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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종료/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지 않은 전쟁: 사우디아라비아 통일전쟁] 최후의 승자

by 롱카이. 2022. 4. 14.
  • 헤자즈 왕국의 탄생

헤자즈 왕국 영토
초록색: 헤자즈 왕국

메카의 샤이크인 후세인 빈 알리는 1916년 6월 10일 메카مكة에서 봉기를 일으킨 후 헤자즈 왕국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아들 파이살 빈 후세인에게 시리아سُورِيَا 지역에 아랍 왕국을 건립하게 했고 본인은 헤자즈ٱلْحِجَاز 지역에 아랍 독립국을 설립했습니다. 후세인 빈 알리는 헤자즈 왕국을 선포하며 스스로를 아랍의 왕으로 선포했습니다. 이에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이맘은 반발했고 스스로를 와하브파의 지도자이자 아랍 무슬림의 국왕으로 선포했습니다. 후세인 빈 알리와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이슬람 지도자의 정통성 자리를 놓고 갈등을 벌였고 오스만 제국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완전히 물러나자 헤자즈 왕국과 네지드-하사 토후국 간의 국경 문제를 두고 갈등이 격화되었습니다.


  • 아라비아의 지도자

https://www.youtube.com/watch?v=aRW621l3k_k

사우디 아라비아 통일전쟁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와하브파 교리 하에 아랍 무슬림들이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네지드-하사 토후국이 헤자즈 왕국의 하심 가문이 차지한 헤자즈ٱلْحِجَاز 지역을 탈환하고 이슬람의 으뜸 국가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따라 헤자즈 왕국 침공작전을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후퇴 이후 황량한 아라비아 반도에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신생 토후국들을 정복하며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겠다는 야망을 품었습니다.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에게 가장 큰 적은 하심 가문의 후세인 빈 알리였고 때문에 그는 후세인 빈 알리를 먼저 제거하기로 했습니다.


  • 쿠르마 전쟁

이쿠완 군기
이쿠완 군기

네지드-하사 토후국의 이맘인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1915년 12월 26일 영국령 인도제국과 맺은 다린 조약으로 헤자즈 왕국을 침공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1917년 오스만 제국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밀려나자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에미르는 오스만 제국이 사라졌으니 다린 조약을 지킬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1918년 헤자즈 왕국의 쿠르마الخرمة를 침공했습니다. 사우디군은 쿠르마الخرمة 지역의 에미르를 체포하고 쿠르마الخرمة를 점령했고 이에 후세인 빈 알리는 헤자즈군을 보내 쿠르마الخرمة를 포위했습니다.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바로 이쿠완을 보내 헤자즈군을 공격하게 했고 헤자즈군은 네지드-하사 토후국의 정예부대인 이쿠완에게 대패해 쿠르마الخرمة에서 후퇴했습니다. 이후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1919년 5월 21일 투라바تربة를 포위 공격했습니다. 후세인 빈 알리는 바로 헤자즈군을 보냈고 헤자즈군은 5월 25일 투라바تربة 근처에서 진을 친 네지드군을 기습 공격해 섬멸했습니다.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겨우 살아남아 도망쳤고 한동안 헤자즈 왕국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 자발 샴마르 토후국 흡수

자발 샴마르 토후국 국기
자발 샴마르 토후국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에게 수많은 적들이 있었지만 사우드 가문과 가장 많이 충돌한 가문은 자발 샴마르 토후국의 하일 가문이었습니다. 자발 샴마르 토후국은 대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퇴하자 지원국을 잃고 외로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승전국들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은 자발 샴마르 토후국을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아라비아 통일을 위해서는 숙적인 자발 샴마르 토후국을 흡수해야 했습니다. 1921년 자발 샴마르 토후국은 오스만 제국 이후 국가를 보전할 수 없을 정도로 쇠퇴했고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의 네지드군은 1921년 11월 2일 자발 샴마르 토후국의 마지막 에미르인 무함마드 빈 탈라 알 라쉬드 에미르를 체포해 자발 샴마르 토후국을 멸망시켰습니다.


  • 이쿠완 기습 공격

프랑스령 위임통치령 시리아와 영국령 위임통치령 메소포타미아와 트란스요르단
프랑스령 위임통치령 시리아(연한 살구색)와 영국령 위임통치령 메소포타미아/트란스요르단(토황색)

자발 샴마르 토후국을 멸망시키고 아라비아 반도 북부를 차지한 압둘아지즈 이븐 알 사우드는 국명을 네지드-하사 토후국에서 네지드 술탄국으로 바꾸고 그의 정예부대인 이쿠완에게 영국령 메소포타미아 위임통치령과 트란스요르단 위임통치령을 공격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쿠완 부대는 1921년 먼저 영국령 메소포타미아 위임통치령의 시아파 마을을 공격해 순니 이슬람에 대척되는 시아파 무슬림들을 학살하고 복귀했습니다. 이후 1922년과 1924년에 영국령 위임통치령 트란스요르단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영국군은 대영제국 왕립 항공대의 폭격기를 파병해 이쿠완을 공격했습니다. 이쿠완은 신무기 공격에 별 소득 없이 후퇴했습니다.


  • 네지드군의 헤자즈 왕국 공격

1920년대 아라비아 반도 지도
1920년대 아라비아 반도 상황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에미르는 하일 가문을 물리친 후 자신감을 드러냈고 아라비아 반도의 마지막 유력 가문인 하심 가문을 다시 공격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내 좋은 명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924년 3월 3일 무스타파 케말의 튀르크 독립군은 술탄이자 칼리파인 메흐메트 6세의 지위를 박탈하고 그를 축출하면서 이슬람 세계에 칼리파가 사라졌습니다. 이슬람 세계는 종교 지도자인 칼리프가 사라지자 혼란에 빠졌고 후세인 빈 알리는 이 틈에 스스로를 칼리파로 선포했습니다. 허나 칼리파의 정통성은 오스만 제국에게 있었고 하심 가문은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으로 인정받았지만 칼리파 직위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하심 가문의 후세인 빈 알리를 칼리파로 인정해야 하는지를 두고 이슬람 세계는 양분되었고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후세인 빈 알리의 칼리프 임명을 격하게 반대했습니다.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하심 가문을 징벌한다면서 1924일 8월 29일에 헤자즈 왕국을 침공했습니다. 네지드군은 이쿠완을 선봉으로 헤자즈 왕국을 침공했고 1924년 10월 13일 메카مكة를 포위하고 1924년 12월 5일 메카مكة를 점령했습니다. 이후 네지드군은 북진하며 헤자즈군을 격퇴했고 1925년에 제다جِدَّة와 메디나المدينة를 점령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 지도
후세인 빈 알리의 아들들은 영국령 위임통치령의 에미르가 되었다

후세인 빈 알리는 메디나المدينة마저 점령당하자 그의 둘째 아들이 에미르로 있는 영국령 위임통치령 트란스요르단으로 이동했습니다. 허나 후세인 빈 알리는 영국령 위임통치령 트란스요르단의 에미르로 즉위하려고 했고 그의 둘째 아들 압둘라 이븐 알 후세인은 그를 트란스요르단에서 축출해 네지드-하사 토후국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헤자즈 왕국 북부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네지드군은 후세인 빈 알리를 잡기 위해 북진했고 후세인 빈 알리는 넷째 아들인 자이드 빈 후세인이 사는 키프로스 섬으로 도망쳤습니다.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가장 강력했던 가문인 하심 가문을 헤자즈ٱلْحِجَا에서 축출했고 승리를 자축하며 스스로를 아라비아 반도와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로 추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네지드 술탄국을 네지드-헤자즈 왕국으로 격상했습니다.


  • 사우디아라비아의 탄생

1930년 사우디아라비아 통일전쟁 지도
1930년 중동(가운데 Saudi Arabia가 통일전쟁을 마친 사우디아라비아)

허나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바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1928년 트란스요르단의 무타이르 부족과 메소포타미아의 오타이바 부족이 네지드-헤자즈 왕국을 침공하자 이쿠완도 이들에 합세해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를 배신했습니다. 이에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네지드군을 이끌고 이쿠완과 부족과 전투를 벌였고 1929년 전쟁에서 승리해 이쿠완을 숙청하며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는 내부의 적을 제거하고 1932년 9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선포했고 아시르 토후국을 정복하고 시아파 분파인 자이드파를 국교로 삼은 예멘을 침공했지만 점령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이슬람 성지와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통일한 것에 만족했고 정복활동을 중단했습니다.


  • 남은 하심 가문

요르단 국기
요르단 국기

한편 사우드 가문에게 성지를 빼앗긴 후세인 빈 알리는 키프로스 섬에서 요양하다 죽기 전 영국령 위임통치령 트란스요르단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후세인 빈 알리는 아랍 독립국 건국이라는 꿈을 이루었지만 그의 첫째 아들 파이살 빈 후세인의 수리아 아랍 왕국이 프랑스 제3공화국에게 멸망당하는 것을 바라보았고 자신의 국가인 헤자즈 왕국이 사우드 가문에게 멸망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는 편히 눈을 감지 못했지만 다행히 하심 가문은 중동 여러 곳에 남았습니다. 그의 셋째 아들은 수리아 아랍 왕국에서 축출당하자 영국령 위임통치령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해 에미르 자리를 얻었고 둘째 아들은 영국령 위임통치령 트란스요르단의 에미르로 남았으며 첫째 아들은 마지막까지 헤자즈 왕국을 위해 싸우다 패배하고 영국령 위임통치령 메소포타미아로 후퇴해 목숨을 보전했습니다. 넷째 아들은 영국령 키프로스 섬에서 자손을 이었습니다. 이후 50년이 흘러 중동의 국가들이 독립했고 다른 하심 가문은 공화주의 운동으로 퇴출당했지만 요르단의 하심 가문은 지금도 남아 요르단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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