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전구/발칸전선

[발칸전선: 콜루바라 전투] 세르비아군의 대역전승

by 롱카이. 2022. 3. 1.
  • 드리나Дрина 전투 이후의 형세

베를린-바그다드 철도 공사 사진
완성되지 않은 베를린-바그다드 철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오스카르 포티오레크 총독은 두번 실패한 세르비아 공세를 만회하기 위해 세번째 세르비아 공세를 구상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베를린-바그다드 철도 완성을 위해 어떻게든 빨리 세르비아 왕국을 병합해야 했습니다. 동맹국의 많은 자본가들이 베를린-바그다드 철도에 투자했고 모두의 예상과 달리 세르비아 왕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격퇴하며 몇달을 존속하자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았다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투자자들을 진정시키고 경제성장을 위해 빨리 세르비아 왕국을 점령해야 했습니다. 더불어 약소국 세르비아 왕국에게 패배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중립을 지키던 불가리아 왕국과 루마니아 왕국, 이탈리아 왕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허약한 국가로 판단하고 연합국으로 가담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공격할 수 있었기에 빨리 세르비아 왕국을 합병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우스운 국가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부는 오스카르 포티오레크 총독을 적극 지원했고 그에게 세르비아 왕국을 점령할 것을 압박했습니다. 오스카르 포티오레크 총독은 세르비아 국경 서부를 공격해 콜루바라Колубара 강을 건너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를 점령하는 작전을 구상했습니다.

세르비아 왕국 지보인 미시치 참모총장
지보인 미시치 참모총장

한편 세르비아 왕국은 드리나 전투에서 분전해 세르비아 왕국을 보존했지만 막대한 병력 손실을 입어 병사 수가 급감했습니다. 더불어 페타르 보예빅 세르비아 제1군 참모총장이 드리나Дрина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고 지보인 미시치가 그를 대신해 세르비아 제1군 참모총장으로 등극했습니다. 세르비아군은 드리나Дрина 전투의 후유증으로 동요했고 전쟁에 지쳐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세르비아 군부는 보스니아 지역의 세르비아인 활동단체를 지원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대의 움직임을 보고받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전쟁 준비를 파악한 뒤 전투 준비를 했습니다. 허나 세르비아군 병력은 전에 비해 급격히 줄었고 방어선을 따라 방어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했습니다. 또 세르비아 왕국은 협상국의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로 전쟁을 해야 했고 물자는 점점 줄어갔습니다.


  • 제3차 세르비아 공세

발칸전선 세르비아 발레보를 점령한 오스트리아-헝가리군
발레보를 점령한 오스트리아-헝가리군

1914년 10월 말 세르비아 왕국에 겨울이 찾아오면서 국경선 근처 강가는 비에 젖어 진흙탕이 되었고 세르Цер 산맥은 눈으로 덮였습니다. 세르비아군은 겨울이 되고 진흙 위에 눈이 쌓인 세르비아 왕국 북부지대를 보고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침공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며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침공할 수 없을거라 생각해 안심했습니다. 그 사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병력을 국경지대에 집결했습니다. 1914년 11월 6일 드리나Дрина 강을 건너 세르비아 왕국 내부로 진격했습니다. 세르비아군은 항공정찰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진격을 지켜보았지만 병력이 열세인 관계로 전투를 벌이지 않고 후퇴했습니다. 덕분에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저항을 받지 않고 세르Цер 산맥까지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 포기하지 않은 세르비아

발칸전선 콜루바라 전투 사진
전투 중인 세르비아군

라도미르 푸트니크 참모총장은 세르비아군이 콜루바라Колубара 강 일대에서 수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평화 협상을 할 것을 명령했지만 지보인 미시치 세르비아 제1군 참모총장은 그 명령을 거부하고 병력을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 후방으로 후퇴시켰습니다. 지보인 미시치 세르비아 제1군 참모총장은 직접 전쟁을 대비하며 상부를 설득했고 라도미르 푸트니크 참모총장과 세르비아 총참모본부도 그의 말에 수긍하며 전쟁을 지속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라도미르 푸트니크는 질퍽한 토양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보급이 지연될 것으로 판단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최대한 유인한 뒤 물자 보급 부족에 시달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격퇴하기로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선의 세르비아 왕국 국왕 페타르 1세
최전방에 자리잡은 국왕 페타르 1세

한편 세르비아 왕국의 국왕 페타르 1세는 70을 넘긴 고령의 몸으로 친히 소총을 들고 왕자들과 함께 참호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국왕은 세르비아 병사들 앞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영웅들이여, 그대들은 두가지 맹세를 하였노라.
하나는 그대들의 임금인 짐에게 한 맹세요, 다른 하나는 조국에 한 맹세이다.
짐은 그저 무덤에 들어갈 날만 기다리는 다 죽어가는 늙은이일 뿐이니,
이제 제군들을 짐에 대한 맹세로부터 해방시켜주겠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심지어 이 나라의 임금인 짐조차도,
조국에 대한 맹세로부터 그대들을 해방시켜줄 수 없다.
만약 더는 도저히 싸울 수 없다고 느낀다면,
지금 당장 집에 가도 좋다.
짐이 맹세컨데, 이 전쟁이 끝나고 우리가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더라도,
집으로 돌아간 이들에게 어떤 해도 가하지 않으리라.
허나 짐과 짐의 왕자들은 끝까지 전선을 지킬 것이다.


국왕 페타르 1세의 연설은 세르비아군 장병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그들은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사기를 올렸습니다. 병사들 중 그 누구도 집에 가지 않았고 국왕 페타르 1세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국왕 페타르 1세는 라도미르 푸트니크 참모총장의 계획을 듣고 그의 계획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국왕 페타르 1세와 세르비아군
국왕 페타르 1세와 세르비아군

라도미르 푸트니코 참모총장은 세르비아 전군에게 후퇴를 명했고 세르비아군은 전원 후퇴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세르비아군이 궤멸되었다고 오판했고 11월 15일 콜루바라Колубара의 발레보Ваљево를 점령했고 이 소식을 빈Wien에 전달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 공세에 성공함을 미리 자축했고 협상국은 세르비아 왕국이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고 비통해 했습니다. 허나 세르비아군만큼은 전쟁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베오그라드를 점령한 오스트리아-헝가리군
베오그라드를 점령한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11월 16일 콜루바라Колубара 전체를 점령했습니다. 세르비아군은 콜루바라 남부에서 방어선을 요새화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침공에 대비했습니다. 반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추운 겨울 동상과 저체온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적극적인 공세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세르비아 왕국의 수도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를 함락해야 했고 서부로 계속 진격했습니다. 세르비아군은 간간히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기습하면서 후퇴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질병과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그럼에도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진격했고 1914년 12월 1일 베오그라드를 점령했습니다. 세르비아군은 11월 29일 병력을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에서 철수시켰고 후방으로 후퇴했습니다. 협상국은 세르비아 왕국의 멸망을 예상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 점령을 자축하며 공세를 중단했습니다. 덕분에 세르비아군은 후방에 군대를 재편성하고 독일제국에게 선전포고했습니다.

콜로바라 전투에서 후퇴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
후퇴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세르비아군은 후방에서 병력과 병기를 보충하고 12월 2일 라도미르 푸트니크 세르비아군 총사령관의 명령 하에 세르비아는 역공을 가했습니다. 승리를 자축하며 수도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에 몰려든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세르비아군의 역공에 당황했고 당일 야간에 세르비아군은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를 탈환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당황하며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에서 후퇴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군 병사들은 무질서하게 도망치며 흩어졌습니다. 세르비아군은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를 탈환한 후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추격해 12월 9일 콜루바라Колубара 전역을 빠르게 탈환하고 12월 10일 드리나Дрина 강 일대를 탈환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흩어져 각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로 도망쳤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세르비아군의 포로로 체포되었습니다.


  • 예상 외의 대승리

콜루바라 전투 승전
베오그라드를 행진하는 세르비아군

세르비아군의 콜루바라Колубара 전투의 승전은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협상국과 동맹국 모두 세르비아 왕국이 멸망했다고 생각했으며 세르비아 국민 역시 세르비아 왕국의 멸망을 예상하고 비통해 했습니다. 하지만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 함락 직후 세르비아군의 대반격에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대패했고 세르비아군은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협상국은 세르비아 왕국의 항전에 놀랐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체면을 구겼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오스카르 포티오레크 보스니아 총독을 해임하고 독일제국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독일제국 역시 베를린-바그다드 철도 건설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돕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동부전선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세르비아 합동 공세는 1915년으로 미루어졌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