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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구/발칸전선

[발칸전선: 대후퇴] 목숨을 건 대탈출

by 롱카이. 2022. 3. 2.
  • 위기의 세르비아군

테살로니키의 동부군
테살로니키의 동부군

세르비아 왕국이 위기에 처하자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갈리폴리 전선의 병력 일부를 차출해 동부군을 결성한 뒤 테살로니키Θεσσαλονίκη로 파병했습니다. 테살로니키Θεσσαλονίκη에 상륙한 동부군은 세르비아 왕국 남부로 진격해 세르비아군을 구원하려 했지만 불가리아 제2군이 선수를 쳐 세르비아 왕국 남부의 요충지를 점령하고 동부군을 압박했습니다. 때문에 동부군은 세르비아군과 조우하지 못했고 불가리아 제2군의 공격에 밀려 패퇴했습니다. 세르비아군은 구원군인 동부군이 고전해 병력과 물자 지원을 받지 못하고 홀로 동맹군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발칸전선 후퇴하는 세르비아군
후퇴하는 세르비아군

세르비아군은 코소보Косово로 후퇴해 방어진을 형성했지만 동맹군의 맹공에 단숨에 방어선을 돌파당했습니다. 세르비아군은 동맹군을 피해 후퇴할 수 밖에 없었고 곧 세르비아 왕국 국경지대에 도착했습니다. 세르비아군은 더이상 후퇴할 곳이 없었지만 몬테네그로 왕국과 알바니아 공국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남아있었습니다. 더불어 연합국 해군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의 오트란토Otranto 봉쇄를 돌파해 아드리아 해로 진격하려고 했기 때문에 세르비아군은 국운을 아드리아 해에 걸었습니다. 세르비아군은 국경을 넘어 몬테네그로 왕국과 알바니아 공국으로 이동해 연합국 해군의 지원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세르비아군은 그만큼 절박했습니다.


  • 대후퇴Албанска голгота

제1차 세계대전 세르비아 대후퇴
대후퇴

세르비아군은 코소보Косово에서 후퇴로를 결정했습니다. 세르비아군은 블로러Vlorë로 연합국 해군 함대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블로러Vlorë로 후퇴하기로 했습니다. 허나 세르비아군은 두 부대로 나뉘어져 있었고 세르비아군이 다같이 후퇴하다가 동맹군 산악부대의 추격에 따라잡혀 섬멸당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세르비아군은 코소보Косово 북부에 위치한 몬테네그로 왕국과 코소보Косово 서부에 위치한 알바니아 공국으로 병력을 분산해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페치Пећки에 위치한 세르비아 제1군, 제2군, 제3군 부대는 북부군으로 몬테네그로 왕국으로 이동해 해안선을 따라 블로러Vlorë로 후퇴하고 프리즈렌Призрен에 위치한 세르비아군은 국왕 페타르 1세와 왕자들이 이끄는 중부군과 그리스 왕국을 통과해 블로러Vlorë로 이동하는 남부군으로 분할되었습니다. 국왕 페타르 1세와 왕자들은 험준한 알바니아 산맥이 있는 알바니아 중부를 가로질러 이동하기로 했고 국왕 페타르 1세는 71세의 나이로 후계자 임명을 고민했습니다. 그는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세르비아군을 이끌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왕자에게 세르비아군 총지휘권을 양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왕위를 계승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세르비아군이 국왕 페타르 1세를 바라보고 그에게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눈길 속 후퇴하는 페타르 1세와 세르비아군
대후퇴

대후퇴가 결정되자 세르비아군와 세르비아 민중, 오스트리아-헝가리군 포로는 후퇴행렬에 가담했습니다. 세르비아 왕국에 파견된 스코틀랜드 여성병원 원정 의료원도 후퇴행렬에 가담했으며 1915년 11월 20일 후퇴행렬은 춥고 위험한 알바니아 산맥의 눈길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알바니아 산맥의 겨울은 혹독했고 많은 세르비아인들이 식량부족, 탈진, 동상으로 고생했고 끝내 목숨을 잃은 이들이 발생했습니다. 몬테네그로 왕국의 몬테네그로군은 세르비아인 후퇴행렬을 지원했고 연합국 해군도 빨리 오트란토Otranto 해협 봉쇄를 뚫고 진격하려고 했습니다. 1915년 연합국에 가담한 이탈리아 왕국도 해군 함대를 파견해 아드리아 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과 전투를 벌이며 발칸반도로 지원하려고 했습니다. 이탈리아 해군은 알바니아 공국 남부에 병력을 파견했고 블로러Vlorë를 점령하려고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불가리아군 창기병대
불가리아군 기병대

동맹국은 세르비아인 후퇴행렬을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은 몬테네그로 왕국 봉쇄를 강화했고 동맹군은 몬테네그로 왕국을 침공하고 이어 알바니아 공국도 침공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제국은 그리스 왕국도 동맹국에 가담시켜 그리스 왕국과 함께 알바니아를 점령해 세르비아 왕국을 완전히 섬멸하려고 했습니다. 때문에 불가리아군이 그리스 왕국이 차지한 마케도니아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병력을 준비하자 독일제국이 그리스 왕국을 동맹국으로 가담시켜야 하기 따문에 자극해서는 안된다며 불가리아 차르국을 말렸습니다.

장교들의 부축을 받으며 후퇴행렬을 지휘하는 세르비아 국왕 페타르 1세
장교들의 부축을 받으며 후퇴행렬을 지도하는 페타르 1세

국왕 페타르 1세와 그의 왕자들은 중부군을 지휘하며 험난한 알바니아 산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후퇴했습니다. 71세의 국왕은 많이 노쇠해진 상태로 장교들의 부축을 받으며 이동했고 그의 뒤를 따른 장병들과 백성들은 국왕 페타르 1세를 존경하며 그의 길에 동참했습니다. 왕자는 아버지의 권한을 이어받아 후퇴 행렬을 정리했고 후퇴행렬은 혹독한 겨울 목숨을 건 후퇴를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얼어죽었고 험난한 길은 이들이 따뜻한 아드리아 해까지 가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이들은 11월 21일 출발해 12월 추운 겨울 바람과 맞써며 후퇴를 멈추지 않았고 1916년 새해 아드리아 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국왕 페타르 1세는 대후퇴로 약 8만명의 군인과 약 16만명의 민간인을 잃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아드리아 해에서 연합국 해군의 지원을 목빠지게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 동맹국은 몬테네그로 왕국과 알바니아 공국을 침공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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