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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전쟁으로

[더 큰 전쟁으로: 민족주의 확산] 민족독립의 열망

by 롱카이. 2022. 11. 29.
  • 유럽 밖으로 확산된 민족주의
남아메리카 독립전쟁
남아메리카 독립전쟁

19세기 초 발발한 나폴레옹 전쟁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등장한 민족주의를 유럽 전역에 알렸습니다. 그 결과 유럽에서 단일민족 국가 건립 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 독일제국과 이탈리아 왕국이 탄생했으며 오스만 제국이 후퇴하고 발칸반도에 새 민족주의 신생국이 탄생했습니다. 허나 유럽 국가들은 서로 민족주의를 외쳤지만 그 민족주의 대상을 문명인 유럽인으로 한정했습니다.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국가 경제를 해외 식민지에 의존했는데 해외 식민지에 민족주의 바람이 불어 독립하면 유럽 제국주의 경제가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에서 온 민족주의가 확산된 결과 프랑스의 민족주의에 고무된 프랑스 식민지 아이티가 아이티 혁명을 일으켜 독립했고 19세기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줄지어 독립했습니다. 그 결과 스페인 제국이 몰락했습니다.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스페인 제국의 몰락에서 교훈을 얻었고 식민지에 민족주의가 확산되지 못하게 철저히 막았습니다. 그래서 18세기 이후 식민지 독립운동은 억압되었습니다.


  • 약해진 제국주의 국가와 되살아난 독립의 열망
케이프타운 식민지 농장
케이프타운 식민지 농장

19세기 대영제국과 프랑스 식민제국 등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인들이 민족주의 교육을 받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리고 제국주의 억압에 반발해 일어난 봉기는 잔인하게 제압하고 식민지인들에게 회유책도 제시하며 식민지 상태를 유지하는데 많은 자본을 투입했습니다. 덕분에 19세기에 식민지 민족주의 운동은 크게 확산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민족 독립을 꿈꾼 식민지인들은 강력한 제국주의 정부에 대항하지 못하고 지원해주는 자도 없는 상태에서 눈물을 삼키며 암울한 자국의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강력할 것 같았던 유럽 제국주의 국가도 결국 기울어졌습니다.

14개조 평화 원칙 선언문
14개조 평화 원칙 선언문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서로를 공격하느라 막대한 국력을 소모했습니다. 때문에 유럽 식민지에는 잠깐의 공백기가 생겼고 이는 민족주의자들에게 기회였습니다. 더불어 유럽 본토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물결이 일어나 식민지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제국주의 군대는 상당히 약화되었습니다. 거기에 우드로 윌슨 미합중국 대통령은 14개조 평화 원칙을 발표해 민족주의를 적극 지지했습니다. 때문에 식민지인들은 독립의 열망을 품고 독립운동을 재개했습니다. 먼저 독립운동을 재개한 국가는 유럽 내의 식민지였습니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핀란드와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핀란드는 혼란스러운 러시아 내전 상황 속에서 독립에 성공했고 아일랜드는 독립까지는 아니었지만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에 가까운 자치권을 획득했습니다. 또한 몰타는 이탈리아 왕국이 미수복지로 생각한 만큼 이탈리아 민병대의 지원으로 몰타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허나 대영제국은 지중해의 중요한 해군기지인 몰타를 포기하지 않았고 몰타 독립운동은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1919년 아집트 혁명
1919년 이집트 혁명

허나 아일랜드, 몰타에 이어 유럽 밖 식민지에서도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대영제국의 보호국이었던 이집트 술탄국은 1919년 이집트 혁명을 일으켰고 이어 1920년 이라크 봉기가 일어나 대영제국의 지배에 반발했습니다. 결국 대영제국은 이집트 술탄국과 이라크 왕국의 독립을 허용했습니다. 전세계의 가장 강한 제국주의 국가인 대영제국이 흔들리자 수많은 식민지 민족주의자들이 더 활발히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북아프리카 프랑스 식민지에는 알제리 공산당 등 민족독립운동 정당들이 건립되어 독립운동을 준비했고 영국령 인도제국에서는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일본제국 치하의 조선 역시 1919년 3.1 운동을 시작으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주도했습니다.


  • 완전한 민족 주권국가를 위하여
제3차 앵글로-아프간 전쟁
제3차 앵글로-아프간 전쟁

민족주의 운동은 비단 식민지인들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권을 위협받던 국가들도 외세의 위협에서 벗어나 완전한 주권을 되찾으려고 하는 시도들도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1910년 시작된 멕시코 혁명은 여러 세력들이 참전한 혼란스러운 내전이었습니다. 이 때 미합중국도 멕시코 합중국을 지배하려는 목적으로 멕시코 합중국에 미군을 보내며 멕시코 혁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습니다. 이에 판초 비야는 미군과 직접 전투를 벌이며 미합중국에 대항했고 미합중국은 멕시코 혁명에서 소모되는 병력의 피해에 멕시코 혁명에서 발을 뺐습니다. 덕분에 멕시코 합중국은 미국의 직접 개입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튀르크 민족 역시 전후 열강에게 민족 영토가 분할되고 매우 작은 영토만 보전하는 위기에 빠졌지만 튀르크 독립전쟁을 일으켜 연합군을 몰아내고 완전한 튀르키예 공화국을 건립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토후국 역시 영국령 인도제국의 간접지배를 받았지만 민족주의 열풍이 불어 제3차 앵글로-아프간 전쟁을 일으켜 완전한 독립을 이루어냈습니다. 독립국이었지만 주권이 흔들리던 중화민국은 5.4 운동으로 완전한 주권국임을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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