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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바꾼 것들/인민전쟁

[인민전쟁: 총동원] 전시경제

by 롱카이. 2022. 5. 17.
  • 최초의 총력전

제1차 세계대전은 참전국이 국가의 모든 역량을 전쟁 오직 하나만을 위해 투입한 전쟁이었습니다. 국가의 모든 산업은 전쟁물자를 생산했고 농업은 군인들을 먹이기 위한 것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대영제국 왕립 해군의 해상봉쇄를 당한 독일제국은 국가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에리히 루덴도르프 군수총감은 독일제국의 병기 생산력 증대를 위해 경제계획을 세웠고 무자비한 국가 자원 총동원을 강요했습니다. 외부 자원을 받지 못한 독일제국 뿐만 아니라 대서양에서 자원을 받던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도 독일제국 해군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군수물자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고 당장 전쟁에서 이겨야 해 국가의 모든 자원을 전쟁에 퍼부었습니다. 국가끼리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는 총력전을 벌이는 동안 개인은 그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전쟁을 선포하는 카이저 빌헬름 2세
제1차 세계대전 전쟁을 선포하는 카이저 빌헬름 2세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조짐이 보이자 국가들은 총동원령을 선포했습니다. 총동원령에 따라 젊은 성인 남성들은 군대에 자원입대했고 사회에는 전쟁 참전을 독려하는 여론이 지배했습니다. 나이 든 남성들은 공장에서 전쟁물자를 생산하고 여성들은 전쟁터로 가는 젊은 남성들을 배웅했습니다. 모두들 전쟁이 1-2년 안에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고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1914년 벌어진 전쟁은 결코 작은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을 점령하지 못하는 사이 러시아 제국과 동맹국간의 대전쟁이 벌어졌고 독일제국이 프랑스 제3공화국을 침공하면서 전쟁은 세계전쟁으로 비화되었습니다. 또 발달한 방어무기는 공격하는 측이 공격 한번에 막대한 피해를 보게 만들었습니다. 전쟁에 참전한 젊은 병사들은 1915년 거의 전멸했고 국가는 더 많은 병력을 충당했습니다. 그래서 나이든 성인 남성들도 전쟁터로 징집되었고 성인 남성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여성들이 동원되었습니다.

 

 

 

  • 여성들의 참전

제1차 세계대전 여성노동자
제1차 세계대전 여성노동자

산업혁명 이후 발전한 근대 유럽은 기술적, 문화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지만 남성이 중심이 되는 가부장제가 더 심화되었습니다. 근대 유럽의 과학기술은 인간 사이의 우열을 구분했고 유럽 백인은 다른 인종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거기에 더불어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하므로 여성은 우월한 남성에게 순종하는 것을 사회 미덕으로 정의했습니다. 때문에 당대 유럽은 열등한 여성이 우월한 남성에게 감히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부도덕한 것으로 바라보았고 여성들은 사회활동을 하지 못한 체 남성의 울타리 안에서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중 남성들이 전쟁터로 징발되자 농촌과 공장은 인력 부족 사태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려고 여성들을 동원했습니다. 여성들은 농장에서 식량을 생산하고 공장에서 전쟁물자를 생산하며 전쟁의 승리를 위한 물량을 책임졌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미국원정군 여군부대 포스터
제1차 세계대전 미국원정군 여군 포스터

더불어 여성은 전쟁터 후방 뿐만 아니라 전쟁터 최전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젊은 여성들은 간호사로 자원해 전쟁터의 부상자들을 치료했고 일부는 직접 군인이 되었습니다. 대영제국의 경우 1917년부터 여성들이 대영제국 왕립 항공대와 대영제국 왕립 해군에 자원했고 러시아 제국은 전쟁 초반 여군 부대를 운용했고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수많은 여성들이 러시아 적군에 자원해 남성들과 동등한 지위에서 백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핀란드 내전 당시 사회주의를 신봉한 많은 여성들도 적군으로 가담했습니다. 세르비아 왕국은 국운을 걸고 전투에 임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도 여군 부대에 소속되어 동맹군의 침입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미국 역시 미국원정군을 유럽전선에 파병하면서 여군 부대를 전선으로 보냈고 미국원정군 여군은 전쟁에서 활약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여성 교사
제1차 세계대전 여성 교사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여성은 후방과 전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가정과 사회를 책임졌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성인의 보호가 필요했고 남성이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아이들을 양육하고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1916년 제1차 세계대전이 길어지자 학교의 교사, 의사 등 지역의 발전을 위해 힘쓴 남성 지식인들도 전쟁터에 동원되었고 그 자리를 여성이 대신 채워 지역사회를 유지했습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모든 자원이 전쟁터에서 소모되는 참혹한 전쟁 동안 지역 사회는 붕괴되지 않고 버틸 수 있었고 참전국들은 후방의 걱정 없이 전방 상황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 자급자족의 시대

제1차 세계대전 탱크 공장
제1차 세계대전 탱크 공장

제1차 세계대전은 전쟁터에 수많은 물자들이 소모되는 역사상 유래없는 소모전이었습니다. 기술은 발전하되 완전하지 않아 수많은 전쟁 병기들이 잦은 고장을 일으켜 동원가능한 병기는 부족했고 병기의 성능 역시 부족했기 때문에 적을 효율적으로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적보다 더 많은 물량을 동원해 적을 밀어내야 했습니다. 그마저 기관총 등 방어무기의 위력이 너무 강해 공격측은 적을 압도하는 물량을 보유해야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이 동맹국을 수시로 공격하는 양상으로 흘러갔고 연합국은 적을 압도할 물량을 생산해야 했습니다. 허나 동맹국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았고 양측은 적보다 더 더 많은 물량을 생산하고 투입해야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미국 자급자족 포스터
제1차 세계대전 미국 자급자족 포스터

국가는 생산에 필요한 모든 자원들을 쓸어갔습니다. 개인은 국가에게 자원을 빼앗겼고 국가는 개인에게 승전 시 모든 것을 배상하겠다며 개인들의 불만을 잠재웠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이 물자를 직접 생산하는 자급자족 가내수공업을 장려했습니다. 개인은 옷을 입기 위해 실을 짜 옷을 만들었고 집 앞에 여유 공간이 있으면 텃밭을 가꿔 채소와 식량을 재배했습니다. 넓은 농장은 모두 국가의 소유가 되었고 개인은 작은 텃밭에서 생산한 식량으로 기나긴 전쟁을 버텼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계가 명확했고 몇년이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자급자족의 불가능성을 깨닫고 국가에 반감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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