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시아 입헌 군주제 국가의 등장
일본은 9세기 헤이안 시대 때부터 일본의 군주 천황의 실권이 약해지고 외척이 실권을 장악하면서 천황은 이름만 남은 허수아비로 전락했습니다. 겐무 신정으로 천황 권위를 다시 복원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하고 일본은 약 천년을 막부의 쇼군이 실질 통치하는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1853년 일어난 쿠로후네 사건을 시작으로 일본과 미국이 처음 조우했습니다. 당시 일본을 지배하던 에도 막부는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에 굴복해 불평등 조약인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었습니다. 일본이 미국에게 고개를 숙인 이 조약은 일본인의 자존심을 긁었습니다. 양이(서양)을 무척 싫어했던 고메이 천황은 양이에게 굴복한 에도 막부를 비난하며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천황의 발언에 동조한 세력이 존황양이(존왕양이)를 주장하며 천황에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에도 막부는 사람들의 지지를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에도 막부는 설립 당시부터 막부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대정위임론을 주장했습니다. 에도 막부는 막부 정치의 대권을 천황으로부터 부여받아 일본을 통치하고 있다는 이론이었습니다. 이 이론은 천황의 발언권이 높아지면서 천황으로부터 재확인을 할 것을 요구받았습니다. 이에 1863년부터 1864년 허울 뿐이었던 대정위임론이 실제로 재확인되었고 제도화되었습니다. 그리고 1867년 에도 막부의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니조 성에서 대정을 천황에게 반납했습니다. 이 사건이 대정봉환입니다.
대정봉환에 따라 천황은 다시 일본의 실질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868년 10살의 메이지 천황이 즉위하면서 메이지 유신이라는 개혁개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해외에서 새로운 문물을 배워와 국내에 적용시켜 빠르게 근대화를 이루어냈고 1889년 제국 헌법이 제정되고 1890년 제국의회가 설립되면서 입헌 군주제에 성공했습니다.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마친 일본은 제국주의를 표창하며 스스로 일본 제국으로 선포했습니다. 일본 제국은 군대도 빠르게 서구화해 주변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 팽창하는 제국
일본제국은 뒤늦게 서구화를 하고 제국주의 국가로 등장했습니다. 때문에 일본제국이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할 때는 전세계 대부분이 식민지가 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제국은 운 좋게도 마지막까지 식민지가 되지 않은 동아시아에 위치해 있어 식민지로 만들 국가들이 있었습니다.
1872년 일본제국은 류큐 왕국을 일본제국의 번으로 강등시켰습니다. 이에 반발한 류큐 왕 쇼 타이는 청나라에 조공품을 보내며 청나라의 제후국임을 천명했습니다. 그러다 류큐인이 타이완 섬에서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일본제국은 이를 빌미로 삼아 타이완 섬에 출병했습니다. 하지만 청나라는 일본제국 행동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청나라의 입장을 확인한 일본제국은 오키나와 섬과 타이완 섬을 식민지로 삼을 준비를 했습니다.
1879년 일본제국은 군대를 보내 류큐 왕 쇼 타이를 도쿄로 압송했고 오키나와 섬을 강제합병했습니다. 그 후 일본제국은 청나라와 가까이 지내던 조선과 타이완 섬을 먹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조선과 타이완 섬에 간접 영향력을 행사하던 청나라를 굴복시키고 조선과 타이완 섬을 합병할 계획이었습니다.
1894년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하자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청나라는 조선에 군대를 파견했고 톈진 조약에 따라 일본제국에도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청나라의 파병을 확인한 일본은 조선에 군대를 파병했습니다. 이에 동학 농민군이 화약을 맺고 해산해버리자 일본제국군은 경복궁으로 진격해 경복궁을 점령했습니다. 청나라는 일본제국의 조선 철수를 요구했으나 일본제국은 이를 묵살하고 동아시아의 전통 강자 청나라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은 타이완 섬을 합병했습니다. 그 뒤 일본제국은 조선을 노렸습니다. 하지만 조선 조정은 청나라를 잃자 바로 러시아 제국에게 도움을 청했고 부동항이 필요했던 러시아 제국은 조선의 요청에 응했습니다. 일본제국은 큰 적을 만난 셈이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당대 세계 육군최강국이었고 대영제국에 이은 세계 2위 해군력을 자랑하던 강대국이었습니다.
-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일본제국
큰 적을 만난 일본제국은 러시아 제국을 견제하던 대영제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영일동맹으로 일본제국은 대영제국으로부터 무기와 많은 군사지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영제국의 지원은 간접지원이었고 일본제국은 러시아 제국과 직접 싸워야 했습니다. 그 누구도 일본제국이 러시아 제국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만주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러시아 제국군은 후퇴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철조망과 기관총, 참호로 무장한 채 일본제국의 돌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며 전술적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돌격을 감행한 일본군은 러시아군의 방어에 수많은 병력을 잃어가며 승리 아닌 승리를 반복해왔습니다.
러시아 육군은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투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거점을 조금씩 내주면서 러시아 제국의 해군이 일본군을 격퇴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육지에서 벌어진 전투는 러시아가 후퇴하지만 일본이 치명적 피해를 입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일본제국은 수많은 장병을 잃고 막대한 전쟁비용으로 파산 직전으로 몰렸습니다.
마침내 러시아 제국의 정예함대였던 발틱 함대가 동아시아 바다에 등장했고 일본 제국 해군과 러시아 제국 해군이 쓰시마에서 맡붙었습니다. 러일전쟁의 승패가 갈린 쓰시마 해전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일본제국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해전의 승리로 일본제국의 사기가 올라가고 러시아 제국은 패배를 실감했습니다.
결국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의 중재로 러일전쟁이 끝났습니다. 당시 양측은 전쟁에 국고를 모두 탕진하고 파산 직전에 몰렸습니다. 그 상황에서 쓰시마 해전으로 전쟁의 승패가 갈렸고 미국의 중재 하에 전쟁을 끝냈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은 남사할린을 할양받았지만 전쟁 배상금을 받지 못해 파산 직전 상태에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덕분에 일본제국은 대한제국을 병합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제국은 마지막 독립국 중국을 목전에 두었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제국의 승리는 당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러일전쟁은 우월한 유럽 백인국가들이 다른 국가들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으로 자리잡던 시대에 비유럽인이 유럽인을 굴복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심지어 굴복시킨 대상은 대영제국과 세계 일인자 자리를 두고 다투던 러시아 제국이었습니다. 유럽 양대 강대국으로 평가받던 러시아 제국의 패배는 비유럽권 국가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란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국 뿐만 아니라 식민 지배를 받던 피지배인들이 지배층인 유럽국가에 대항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일본제국을 롤모델로 삼아 자국을 유럽 열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들의 노력은 대부분 실패했지만 세계사에 큰 의미를 주었습니다.
러일전쟁은 식민지 독립과 유럽 제국주의 시대의 붕괴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작 일본제국은 제국주의를 막 시작하는 단계였고 아시아의 제국으로 성장하기를 원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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