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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뢰2

[갈리폴리 전선: 연합군의 공세] 암벽 위의 참호선 제1차 크리티아 전투 1915년 4월 25일 헬레스 곶에 상륙한 영국군은 크리티아كريثيا로 진격을 시도했지만 오스만군의 저항에 가로막혀 진격하지 못하고 멈췄습니다. 영국군은 병력이 적에 비해 열세라고 판단했고 프랑스군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따라 프랑스군이 헬레스 곶에 지원병력을 보냈고 영국군의 참호에 진입했습니다. 영국군은 프랑스군이 우익을 보호하는 동안 좌익으로 돌격해 크리티아كريثيا를 점령하기로 했습니다. 1915년 4월 28일 대영제국 왕립 해군 전함들이 함포사격을 가했고 영국군은 일제히 돌격했습니다. 허나 영국군은 점령지의 위치를 몰랐고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다 기회를 놓쳤고 해군 함포 사격이 끝나자 오스만군은 참호에서 나와 방어진을 치고 영국군을 공격했습니다. 영국군은 오스만군의 기.. 2022. 3. 25.
[해상전투: 북해해전] 최강함대의 대결 건함경쟁의 종착지 카이저 빌헬름 2세가 독일제국의 지도자로 등극한 이후 독일제국은 대양함대 건설을 추구했습니다. 빌헬름 2세는 대영제국 대양해군을 롤모델 삼아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지배하는 독일 해군 건설을 원했습니다. 해서 카이저 명에 따라 독일제국은 수많은 전함을 만들었습니다. 독일제국의 행보는 주변국들을 위협했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해군력을 보유한 대영제국은 프랑스 제3공화국과 러시아 제국이 독일제국을 막기를 원했지만 독일제국은 프랑스와 러시아를 압도했고 대영제국을 추격했습니다. 결국 대영제국도 독일제국에 대항해야 했습니다. 대영제국은 해군력의 압도적 차이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제국이 전함을 건조하면 대영제국도 맞써 전함을 건조했습니다. 건함경쟁은 양국의 국가예산을 소모하면서 치열.. 2022.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