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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시작/주변국의 상황

[주변국의 상황: 모로코 술탄국] 열강들의 외교전선

by 롱카이. 2022. 1. 5.
  • 유럽과 모로코의 충돌

대서양 지중해와 지브롤터 해협
지브롤터 해협

19세기에 들어서 유럽국가들은 급격한 산업성장을 이룩했습니다. 산업 강대국이 된 유럽국가들은 유럽에서 가까운 아프리카를 노렸습니다. 유럽 열강들은 북아프리카 오스만 제국 영토를 공격하며 오스만 제국에게서 식민지를 빼앗아갔습니다. 당시 모로코는 오스만 제국령이 아닌 독립 술탄국이었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과의 사건에 휘말리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유럽의 침탈을 받을 운명이었습니다. 모로코와 스페인이 맞닿은 지브롤터 해협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자연 운하였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 프랑스와 스페인의 모로코 침공

모로코 탕헤르 그림
탕헤르

1840년 프랑스령 알제리의 독립전쟁을 지도한 압드 알 까디르는 프랑스와 싸움에서 패배하고 모로코 술탄국으로 도망갔습니다. 프랑스는 압드 알 라흐만 모로코 술탄에게 압드 알 까디르에 대한 지원 중단을 요구했지만 모로코 술탄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프랑스는 바로 모로코와 전쟁을 벌였고 프랑스군은 탕헤르와 모로코 주요 항구들을 포격했습니다. 이에 항복한 모로코는 탕헤르 조약으로 알제리를 프랑스령으로 인정했습니다.

 

이어 프랑스는 압드 알 까디르를 송환할 것을 요구했지만 모로코 술탄은 그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모로코 술탄은 압드 알 까디르에 대한 지원은 중단하고 압드 알 까디르가 지하드를 선포하게 했습니다. 압드 알 까디르는 지하드를 선포하고 프랑스와의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이에 프랑스는 살레를 포격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허나 술탄이 죽자 프랑스는 우즈다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모로코 리프 부족민 전사 사진
리프 부족민

스페인 역시 모로코에 군사 위협을 가했습니다. 1840년대에 모로코 리프 부족이 북아프리카 스페인 도시들을 꾸준히 공격했습니다. 스페인군은 리프 부족을 공격한다고 선포하고 모로코를 공격했습니다. 모로코는 스페인군에게 패배했고 조약을 맺어 스페인-모로코 국경을 확실히 정했습니다.

 

국경을 확정했음에도 리프 부족은 침공을 지속했고 스페인군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스페인-모로코 국경 사이에 있는 리프 부족들을 여러차례 소탕했습니다.

 

 

 

  • 유럽의 첫번째 외교 탁상: 알헤시라스 조약

제1차 모로코 위기 알헤시라스 조약
빨간색: 스페인&스페인 식민지  연초록: 모로코 보호국   연분홍: 북아프리카 스페인 영토

1904년 스페인과 프랑스는 외교 탁상에서 모로코 지도를 펼쳐 놓고 모로코를 분할하는 비밀 협정을 맺었습니다. 스페인은 모로코 지브롤터 해협과 서사하라를, 프랑스는 모로코 남쪽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프랑스는 비밀 협정 전 대영제국과 협상해 프랑스가 모로코를 차지하면 이집트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영국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유럽의 행보를 본 모로코 압드 알 아지즈 술탄은 이 상황을 자국의 위기라 보았습니다. 술탄은 모로코가 주권국으로 남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술탄은 독일제국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독일제국의 황제 빌헬름 2세는 1905년 모로코 탕헤르를 방문하며 독일제국을 과시하고 모로코와 독일제국의 관계를 국제 사회에 알렸습니다.

 

알헤시라스 조약에 서명하는 모로코 술탄
알헤시라스 조약에 서명하는 모로코 술탄

허나 대영제국이 적극적으로 프랑스를 도우며 독일제국을 압박했습니다. 이에 독일제국은 1906년 알헤시라스 조약을 만들어 국제 조약을 맺으려고 했습니다. 독일제국은 많은 국가들이 독일을 지지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만 독일제국을 지지했습니다. 대영제국, 러시아 제국, 미국, 이탈리아 왕국, 스페인 왕국이 프랑스를 지지했습니다. 독일은 유럽 사회에서 고립되었다는 사실에 충격먹고 물러날 수 밖에 없었고 조약 내용에 따라 모로코에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 기업들이 들어섰습니다. 유럽 기업들은 모로코 해안 도시들을 장악했습니다.

 

모로코인들은 알헤시라스 조약에 반대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모로코 부족들이 프랑스가 점령한 우즈다 도시를 공격했고 프랑스는 그 복수로 카사블랑카를 포격하고 내륙 평원을 장악했습니다. 1911년 프랑스군은 알제리에서 출발해 지즈 강으로 진격한 후 지즈 강 동부 모로코 영토를 강탈했습니다.

 

 

 

  • 유럽의 두번째 외교탁상: 페스 조약

제2차 모로코 위기 페스 조약
페스 모스크를 방문한 술탄

한편 모로코인들은 새 모로코 지배자 압둘하피드 술탄에 반발해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모로코인 봉기가 모로코 내륙까지 확산되면서 모로코인 자경대까지 생겼고 유럽 국가들은 모로코 내 혹은 부근에 사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그 와중 독일군 전함이 독일인을 구하려 모로코 해안 아가디르에 나타났습니다. 독일군 고속정은 일부러 독일인이 사는 곳에서 멀리 정박했고 독일인들은 3일을 걸어 전함에 탔습니다. 이 행위는 독일이 영국과 프랑스를 의식해서 한 행위였습니다.

 

독일의 행보를 본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과 전쟁을 할지를 두고 회의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독일과 영국, 프랑스는 극적으로 협상 타결에 성공했고 프랑스와 스페인은 모로코를 분할하고 독일은 프랑스령 콩고의 일부를 식민지로 얻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와 모로코는 페스 조약을 맺어 모로코는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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