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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종료/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지 않은 전쟁: 폴란드 제2공화국] 미엔지모제

by 롱카이. 2022. 2. 25.
  • 폴란드 제2공화국

https://www.youtube.com/watch?v=bqUGFWpY3vM

1917년 1월 14일 건국된 폴란드 왕국은 폴란드 민족 독립국가였지만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 분할 간섭지배를 받는 불완전한 독립국가였습니다.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폴란드 왕국에 국왕을 임명하려고 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사망하면서 국왕 추대는 취소되고 국왕이 없는 입헌군주제 국가로 유지했습니다. 독일제국은 폴란드 왕국에 의회를 건립하게 하며 지원하면서 폴란드 왕국을 독일제국으로 합병할 준비를 했습니다. 허나 1918년 11월 13일 독일제국이 서부전선에서 연합국에게 항복하고 우드로 윌슨 미합중국 대통령이 14개조 평화 원칙을 발표하면서 독일제국에게 폴란드의 완전한 독립을 요구했습니다. 독일제국이 서부전선에서 항복하기 직전 1918년 10월 7일 폴란드 제국의회는 폴란드 임시 정부 의회로 개편되고 폴란드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폴란드 임시 정부 의회는 막스주의를 표창한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 사회민주당을 제외한 당원들로 구성되었고 난잡한 당원으로 혼란에 빠졌습니다. 폴란드 임시 정부 의회는 여러 당을 확립해가며 형태를 자리잡아갔고 1918년 11월 13일 독일제국이 항복하면서 완전히 독립했습니다. 허나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편성한 폴란드 왕국 영토 외에도 폴란드인들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살고 있었고 민족주의에 따라 폴란드 제2공화국은 폴란드 영역을 확장하려고 했습니다.


  •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전쟁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전쟁
테셴-실레지아 지역(붉은색: 전 폴란드 제2공화국 영토, 녹색: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1918년 11월 5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분할되고 체코슬로바키아 위원회는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의 영역을 따라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을 확정했습니다. 허나 테셴-실레지아Těšín Silesia 지역은 언어적으로 폴란드어, 게르만어, 보헤미아어 등 여러 언어가 통용되었고 민족적 구분이 불명확했습니다. 그래서 체코슬로바키아 위원회와 폴란드 왕국은 테셴-실레지아Těšín Silesia 지역에 국경선을 임의로 결정했습니다. 허나 결정한 국경선에 따르면 체코슬로바키아는 테셴-실레지아Těšín Silesia 지역의 철도선과 탄광의 일부를 폴란드 왕국에게 할양했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철도선은 국경에 의해 단절되었습니다. 그래서 1919년 1월 23일 체코슬로바키아군은 폴란드군을 공격해 테셴-실레지아Těšín Silesia 지역을 합병했습니다. 전쟁은 일주일 만에 끝났고 폴란드 제2공화국은 체코슬로바키아에게 테셴-실레지아Těšín Silesia 전 지역을 할양했습니다. 허나 이 사건으로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 제2공화국은 험악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된 전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자 갈리치아Galizien 지역이 분리되었고 갈리치아Galizien에 여러 정권이 등장했습니다. 갈리치아Galizien 역시 여러 민족들이 혼재되어 살고 있던 지역으로 우크라이나인과 폴란드인 등 여러 민족들이 주요 민족을 구성했습니다. 때문에 갈리치아Galizien 지역에 우크라이나 민족 정권과 폴란드 민족 정권이 등장했습니다. 갈리치아Галичина에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영향을 받아 서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고 폴란드 제2공화국은 이에 항의했습니다. 더불어 갈리치아Galicja의 폴란드인들도 서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건립에 반발해 리비우Lwów에서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폴란드 제2공화국과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은 갈리치아Galizien의 지배권을 두고 갈등을 벌였고 1918년 1월 11일 폴란드 제2공화국의 무장단체가 리비우Lwów를 점령하고 서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침공하면서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방어선을 확립하며 폴란드군의 침공에 대항했지만 폴란드군은 카르파티아Karpaty 산맥을 통해 우회 공세를 펼쳐 우크라이나군 방어선을 붕괴시키고 진격해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후 폴란드 제2공화국은 1920년 4월 21일 바르샤바 조약으로 갈리치아Galicja 북부를 획득했습니다. 허나 1918년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 동안 러시아 적군은 폴란드 제2공화국의 갈리치아Galicja 점령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폴란드를 침공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정권에 밀려 해체되었고 폴란드 제2공화국은 갈리치아Galicja 동부 전역을 점령했습니다.


  •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비스와 강의 기적
비스와 강의 기적

1918년 11월 1일 폴란드군이 리비우Lwów를 포위한 우크라이나군을 격퇴하자 우크라이나에 소비에트 정권을 세우며 영향력을 확장하던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은 폴란드군의 행보에 반발하며 폴란드 제2공화국을 침공했습니다. 러시아 적군은 1919년 2월 폴란드 제2공화국 국경을 넘어 빠른 속도로 진격했습니다. 하지만 폴란드군은 서유럽 연합국에게 무기 지원을 받았고 적군을 격퇴한 뒤 역으로 네만Niemem 강을 건너 러시아로 진격했습니다. 러시아 적군은 후퇴했고 폴란드군은 민스크Mińsk를 점령했지만 바이마르 공화국과의 국경분쟁으로 군을 철수했고 러시아 적군도 러시아 내전에 투입되어 둘은 잠시 휴전했습니다. 하지만 1920년 4월 25일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적군은 키예프 공세로 폴란드 제2공화국을 다시 침공했고 폴란드군은 적군의 공세에 밀려 바르샤바Warszawa로 후퇴했습니다. 허나 폴란드군은 바르샤바Warszawa 근처 비스와Wisła 강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인 결과 적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1920년 8월 벌어진 바르샤바Warszawa 전투는 비스와 강의 기적이라 불렸고 폴란드군은 바르샤바 전투의 승리로 적군을 물리치고 볼셰비키 혁명이 서부로 확산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폴란드 커즌선
검은 실선: 커즌 선

바르샤바Warszawa 전투에서 승리한 폴란드군은 동부로 진격하며 적군을 몰아냈고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도와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이 우크라이나 지역을 탈환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폴란드군은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발안한 14개조 평화 원칙으로 정한 폴란드 제2공화국의 동부국경인 커즌Curzon 선을 넘어 진격했고 이에 적군은 1920년 10월 휴전 협약을 맺고 1921년 3월 18일 리가 평화 조약을 맺어 폴란드 동부 국경을 확정하고 폴란드 제2공화국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전쟁을 종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 봉기

폴란드 비엘코폴스카 봉기
비엘코폴스카 봉기

1795년 폴란드-리투아니아가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에게 분할된 이후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 지역은 독일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에 살던 폴란드인들은 독일의 합병에 강하게 반대하며 1806년 봉기를 일으켰지만 진압되었고 프로이센 왕국과 독일제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1918년 우드로 윌슨 미합중국 대통령의 14개조 평화 원칙에 따라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 지역은 폴란드 민족국가의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허나 연합국은 폴란드 서부 영토를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제국은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전환되었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 지역을 폴란드 제2공화국에게 할양하지 않고 뜸을 들였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오히려 비엘코폴스카Wilekopolska 지역에 폴란드인과 유태인을 학살하고 추방해 게르만인만 거주하는 지역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에 1918년 12월 27일 폴란드인들은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 봉기를 일으켜 바이마르 공화국에 항의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군경을 투입해 봉기를 진압했습니다. 폴란드인들은 게릴라전과 테러로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항했고 1919년 초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에 연합국은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으로 폴란드 제2공화국의 영토를 확정하면서 갈등을 끝냈습니다. 이로서 폴란드 제2공화국은 바이마르 공화국으로부터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 지역을 할양받아 해안선을 획득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레시아 봉기 진압
봉기한 폴란드인들을 체포하는 독일군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레시아Śląsk(슐레지엔Schlesien) 역시 폴란드 분할로 독일령이 된 지역으로 많은 폴란드인들이 살던 지역이었습니다. 때문에 폴란드 제2공화국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실레시아Śląsk도 합병할 것을 기대했지만 연합국은 실레시아Śląsk 지역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영토로 확정했습니다. 이에 폴란드인들은 1919년 8월 15일 실레시아 봉기를 일으켜 실레시아Śląsk를 폴란드 제2공화국의 영토로 합병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연합국은 실레시아 봉기를 방관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임시 국민군을 투입해 실레시아 봉기를 진압했습니다. 그래서 실레시아 봉기는 폴란드인들의 봉기로 끝이 났습니다.


  • 폴란드-리투아니아 전쟁

폴란드-리투아니아 전쟁
폴란드 리투아니아 전쟁 당시 포병

1917년 독일제국은 동부전선의 지역을 점령하며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지역의 경계선을 확정했습니다. 하지만 1918년 11월 13일 독일제국은 항복했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경계선은 모호해졌습니다. 그 후 연합국은 1919년 6월 28일 베르샤유 조약으로 포슈Foch 선으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국경을 정했습니다. 포슈Foch 선은 슈발키Suwałki를 이등분했고 리투아니아군은 포슈Foch 선 동부로 후퇴했습니다. 허나 리투아니아군은 세이니Sejny는 리투아니아인들이 많이 산다는 이유로 세이니Sejny에서 철수하지 않았고 세이니Sejny의 폴란드인은 이에 항의해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세이니Sejny 봉기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세이니Sejny 봉기는 폴란드 제2공화국과 리투아니아 공화국 간의 영토분쟁을 일으켰고 폴란드군은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때 네만Niemen 강을 건너 진격하면서 리투아니아 공화국을 침공했습니다. 폴란드군은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많은 영토를 점령했지만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고 1920년 적군이 키예프 공세를 시작으로 리투아니아 지역에서도 공세를 시작하자 폴란드군은 후퇴했고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과 리투아니아 공화국은 1920년 7월 12일 소비에트-리투아니아 평화 조약을 체결해 국경을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리투아니아군은 폴란드군을 공격하며 잃어버린 리투아니아 공화국 영토를 탈환하고 더 나아가 슈발키Suwałki를 점령했습니다. 폴란드군은 적군의 대공세에 후퇴했다가 비스와 강의 기적으로 적군을 물리치고 다시 진격해 슈발키Suwałki를 재점령했습니다. 슈발키Suwałki는 폴란드 제2공화국과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분쟁 지역이 되었고 1920년 9월 22일 둘은 네만Niemen 강을 두고 세이니Sejny 전쟁을 치뤘습니다. 전투에서 폴란드군이 승리했지만 국제 연합이 압박해 1920년 10월 7일 폴란드 제2공화국과 리투아니아 공화국은 슈발키 조약을 맺어 국경을 확정했습니다.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Republic of Central Lithuania

허나 폴란드 제2공화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고 루챤 젤리고프스키 폴란드 장군이 반란을 일으켜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수도 빌뉴스Wilno를 무력 점령해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을 건립했습니다. 수도를 한순간에 잃은 리투아니아 공화국은 이에 반발했고 폴란드 제2공화국과 리투아니아 공화국은 중앙 리투아니아 공화국을 두고 다시 분쟁을 벌였습니다. 이로 빌뉴스 위기가 발발했습니다. 이에 국제 연맹은 다시 분쟁에 개입했지만 폴란드 제2공화국과 리투아니아 공화국은 국제연맹의 중재를 무시했고 결국 프랑스 제3공화국이 중재해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을 폴란드 제2공화국에 합병하는 것을 끝이 났고 폴란드 제2공화국과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관계는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 미엔지모제Międzymorze

유제프 클레멘스 피우수트스키
유제프 클레멘스 피우수트스키 폴란드 제2공화국 임시국가원수

유제프 클레멘스 피우수트스키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의용군의 사령관으로 동맹국이 폴란드 왕국을 건국하고 간섭하자 그는 항의를 했고 반역 혐의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하지만 1918년 동맹국이 항복하고 폴란드 제2공화국이 설립되면서 그는 감옥에서 석방되어 폴란드 제2공화국의 임시국가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부활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폴란드-리투아니아를 건국하고 러시아의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독립국으로 만들어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러시아 간의 완충지대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1918년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폴란드군을 민스크Minsk까지 진군시키고 리투아니아를 합병했습니다.

피우수트스키의 미엔지모제
피우수트스키의 미엔지모제

유제프 클레멘스 피우수트스키는 미엔지모제Międzymorze(바다 사이)를 주장하며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동유럽 약소국끼리 하나의 연방국가로 통일해 양측의 팽창정책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자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는 폴란드 제2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헝가리 공화국,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 리투아니아 공화국, 라트비아 공화국, 에스토니아 공화국, 핀란드 공화국을 거론했고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완충지대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폴란드-리투아니아 합병을 주장했습니다.

수정된 미엔지모제
수정된 미엔지모제

허나 유제프 클레멘스 피우수트스키의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핀란드 공화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멀어 연방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지 의문이었고 리투아니아 공화국과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은 폴란드 제2공화국에게 적대적이었고 다른 국가들은 연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미엔지모제는 유제프 클레멘스 피우수트스키 사후에도 수정되며 추진되었지만 그 누구도 협조하지 않았고 미엔지모제는 사장되었습니다.


  • 독일-폴란드 무역 전쟁

바이마르-폴란드 무역전쟁
폴란드 제2공화국의 영토 합병(13번 번호가 실레시아)

바이마르 공화국과 폴란드 제2공화국은 실레시아Śląsk(슐레지엔Schlesien) 영토 분할 문제로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게르만인과 폴란드인이 같이 사는 실레시아Śląsk 지역은 민족주의에 따라 영토를 분할하기 불분명한 곳으로 연합국은 이 문제를 쉽사리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연합국은 주민투표로 영토 귀결을 결정지으려고 했으나 항상 비등한 투표결과가 나타났고 게르만인과 폴란드인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결국 1922년 국제 연맹이 실레시아Śląsk 국경선을 강제로 규정해 분쟁을 일단락시켰지만 이 결정은 바이마르 공화국과 폴란드 제2공화국 누구에게도 만족스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바이마르 공화국은 1925년 1월 6일 베르샤유 조약의 무관세 원칙을 무시하고 폴란드 제2공화국의 석탄, 철광석, 철강 수입에 관세를 부과하고 폴란드 제2공화국으로 수출을 일절 중단했습니다. 그러자 폴란드 제2공화국은 이에 항의했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은 영토 재협상 없이 관세 철폐를 하지 않겠다고 주장했고 폴란드 제2공화국도 바이마르 공화국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그러자 바이마르 공화국은 폴란드 전 수입상품에 관세를 부과했고 바이마르 공화국 수출 의존도가 높았던 폴란드 제2공화국의 경제는 침체되었습니다. 그러자 폴란드 제2공화국은 국제 연맹에 도움을 청했지만 국제 연맹도 바이마르 공화국의 눈치를 보며 협조하지 않았고 1929년 세계 대공황이 발발하자 무역 분쟁 해결은 무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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