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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종료/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지 않은 전쟁: 그루지아-아르메니아 전쟁] 신생국의 영토분쟁

by 롱카이. 2022. 4. 12.
  • 그루지아-아르메니아 전쟁

https://www.youtube.com/watch?v=4wPtZorO27o

그루지아-아르메니아 전쟁 변화



  • 해체된 자캅카스 민주연방공화국과 오스만이 야기한 혼란

분열된 자캅카스 민주공화국
분열된 자캅카스 민주공화국

그루지아 민족 의회는 1918년 5월 26일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을 선포해 자캅카스 민주연방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독일군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아르메니아 민족 의회는 5월 28일 하야스탄 공화국을 선포하고 아제르바이잔 의회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을 선포하며 자캅카스 민주연방공화국은 해체되었습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1918년 6월 4일 새로 독립한 바툼 조약으로 남캅카스 국가들과 영토협상을 맺으며 남캅카스 국가들은 외부 영토를 확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세 남캅카스 국가들은 그들끼리의 국경을 확정하지 못했고 세 민족은 구 자캅카스 민주연방공화국의 영토에서 섞여 살았습니다. 그래도 독일제국의 중재 하에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과 하야스탄 공화국은 조라게트Ձորագետ 강을 경계선으로 암묵적인 경계를 그었습니다.

오스만군의 캅카스 침공
오스만군의 침공

하지만 1918년 10월 오스만 제국은 남캅카스 정벌을 위해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과 하야스탄 공화국을 침공했습니다.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은 독일제국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독일제국은 오스만 제국을 압박해 오스만군이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에서 철수하게 했지만 하야스탄 공화국을 지키는 나라는 전무했고 오스만 제국은 하야스탄 공화국을 침공하며 영토를 점령해갔습니다. 하지만 1918년 10월 30일 오스만 제국이 무드로스 휴전 협정으로 항복하자 하야스탄 공화국을 침공한 오스만군은 하야스탄에서 철수했고 아르메니아인들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외부의 큰 적이 사라지자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과 하야스탄 공화국은 본격적으로 영토 분쟁에 들어갔습니다.


  • 분쟁의 시작

1918년 10월 30일 오스만군이 물러가고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의 그루지아군은 로리ლორე, 아칼칼라키ახალქალაქი를 점령했습니다. 해당 지역에는 아르메니아 민족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지역이었지만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은 해당 지역들이 그루지아 민족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무단으로 점령했고 하야스탄 공화국은 이에 반발했습니다. 그러자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은 외국에서 하야스탄 공화국으로 가는 철도선을 봉쇄해 하야스탄 공화국의 무역로를 봉쇄했고 하야스탄 공화국은 식량 수입을 받지 못해 기아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과 하야스탄 공화국 간의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고 둘은 마침내 전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 그루지아-아르메니아 전쟁

러시아군 장갑열차
러시아군 장갑열차

오스만 제국이 항복하자 아르메니아군은 오스만 제국과의 국경에서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 국경으로 이동했고 1918년 12월 7일 로리ლორე 북부에서 아르메니아 민족 봉기가 일어날 조짐을 보이자 아르메니아군은 로리ლორე의 아르메니아 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로리ლორე의 그루지아군을 공격했습니다. 아르메니아군은 탄약 이동전술로 그루지아군 방어선을 공격한 후 돌파했습니다. 이후 하야스탄 공화국은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에게 하야스탄 공화국에게 로리ლორე를 준다는 내용의 평화협상을 제안했지만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은 이를 거절했고 아르메니아군은 1918년 12월 13일 로리ლორე 내부로 공세를 펼쳤습니다. 아르메니아군은 장갑열차를 동원해 파죽지세로 돌격하며 로리ლორე를 모두 점령하고 북진해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의 남부를 점령했습니다. 허나 아르메니아군은 12월 21일 크라미ხრამი 강에서 진격이 멈췄고 그루지아군이 열차선을 파괴해 장갑열차는 진격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루지아군은 아르메니아군을 포위했고 12월 22일 그루지아군이 역공을 시작했습니다.

그루지아군 장갑열차
그루지아군 장갑열차

아르메니아군은 그루지아군의 역공이 시작되기 전 선공을 해 철도역을 점령했지만 그루지아군이 바로 대대적인 역공세를 실시해 아르메니아군 장갑열차를 집중 공격했고 아르메니아군은 그루지아군의 공격에 후퇴했습니다. 그루지아군은 12월 24일 공세를 펼쳤고 아르메니아군은 국경지대로 후퇴했습니다. 1918년 12월 25일부터 아르메니아군과 그루지아군은 전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하야스탄 공화국 국경지대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였고 12월 31일 아르메니아군은 마지막 공세를 펼쳤지만 아르메니아군 사이에 장티푸스 감염병이 유행했고 아르메니아군은 공세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 후 전쟁은 소강상태에 이르렀고 연합국은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과 하야스탄 공화국의 전쟁을 중재하려고 했습니다.


  • 평화 협상과 전쟁의 종료

그루지아-아르메니아 전쟁 이후 남캅카스 영토
전쟁 이후 남캅카스 영토

연합국은 1919년 1월 7일 사카르트벨로 민주공화국의 대표와 하야스탄 공화국의 대표가 만나 평화 협상을 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대영제국은 사카트르벨로 민주공화국과 하야스탄 공화국의 국경지대인 로리ლორე를 중립지역으로 지정했고 두 국가는 이에 항의했지만 대영제국은 이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중립지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연합국은 파리 평화 회의로 로리Lori 지역을 두 국가 간의 중립지로 정한다고 확정했습니다. 이렇게 그루지아-아르메니아 전쟁은 끝이 났지만 양측은 불만을 품은 체 찜찜하게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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