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항의 시작
https://www.youtube.com/watch?v=2W9JSm0dbcY
1918년 10월 30일 무드로스 평화 협정 이후 오스만 제국은 연합국에게 항복했고 연합국 군대는 아나톨리아 반도로 진입했습니다. 아나톨리아 반도의 도시와 거리들은 연합군이 점령했고 튀르크 민족들은 적에게 영토가 짓밟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1919년 5월 15일 하산 타흐신이 그리스군 기수에게 총을 쏘면서 저항을 시작했고 그의 총알은 튀르크인들을 고무시켰습니다. 튀르크인들은 총을 들거나 시위를 하는 방식으로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침공하는 연합군에 대항해 저항했고 아나톨리아 전역은 튀르크 민족독립의 열기로 뜨거웠습니다. 이내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튀르크 독립단체들이 등장했고 술탄 메흐메트 6세는 그들을 지원하면서도 술탄에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감시했습니다. 하지만 앙카라 튀르크 장교단이 술탄에게 반기를 들었고 술탄은 청년 튀르크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게 그들을 진압할 것을 명했습니다.
하지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앙카라 튀르크 장교단의 수장이 되었고 술탄은 그에게 현상금을 걸며 사살할 것을 명했습니다. 그래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1919년 9월 4일 시바스로 거처를 옮기고 1920년 4월 23일 앙카라에 복귀해 튀르크 대국민의회를 열고 튀르크 공화국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튀르크 독립군을 결성했고 병력 열세인 상황에서 그리스군과 아르메니아군을 상대하기 위해 그리스군을 공격하고 튀르크 민병대가 아르메니아군의 침공을 막는 방식으로 독립전쟁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 그리스-튀르크 전쟁
https://www.youtube.com/watch?v=JKce4PNvg64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그리스 왕국은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자 메갈리 이데아Μεγάλη Ιδέα 이룩을 위해 아나톨리아 반도로 진군했습니다. 그리스군은 제1차 세계대전 초반 적은 병력을 가진 약소국이었으나 1918년 연합국에 가담한 이후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으로부터 풍부한 물자 지원을 받아 지역 군사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스군은 강력해진 군사력으로 오스만 제국으로 진격했고 스미르니Σμύρνη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튀르크 독립군은 그리스에게 빼앗긴 이즈미르İzmir(스미르니Σμύρνη)를 탈환하기 위해 그리스 왕국에 선전포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군은 1920년 8월 맺어진 세브르 조약 전에 이미 여름 공세로 아나톨리아 반도 동부 대부분을 장악했고 튀르크 독립군은 강력한 그리스군에 맞써 싸우며 이즈미르İzmir로 그리스군을 몰아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거의 불가능해보였습니다.
- 외톨이가 된 그리스 왕국
1920년 그리스 왕국의 알렉산도로스 왕이 원숭이에게 물려 폐혈증으로 사망하자 그리스 왕국의 후계자는 끊겼고 그리스 왕국은 1920년 11월 1일 총선에서 왕당파가 패배하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그 사이 독일제국을 비호하다 추방당한 콘스탄티노스 1세가 1920년 12월 19일 그리스 왕국의 국왕으로 다시 옹립했습니다. 그리스 왕국은 잠깐의 혼란이 발생했지만 국왕이 혼란을 정리한 후 튀르크를 향한 대대적인 공세를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 이탈리아 왕국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제국에 우호적인 콘스탄티노스 1세가 그리스의 국왕이 되자 그를 불신했고 그리스 왕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자세에서 중립을 지키는 자세로 바꿨습니다. 그리스 왕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리스군을 보내 1921년 1월 6일부터 11일까지 제1차 이뇌뉘 전투로 오스만 제국 내부로 침투했고 승전국은 그리스 왕국의 깊숙한 침투에 놀라 런던 조약을 열어 오스만 제국과 세브르 조약을 다시 재고했습니다. 대영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오스만 제국은 그리스 왕국에게 그리스군을 세브르 조약으로 체결한 영토로 복귀하라고 했습니다. 연합국은 이제 더이상 그리스 왕국을 두둔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 왕국은 런던 조약을 무시하고 3월 23일 제2차 이뇌뉘 전투를 벌여 영토를 더 확장했습니다.
- 튀르크 동부전선
튀르크 서부전선에서 튀르크 독립군이 그리스군에게 밀리는 동안 튀르크 동부전선에서는 아르메니아군이 튀르크 민병대에게 밀리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1920년 9월 3일 아르메니아군은 올투Ողթիկ를 침공했지만 튀르크 민병대에게 격퇴당했고 오히려 밀리면서 사리카미시Եղէգնիկ와 카르스Կարս를 상실했습니다. 아르메니아군은 1920년 11월 7일 알렉산드로폴Գյումրի에서 튀르크 민병대에게 격퇴당하고 이에 러시아 적군이 1920년 12월 2일 하야스탄 공화국을 공산화시키면서 아르메니아-튀르크 전쟁은 종료되었습니다. 이어 알렉산드르 카치산 하야스탄 공화국 외무장관이 1920년 12월 3일 알렉산드로폴 조약을 체결해 오스만 제국과 아르메니아의 국경을 확정하며 전쟁에서 빠졌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은 오스만 제국을 제국주의 국가와 싸운다고 보고 1921년 3월 16일 모스크바 조약을 체결해 오스만 제국에게 군사지원을 하며 그리스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덕분에 튀르크 독립군은 병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고 그리스군에 대항해 싸울 준비가 되었습니다.
- 사카리아의 기적
그리스군은 1921년 7월 퀴타햐-에스키셰헤르 전투로 튀르크 독립군을 공격한 후 1921년 공세를 펼치며 앙카라Ankara로 진격했습니다. 튀르크 대국민의회는 절체절명 위기 속에 놓였고 아나톨리아 반도의 모든 병력을 사카리아Sakarya로 집결시켜 그리스군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사카리아 전투는 그리스군에게는 메갈리 이데아Μεγάλη Ιδέα의 실현과 오랜 시간 튀르크인들에게 학살당한 헬라인들의 복수를 하는 절호의 기회였고 튀르크 대국민의회에게는 튀르크 민족의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1921년 8월 21일 시작된 사카리아 전투는 좀처럼 끝을 내지 못했습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직접 전쟁터에 방문해 병사들을 독려했고 전국에서 튀르크 독립군과 민병대들이 사카리아Sakarya로 집결했습니다. 그리스군은 우수한 화력으로 튀르크 독립군들을 소탕해갔지만 튀르크 독립군은 후방에서 끊임없이 전장으로 투입되었고 그리스군은 너무 멀리 이동해 보급 위기를 겪었습니다. 튀르크 독립군은 1921년 9월 2일 사카리아Sakarya 주변인 둠루프나르Dumlupınar를 공격했고 그리스군의 측면을 돌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스군은 순식간에 붕괴되었고 그리스군은 사카리아Sakarya에서 후퇴하면서 사카리아 전투는 튀르크 독립군의 기적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 튀르크에게 기운 전세
사카리아 전투 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은 튀르크의 승리를 축하하며 1921년 10월 13일 카르스 조약으로 오스만 제국과 남캅카스의 국경선을 확정했습니다. 이어 1919년 아르메니아 민족 보호를 명분으로 흑해에 상륙한 프랑스 제3공화국도 1921년 10월 20일 앙카라 조약을 체결해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군도 아나톨리아 반도 남부에서 철수하며 아나톨리아 반도에는 그리스군만 남게 되었습니다.
튀르크 독립군은 1922년 8월 26일 대공세를 펼치며 그리스군을 압박했습니다. 그리스군은 속전속결로 무너지며 후방으로 후퇴했고 9월 9일 튀르크 독립군에게 스미르니Σμύρνη 지역을 내주고 후퇴했습니다. 튀르크 독립군은 9월 9일 이즈미르에 도착한 후 9월 13일 이즈미르İzmir의 아르메니아인들과 그리스인들이 사는 마을을 불질러 수많은 아르메니아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죽게 했습니다. 그리스군이 튀르크와의 전쟁에서 대패하고 그리스인 대학살을 막지 못하자 그리스 왕국의 민중은 콘스탄티노스 1세를 비난했고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콘스탄티노스 1세가 폐위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스 1세의 뒤를 이어 요르요스 2세가 즉위했고 요르요스 2세는 재공격을 준비했습니다.
- 부활한 튀르크 제국
튀르크 독립군은 그리스군의 재차 침공에 대비하면서 이스탄불İstanbul로 진격했습니다.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을 지키며 모든 국가들이 해협을 통과할 수 있게 중재한 대영제국은 튀르크 독립군에게 진격을 멈추라고 명령했고 명령을 어길 시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튀르크 독립군은 최후통첩을 무시했고 튀르크 민족주의자들은 이스탄불İstanbul에서 봉기를 일으키고 소요사태를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대영제국 전쟁 내각은 해협에 대영제국 왕립 해군 전함들을 더 배치하고 튀르크 독립군의 진격에 대비했습니다. 하지만 미합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대영제국과 튀르크 독립군의 전쟁을 말렸고 대영제국 내부에서도 제발 전쟁을 그만하자는 여론이 주류를 이루었기에 대영제국 정부는 하는 수 없이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철수했습니다. 튀르크 독립군은 1922년 10월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İstanbul 탈환에 성공했고 튀르크 부활을 자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 왕국 역시 별다른 소득을 보지 못하고 전쟁 준비를 중단하면서 튀르크 독립군은 튀르크 독립을 이룩했습니다. 이로서 튀르키예 공화국이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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