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바니아 공국의 탄생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연전연패한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 제국의 요구에 따라 발칸반도에서 슬라브계 국가들을 독립시켰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루마니아 왕국과 그리스 왕국을 시작으로 불가리아 왕국, 세르비아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을 독립시켰습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은 북마케도니아 지역과 알바니아 지역에 지배권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칸반도의 신생 독립국은 오스만 제국의 잔여 발칸지역을 점령하기를 원했고 1912년 10월 8일 제1차 발칸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따라 알바니아에서도 알바니아 봉기가 일어났고 세르비아 왕국과 불가리아 왕국, 그리스 왕국이 발칸반도 서부 지역을 점령하자 알바니아는 오스만 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났고 1912년 중앙 알바니아 공화국을 선포하며 독립국을 선포했습니다.
알바니아는 독리 직후 작은 영토를 보유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 왕국을 견제하기 위해 알바니아를 적극 지원했고 1913년 5월 30일 런던 조약에서 알바니아 왕국의 영토를 확장해 세르비아 왕국이 차지했던 해안선을 모두 장악하게 했습니다. 세르비아 왕국은 이에 항의했지만 신생 독립국은 국력이 약했기 때문에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았고 알바니아는 큰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알바니아는 1914년 3월 7일 빌헬름 오프 비트가 빌헬름 1세 대공으로 즉위하며 알바니아 공국을 선포했습니다.
- 알바니아 봉기
오스만 제국 치하의 알바니아는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이슬람이 주요 종교로 자리잡았고 동방 정교회와 가톨릭이 주요 종교였던 다른 발칸 국가들과는 달리 알바니아 지역은 이슬람이 성행했습니다. 때문에 알바니아에는 많은 무슬림들이 살고 있었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과 공존했습니다. 1900년대 오스만 제국의 알바니아 압제가 심화되자 알바니아 무슬림들은 오스만 제국에 반항해 봉기를 일으켰고 알바니아 무슬림들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해 알바니아 이슬람 공국 건국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제1차 발칸 전쟁은 유럽 기독교 국가들의 주도로 벌어졌고 제1차 발칸 전쟁에서 독립한 알바니아는 독일제국의 지원 하에 빌헬름 1세 대공이 지도자로 등극하고 기독교 세력의 알바니아 공국이 되었습니다. 알비니아의 무슬림들은 제1차 발칸 전쟁을 기독교 세력의 침탈로 규정하고 무슬림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알바니아 무슬림 봉기는 알바니아 공국 전역에서 일어났고 에사드 파샤 톱타니 총리는 자경단을 결성해 군벌세력을 만들었습니다. 대공 빌헬름 1세는 에사드 파샤 톱타니 총리에게 무장해체를 명령했지만 그는 무시하고 알바니아 공국 최대 군벌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에 대공 빌헬름 1세는 군대를 동원해 총리 군벌을 공격했고 총리 군벌은 패배해 에사드 파샤 톱타니 총리는 해외로 망명했습니다. 허나 대공 빌헬름 1세는 총리 군벌을 토벌하기 위해 알바니아 공국 북부의 미르디타 세력을 알바니아 공국의 친위 군대로 승격시켰고 코소보 출신 알바니아 공국의 헌병인 국제 헌병도 미르디타 세력에 가담해 알바니아 공국 북부에서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대공 빌헬름 1세에게 알바니아 공국을 오스만 제국의 종주령으로 복귀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군벌은 알바니아 수도로 진격했고 친위 군벌도 등장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루마니아군도 알바니아 공국에 진입했습니다. 알바니아 공국은 알바니아 봉기 이후 여러 군벌과 군부 세력이 각축장을 벌이는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졌습니다.
- 그리스 왕국의 알바니아 침공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알바니아 공국에 소규모 병력을 파견한 뒤 알바니아 공국에게 동맹국 가입을 강요했습니다. 이에 대공 빌헬름 1세는 요구를 거절했고 알바니아 공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관계는 험악해졌습니다. 그 사이 그리스 왕국은 그리스 왕국 영토 확장을 원했고 알바니아 공국의 남부 그리스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을 합병하려고 했습니다. 그리스 왕국은 1914년 중립국을 유지했지만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 군사력을 증강시켰고 비잔티움 제국의 후계자로 인정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리스 왕국이 합병하고 싶어한 북이피로스는 알바니아 공국의 지역 중 그리스계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북이피로스 지역 사람들은 그리스 왕국의 영토로 편입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1914년 2월 28일 북이피로스는 독립을 선포했지만 알바니아 공국과 유럽 강대국들은 이를 무시했고 1914년 3월 2일 북이피로스를 무력진압했습니다. 그리스 왕국은 이에 항의했고 알바니아 공국은 1914년 5월 17일 코르푸 규약으로 북이피로스 임시정부를 반주권국으로 인정했습니다.
1914년 9월 3일 알바니아 공국의 대공 빌헬름 1세가 혼란에 못이겨 해외로 망명가자 그리스 왕국은 북이피로스 임시정부의 영토로 군대를 파견해 합병했습니다. 혼란에 빠진 알바니아 공국은 그리스 왕국의 강제 합병을 신경쓰지 못했고 1914년 10월 27일 그리스 왕국은 코르푸 규약을 내세우며 연합국을 설득한 끝에 북이피로스 임시정부 합병을 승인받았습니다. 이에 이탈리아 왕국은 항의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은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 알바니아 해안지대를 지배했고 이탈리아 통일 전쟁으로 이탈리아 왕국이 건립된 이후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지를 탈환받고 싶어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은 알바니아 공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지배한 크로아티아를 노렸고 알바니아 공국을 점령할 준비를 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왕국이 먼저 알바니아 공국의 북이피로스 임시정부를 합병했고 이탈리아 왕국은 더 늦기 전에 알바니아 왕국으로 병력을 파병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은 이탈리아 왕국 해군을 파병해 블로러Vlorë, 아브로나Avrona, 발로나Vallona를 점령하고 1914년 10월 31일 사잔 섬을 점령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은 1914년 12월 런던 회의 결과에 따라 알바니아 왕국을 중립국으로 유지하고 점령지에 푸른 자켓단을 파병해 점령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과 그리스 왕국은 중립국 알바니아 공국을 두고 충돌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긴장감을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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