페인의 마지막 식민지 중 하나로 스페인은 1868년 일어난 쿠바독립전쟁을 진압해서라도 마지막 식민지를 보존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쿠바를 원했고 1898년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은 미국의 압도적 승리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쿠바를 차지하고 또 다른 스페인 식민지인 필리핀을 점령했습니다. 전쟁은 결국 미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미국은 전쟁동안 쿠바와 필리핀 민중들에게 해방전쟁이며 미국은 해방군임을 선언하며 그들의 지지를 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쿠바를 보호국으로,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들어 지배했습니다.
더불어 미국은 카리브해에서 프에르토리코를 얻었고 태평양에서 괌과 하와이를 차지했습니다. 이로 미국은 멕시코만과 태평양을 차지했습니다.
- 남미로 뻗은 미국의 마수
미국은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미 해군의 치명적 약점을 발견했습니다.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에 해군을 파견했는데 메소아메리카가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를 가로막아 해군의 이동이 많이 불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 북쪽으로 돌아가면 북극이 있어 얼음에 갇히고 남쪽으로 돌아가면 거리도 멀고 남극해에서 몰아치는 블리자드 폭풍에 수많은 배들이 침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메소아메리카에 운하를 뚫어 미해군의 연동을 쉽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은 파나마를 운하로 적절한 지역으로 판단하고 파나마를 지배하던 콜롬비아를 설득했습니다. 콜롬비아는 이에 응하는 조건으로 높은 조건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1903년 파나마 지방관을 부추겨 콜롬비아에서 독립하게 만들었고 파나마 운하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라틴 아메리카의 자원에도 손을 뻗었습니다. 당시 플랜테이션 농업 바나나와 오렌지, 커피 등을 생산해 돈을 벌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미국 및 다국적 기업을 진출하게 해 국가의 플랜테이션 농업을 장악했습니다. 유나이티드 푸르트 컴퍼니의 과테말라 농업 장악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 해상권력사론과 제1차 세계대전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 미 해군 소장은 1890년 세계 전술사 역사에 중요한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그의 저서 이름은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으로 해상권력사론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는 저서에서 대영제국의 해군사를 공부하며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국가가 세계에 군사와 경제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강대국이 된다는 해양력 개념을 고안했습니다.
그의 해양력 개념은 많은 유럽 국가들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영제국과 대결을 준비하던 독일제국은 해양력을 근거로 전함들을 건함했으며 영국도 독일의 행보를 위협으로 보고 전함을 새로 만들며 두 제국 간 건함경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경쟁의 끝은 대영제국과 독일제국의 전면 군사 충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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