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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구/갈리폴리 전선

[갈리폴리 전선: 다르다넬스 해전] 운명의 관문

by 롱카이. 2022. 3. 24.
  • 잠긴 다르다넬스 해협

오스만 제국 해군 함대
오스만 제국 해군 함대

1914년 9월 오스만 제국은 대영제국으로부터 구매한 전함 2척을 강탈당하고 독일제국의 전함을 수입했습니다. 대영제국은 오스만 제국이 독일제국 해군의 괴벤 순양전함과 브레즐라우 경순양함을 콘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에 정박하자 두 전함을 당장 독일제국에게 반환하라며 압박했고 대영제국 왕립 해군 함대를 파견해 1914년 9월 27일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 근처의 오스만 제국 해군 어뢰정을 나포했습니다. 그럼에도 오스만 제국은 괴벤 순양전함과 브레즐라우 경순양함에 오스만 제국 국기를 게양하고 야부즈 술탄 셀림 순양전함과 미딜리 경순양함으로 이름을 변경해 오스만 제국 해군의 함대로 운용했습니다. 두 척의 전함은 오스만 제국 해군 함대로 편성되었지만 여전히 독일제국 해군 승무원과 제독이 운용했습니다. 독일제국은 동부전선의 러시아 제국을 압박하기위해 흑해 항구를 포격할 것을 명령했고 야부즈 술탄 셀림 순양전함과 미딜리 경순양함은 10월 31일 러시아 제국의 흑해를 포격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흑해 포격으로 흑해 함대의 전력이 약화되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11월 2일 오스만 제국에게 선전포고했고 오스만 제국은 보스포루스البوسفور 해협과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을 봉쇄해 러시아 제국의 해양 수출로를 봉쇄했습니다. 이로서 러시아 제국은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으로부터 병기를 수입하는 길이 막혔습니다.


  • 구원의 길

동부전선 러시아군의 공세
러시아군의 공세

1915년 서부전선은 참호전의 수렁에 빠졌고 영국원정군과 프랑스군은 프랑스 영토와 벨기에 영토에서 독일군은 몰아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군과 영국원정군은 참호전에서 결판을 내지 못하고 병력만 소모하며 전쟁이 점점 길어지자 불안해졌고 프랑스 제3공화국과 대영제국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동부전선에서 러시아군이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공세를 해 돌파하기를 기대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압도적인 인구와 대량의 기병대를 보유했기 때문에 대규모 공세가 가능했고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제국을 스팀롤러Steamroller라 부르며 두려워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 제국은 1914년 개전하자마자 제17계획으로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대규모 공세를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압도적인 병력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사 대부분이 문맹이었고 장교는 전문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병사 수에 비해 무기량이 적었습니다. 러시아군은 1914년 공세로 비축한 포탄 대부분을 소모해버렸고 1915년 연초부터 포탄과 병기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때문에 러시아군은 오히려 독일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압박 공세에 시달렸고 러시아 제국은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에게 구원요청했습니다.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동부전선에서 러시아군이 병력을 보충하고 대규모 공세를 해 베를린Berlin과 빈Wien으로 진격하기를 바라며 러시아 제국에 병기 지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1915년 5월 23일 유럽전구 전선
1915년 5월 23일(1915년 초 영토와 비슷)

하지만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이 러시아 제국으로 병기 지원을 할 마땅한 수송로가 없었습니다. 육상으로 수송하기에는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중립국들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해상으로 수송하는 길로 북극해 항로, 발트해 항로, 지중해-흑해 항로가 있었지만 북극해는 당대 기술로 얼음을 깨고 돌파가 불가능했고 협소한 발트해 입구 해협에는 독일제국 해군 함대가 초계활동으로 해협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남은 해로는 지중해-흑해 해로로 오스만 제국이 지키고 있는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과 보스포루스البوسفور 해협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해협을 돌파해 흑해로 가기 위해서 동맹국인 오스만 제국과 전투를 벌여야 했지만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오스만 제국을 유럽의 병자로 평가절하했고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대영제국 전쟁위원회는 러시아 제국의 요청을 받아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을 공격할 준비를 했고 윈스턴 처칠 해군장관은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 다르다넬스 해전

이스탄불과 다르다넬스 해협
겔리볼루(갈리폴리)와 이스탄불(콘스탄티니예)

윈스턴 처칠 해군장관은 대영제국 왕립 해군 지중해 함대의 사크빌 카튼 제독에게 세부 공격 작전을 구상할 것을 명했습니다. 사크빌 카튼 제독은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 옆에 있는 겔리볼루كليبولي(영어명: 갈리폴리Gallipoli) 반도와 차나칼레جنق قلعة를 포격한 후 상륙부대를 파견해 일대를 점령해 오스만군을 완전히 소탕한 후 해협에 소해정을 파견해 오스만 제국이 해협에 부설한 기뢰를 제거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대영제국 왕립 해군은 프랑스 해군과 함께 함대를 결성해 대함대를 결성하고 침공 준비를 마쳤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다르다넬스 해협 기뢰 부설
오스만 제국의 기뢰 부설

오스만 제국은 오스만 제국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참모장과 독일제국에서 파병한 군사 고문관인 리만 폰 잔데르즈 장군이 오스만군을 지휘하며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를 보호하기 위해 콘스탄티니예قسطنطينيه(보스포루스البوسفور 해협) 입구인 겔리볼루كليبولي와 차나칼레جنق قلعة에 해안포를 배치하고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에 기뢰를 더 부설하고 대영제국 왕립 해군 잠수함이 통과하지 못하게 대잠 어망을 설치해 대영제국 왕립 해군의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 진입을 막았고 지상에 요새를 강화하고 요새포와 해안포를 비롯한 포를 준비해 적의 침공에 대응사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다르다넬스 해협 연합국 해군 함대
다르다넬스 해협의 연합국 함대

1915년 1월 대영제국 왕립 해군 지중해 함대와 프랑스 해군 지중해 함대는 에게 해에서 집결해 오스만 제국의 입구인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으로 향했습니다. 대함대를 결성한 연합국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끝낼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대전쟁을 끝내기 위해 운명의 관문으로 향했습니다.

  • 전쟁의 시작

다르다넬스 해전에서 포격하는 프랑스 해군 지중해 함대 전함
포격하는 프랑스 해군 지중해 함대의 전함

대영제국 왕립 해군의 윈스턴 처칠 해군장성은 전쟁을 준비하기도 전인 1914년 11월 3일 오스만 제국에게 무력시위를 하기 위해 대영제국 왕립 해군 지중해 함대의 인도미터블 순양전함과 인디페티거블 순양전함, 프랑스 해군 지중해 함대의 슈펭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베리테 전 드레드느트급 전함에게 겔리볼루كليبولي 반도 서부를 포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포격으로 겔리볼루كليبولي 반도 서부의 요새가 파괴되었고 오스만군은 서부 요새를 재건했지만 전보다는 약화되었습니다. 또한 잠수함을 파견해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에 배치된 오스만 제국 해군 함선들을 대상으로 어뢰공격해 격침하며 오스만 제국 해군 함대 전력을 약화시켰습니다. 하지만 해당 공격은 무력시위였기 때문에 대영제국은 이 정도에서 끝냈고 1915년 2월 대영제국은 윈스턴 처칠 해군장관의 명령 하에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1915년 2월 19일 연합국 해군 지중해 함대는 차나칼레جنق قلعة 인근의 오스만 제국 요새를 포격했습니다. 오스만군은 요새포로 전함의 접근을 막았지만 연합군 함대는 위험을 감수하고 접근해 요새를 포격했고 강력한 함포 포격에 요새는 파괴되었습니다.

다르다넬스 해전 오스만 제국의 응사
오스만군의 응사

2월 25일 연합국 해군 함대는 2월 19일 포격한 장소로 또 이동해 다시 포격을 했습니다. 이번 포격은 2월 19일 포격보다 더 오랫동안 이루어졌고 연합국 해군 함대는 포격으로 차나칼레جنق قلعة 주변 오스만 제국의 요새와 요새포, 해안포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했습니다. 오스만군의 요새와 포대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칼레قلعة의 오스만군은 후퇴했습니다. 연합국 해군은 두 차례의 포격으로 칼레قلعة의 오스만군을 무력화시켰고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 깊숙이 침투할 수 있었습니다. 연합국 해군은 바로 소해정을 준비했고 소해정은 좁은 해협에 촘촘히 부설된 기뢰를 제거하러 출동했습니다.


  • 기뢰 제거 작전

다르다넬스 해협 소해정으로 징집된 어선
소해정으로 징집된 어선

3월 1일 연합국 해군 함대는 잔존 오스만군에게 함포 사격을 가해 오스만군을 쫒아내고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으로 소해정을 출동시켰습니다. 하지만 소해정들은 비무장 어선들로 자체 방어할 무장을 갖추지 못했고 전장 주변의 민간인 어부들을 징집했기 때문에 전쟁 경험과 훈련을 받지 못한 어부들은 임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부들은 군인으로부터 작전을 설명받고 출동했지만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소해활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후방의 오스만군이 해안가로 출동해 위협 사격을 가하자 두려워하며 도망쳤습니다. 민간 어선들이 소해활동을 충분히 하지 못하자 연합국 해군 지중해 함대는 야간에 소해 활동을 하게 했지만 오스만군이 야간 탐조등으로 해협을 감시하며 해안포 사격을 가하자 어선들은 역시나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소해 활동을 한 어선들도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뢰를 제대로 제거하지 못했고 소해선(기뢰를 낚아채는 줄)을 잘 다루지 못해 끊어버리고 잃어버리며 소해선만 낭비했습니다. 결국 연합국 해군 함대는 어선에 민간인 어부 대신 훈련받은 군인들을 투입했고 연합국 해군 함대의 소해정들은 기뢰를 수월하게 제거해갔습니다.

다르다넬스 해전 연합국 정찰기
정찰활동을 한 대영제국 왕립 항공대 정찰기

그러자 오스만 제국은 기뢰를 더 부설했고 3월 8일 너르스렛 기뢰부설함이 기뢰를 부설하던 중 연합국 해군 지중해 함대가 이미 기뢰를 제거한 곳에 함대를 배치하고 방어태세를 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너르스렛 기뢰부설함은 연합국 해군 함대가 방어태세로 일관하는 동안 재빨리 새로운 곳에 20개의 기뢰를 몰래 부설한 후 철수했습니다. 너르스렛 기뢰부설함이 기뢰를 부설한 곳은 차나칼레جنق قلعة 해안가 지대로 연합국 해군의 소해정들은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 깊숙한 곳의 기뢰를 부설하기 위해 기뢰가 없는 해안가 지대로 이동했고 주로 오스만군이 없는 차나칼레جنق قلعة 해안가로 이동했습니다. 오스만 제국 해군은 정찰로 연합국 해군 소해정의 경로를 파악했고 그곳에 새 기뢰를 부설했습니다. 연합국 해군 항공대는 그날 정찰활동을 하지 않았고 새 기뢰가 부설됨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로서 연합국 해군은 새 기뢰의 존재를 전혀 몰랐고 윈스턴 처칠 해군장관은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 내부로 진격할 작전을 수립했습니다.


  • 덫에 걸린 연합국 해군

다르다넬스 해전 포격하는 연합국 해군 함대
포격하는 함대

윈스턴 처칠 대영제국 왕립 해군 해군장관은 예상보다 늦어지는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 돌파에 작전을 수정했습니다. 수정한 작전에 따르면 연합국 해군 함대가 지상의 오스만군을 공격하며 진격하고 소해정이 함대의 호위를 받으며 해협 중앙으로 진격해 기뢰를 제거하며 대형 함선들이 해협을 통과할 수 있게 하는 양동작전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이 작전으로 기뢰 제거와 적 제거를 동시에 해 한번에 바로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의 중앙으로 한번에 진격하려고 했습니다. 윈스턴 처칠 대영제국 왕립 해군 해군장관은 1915년 3월 18일 작전 개시를 명령했고 연합국 해군 전함과 소해정은 일제히 출동했습니다. 연합국 해군 함대의 전함들은 다르다넬스الدردنيل 해협 입구에서 일렬로 배치한 후 함포 사격을 하며 해협 안으로 진격했습니다.

다르다넬스 해협 안으로 진격하는 연합국 해군 함대
해협 안으로 진격하는 연합국 해군 함대

대영제국 왕립 해군 지중해 함대가 먼저 해협 안으로 진격했습니다. 대영제국 왕립 해군 지중해 함대는 해협 중앙으로 진격하며 오스만군 요새를 포격했습니다. 이어 프랑스 해군 지중해 함대도 진입했고 연합국 해군 함대는 오스만군 요새를 집요하게 집중 포격해 완파했습니다. 저항하던 오스만군은 함포 포격에 피해를 입었고 오스만군의 해안포는 파괴되어 작동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개전 후 몇시간이 지나자 오스만군의 해안포 사격은 멈췄고 소해정들은 해협 중앙의 기뢰들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연합국 해군은 해협 중앙까지 진격에 성공했고 승리를 자축하며 프랑스 해군 지중해 함대 먼저 철수시켰습니다.

기뢰를 맞아 침몰하는 연합국 해군 전함
기뢰를 맞은 연합국 해군 전함

프랑스 해군 지중해 함대는 평소처럼 칼레قلعة 해안가로 향해 해안가를 따라 후퇴하려고 했습니다. 허나 그곳에는 오스만 제국 해군이 몰래 부설한 기뢰들이 있었고 프랑스 해군 지중해 함대의 부베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철수 중 기뢰와 충돌해 침몰했습니다. 갈리아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슈펭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기뢰와 충돌해 대파되었습니다. 오직 샤를마뉴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 만이 피해를 입지 않고 철수에 성공했습니다. 이어 대영제국 왕립 해군 지중해 함대도 철수를 시작했고 프랑스 해군 지중해 함대와 마찬가지로 칼레قلعة 해안가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다르다넬스 해전 기뢰와 충돌한 연합국 해군 함선
기뢰와 충돌한 연합국 해군 함선

대영제국 왕립 해군 지중해 함대는 칼레قلعة 해안가를 따라 철수하던 중 인플렉시블 순양전함이 기뢰와 충돌해 큰 손상을 입었지만 겨우 해협을 빠져나가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레지스터블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기뢰와 충돌해 침몰했고 이레지스터블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인양하러 출동한 오션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도 기뢰를 맞고 침몰했습니다. 연합국 해군 함대는 3월 18일 당일 12척의 전함 중 6척의 전함을 상실하는 큰 피해를 보았고 사크빌 카튼 제독은 윈스턴 처칠에게 겔리볼루كليبولي 반도를 완전히 점령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보고서를 받고 바로 겔리볼루كليبولي 상륙작전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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