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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시작/주변국의 상황

[주변국의 상황: 아라비아 반도] 가문의 전쟁

by 롱카이. 2022. 1. 3.

네지드 아라비아 사막
네지드 아라비아 사막

 

1900년 아라비아 반도 지도
1900년 아라비아 지도

 

  • 아라비아 반도의 한가운데 네지드

중동의 강자 오스만 제국은 오랜 기간 아라비아의 헤자즈와 메소포타미아(이라크)를 지배했습니다. 헤자즈는 아라비아 반도 서쪽 홍해에 인접한 곳으로 이슬람 상징성이 강하고 오래전부터 관개농업이 발달한 곳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헤자즈 지역을 통치하며 이슬람의 맹주를 천명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헤자즈 지역과 이라크, 카타르 지방을 통치했지만 아라비아 반도의 가운데 네지드 지역은 직접 통치하지 않았습니다. 네지드는 사막으로 인구도 적고 자원도 풍부하지 않아 직접 통치한다고 이득이 되는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네지드 지역은 사막 밖에 없는 지역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네지드 지역에는 사막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들이 씨족 단위로 생활할 뿐 국가 단위의 구역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7세기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고 아라비아반도를 통일한 그 순간에도 무함마드는 헤자즈 지역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네지드는 소외된 땅이었습니다. 이후 다른 이슬람 제국들도 네지드는 정복하지 않은 채 두었습니다. 그러다 18세기 와하브 운동이 일어나면서 네지드 지역에 토후국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 세 가문의 전쟁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헤자즈 지역은 이슬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헤자즈 지역에는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의 혈통 하심 가문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하심 가문은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이슬람 정통 가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심 가문은 오스만 제국이 헤자즈를 통치할 때 헤자즈 지역을 통치할 권한을 받았고 정통 가문으로 우대받았습니다. 그리고 후에 하심 가문에 도전하는 가문이 등장했습니다. 사우드 가문입니다. 사우드 가문은 아라비아 네지드를 지배하며 와하브파를 양성하며 지지자를 끌어모았습니다. 그리고 사우드 가문과 갈등을 벌인 라쉬드 가문이 있었습니다. 하심 가문, 사우드 가문, 라쉬드 가문 세 가문은 아라비아의 지배자 자리를 놓고 긴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하심 가문

하심 가문 국기
중세 하심 가문 국기

하심 가문은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던 때 메카의 지배계급인 쿠라이시족에 속한 가문이었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증조할아버지 하심 이븐 압드 마나프가 시조로 대대손손 메카의 에미르(통치자) 작위를 세습했습니다. 하심 가문은 여러 세기 동안 이슬람 제국에게 정통 가문으로 인정받으며 메카와 헤자즈 지역의 에미르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헤자즈 지역을 통치한 오스만 제국도 하심 가문을 예우하며 제다 행정구역을 개설해 하심가문에게 제다 총독 자리를 주었습니다.

오스만 제국 하심 가문 헤자즈
오스만 제국 행정구역 제다 성. 붉은색으로 칠해진 곳 중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곳이 헤자즈 지역


하심 가문은 오스만 제국에 충성하며 제국으로부터 예우를 받았습니다. 18세기 사막 한가운데인 네지드에서 새로운 가문이 등장했지만 하심 가문은 오랜 기간 예연자 무함마드의 정통 가문으로 인정받았고 새롭게 등장한 가문은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우드 가문

사우드 가문 사우디아라비아 국장
사우드 가문을 상징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장

  • 와하브 운동

와하브파 와하브 운동 문장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

18세기 중엽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슬람 복고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슬람 신학자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는 신학교에서 이슬람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시리아의 법학자이자 신학자인 이븐 타이미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븐 타이미야는 다마스쿠스에서 자라 다마스쿠스와 카이로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학자였습니다. 그는 이슬람 전성기인 압바스 왕조의 멸망을 관심있게 연구했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을 배출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제국으로 성장한 압바스 왕조는 몽골이 침입하면서 처참하게 멸망했고 압바스 수도 바그다드는 황무지가 되었으며 이슬람 제국이 쇠퇴하고 수많은 국가들로 분열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아랍인들은 유목민 튀르크인들이 세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몽골의 침입은 이슬람을 쇠퇴기에 접어들게 한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븐 타이미야는 몽골의 침입 원인을 무슬림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알라께서 무슬림에게 내린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압바스 왕조는 사회적으로 매우 관대한 국가로 이교도도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으며 종교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이븐 타이미야는 이 태도를 신실하지 않은 태도로 보았고 이 때문에 압바스 왕조가 멸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슬람이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는 신실하고 올바른 길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서는 무함마드 시절 이슬람으로 다시 돌아가고 무함마드 사후에 등장한 해석은 따르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슬람 경전 꾸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했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꾸란을 원리원칙대로 해석하기를 주장했고 올바른 생각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지하드(성전 聖戰)를 수행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생각은 이슬람 통치자 이맘의 권위를 실추시켰습니다. 이맘은 이슬람의 지도자로 이맘 만이 지하드를 선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지하드 외에도 이맘을 비난하며 이맘의 권위를 믿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다른 이슬람 법학자들에게 비판을 받고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과격한 사상은 당시 많은 이들에게 비난받았지만 와하브는 그의 주장을 따랐습니다.


  • 사우드 가문의 첫 국가 디리야 토후국의 탄생

디리야 토후국
디리야 토후국

이슬람 신학자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는 이븐 타이미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아라비아의 토후(영주)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를 찾아갔습니다. 둘은 동맹을 맺고 와하브 운동을 벌였습니다. 둘은 와하브 운동으로 지지자를 얻었고 1744년 네지즈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 디리야에서 디리야 토후국을 건국했습니다.

건국 당시 오스만 제국은 디리야 토후국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들의 팽창을 방관했습니다. 디리야 토후국의 실질 지배자인 사우드는 전사를 양성해 아라비아 반도를 정복하고 1805년 헤자즈를 정복해 메카와 메디나를 차지했습니다.

사우드 가문의 명을 받아 메카 공격을 지휘한 압둘아지즈 빈 무함마드는 메카를 점령했고 메카를 지배하던 하심 가문의 갈리브 이븐 무사이드는 제다 도시로 피난했지만 체포당했고 하심 가문은 사우드 가문의 봉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헤자즈를 잃은 오스만 제국은 분노하며 헤자즈 탈환에 나섰습니다.

제국은 1814년 이집트의 영주 무하마드 알리에게 군사를 주고 헤자즈 탈환을 명했습니다. 무함마드 알리는 사우드 군을 물리치며 헤자즈를 탈환했고 사우드 군을 추격해 1818년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와 그의 가족을 참수했습니다.

사우드 가문의 도전은 실패했지만 오스만 제국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사우드 가문의 디리야 토후국은 이슬람의 부흥을 제창하며 대중 계몽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로 산발적으로 퍼져있던 아랍인을 아랍인 정체성을 가지고 아랍인 단결과 독립의지를 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805년 이슬람 성지를 차지해 오스만 제국의 종교적 권위성을 실추시켰고 아랍 이슬람 국가의 건설을 모두가 목격하게 했습니다. 이로 아랍인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통치 권위는 크게 떨어졌고 아라비아 반도에 사는 아랍인의 민족주의가 고조되었습니다.


  • 네지드 토후국의 등장

네지드 토후국
네지드 토후국

오스만 제국의 탄압으로 사우드 제1왕국인 디리야 토후국은 멸망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우드 가문의 혈통은 끊기지 않았고 사우드 가문은 다시 한번 아랍 국가를 세울 준비를 했습니다. 1824년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의 손자 투르키 이븐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가 리야드에 다시 한번 국가를 세웠습니다. 리야드에 등장한 국가는 네지드 토후국으로 투르키 이븐 압둘라는 네지드 지역을 수복하는데 열중했습니다. 이번에는 오스만 제국이 다스리고 있는 헤자즈 지역을 공격하지 않았고 대신 와하브파 학자들을 양성하며 내실 다지기에 열중했습니다. 이때 네지드 지역에 또다른 가문이 등장했습니다.



라쉬드 가문

  • 라쉬드 가문의 등장과 사우드 가문의 패퇴

라쉬드 가문 자발 샴마르 토후국 국기
라쉬드 가문 국기

압둘라 1세 빈 알리 알 라쉬드는 1936년 네지드에 있는 도시 하일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하일의 통치자 무함마드 알리의 통치에 반발해 일으킨 반란에 성공했고 하일과 주변을 지배했고 자발 샴마르 토후국을 선포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자발 샴마르 토후국은 네지드 토후국과 끝없이 충돌했습니다. 1891년 자발 샴마르 토후국은 물라이다 전투에서 네지드 토후국 군대를 격파하며 네지드 토후국의 수도 리야드를 점령했습니다. 네지드 토후국의 지배자 사우드 가문은 쿠웨이트로 추방되었고 자발 샴마르 토후국이 네지드 지역을 지배했습니다.

자발 샴마르 토후국 영토
라쉬드 가문의 자발 샴마르 토후국


네지드 지역을 통일한 라쉬드 가문은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으며 네지드의 지배자로 자리잡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은 유럽 국가들의 끊임없는 침탈에 시달리며 빠르게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쿠웨이트로 쫒겨난 사우드 가문은 리야드 탈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 두 가문의 전쟁

1902년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지휘하는 사우디군은 리야드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라쉬드 가문의 에미르인 압둘아지드 빈 무타입 라쉬드는 사우디군을 막지 못했고 리야드를 잃었습니다. 리야드를 탈환한 사우드 가문은 네지드-하사 토후국(리야드 토후국)을 건립했습니다.

사우드 가문 하심 가문 라쉬드 가문 아라비아 지도
초록색: 사우드 가문 노란색: 하심 가문(오스만 제국) 빨간색: 라쉬드 가문

 

네지드-하사 토후국 국기
네지드-하사 토후국 국기


리야드를 탈환한 네지드-하사 토후국은 사막인 네지드 지역에서 농업이 가능한 까심 지방을 차지하기 위해 자발 샴마르 토후국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네지드 알 까심 농사
네지드 지역의 농지 알 까심

1903년 사우디군은 라쉬드군을 공격했습니다. 두 가문에 간혈적으로 벌어진 전투는 사우디군의 승리로 사우디군에게 유리하게 흘러갔습니다. 딜람 전투에서 승리한 사우디군은 네지드 남부를 차지했고 우나이자 전투, 바카리야 전투, 쉬나나 전투에서 승리한 사우디군은 라쉬드군과 오스만 제국군을 라우다 무한나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1906년 라우다 무한나 전투에서 라쉬드 가문의 에미르 압둘아지즈 빈 무타입 알 라쉬드가 전사하고 오스만 군이 후퇴하면서 사우디군의 대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까삼 전쟁 이후 자발 샴마르 토후국과 네지드-하사 토후국 아라비아 지도
까삼 전쟁 후 북부의 라쉬드 가문과 남부의 사우드 가문


까삼 전쟁 이후 라쉬드 가문은 쇠퇴해갔으며 사우드 가문은 강성해져갔습니다. 그리고 사우드 가문의 와하브파는 아랍 민족주의를 자극하며 오스만 제국에 반발해 아라비아 반도에 아랍인 국가 탄생을 촉구했습니다. 또 오스만 제국은 시간이 갈 수록 눈에 띄게 쇠약해졌으며 아라비아 반도를 지배한 세 가문은 더이상 오스만 제국을 위협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스만 제국의 후퇴는 아라비아 반도의 해방을 의미했고 세 가문은 아라비아 반도의 지배자로 서기 위한 마지막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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