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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전쟁으로

[더 큰 전쟁으로: 새로운 세상] 유럽의 시대가 막을 내리다

by 롱카이. 2022. 11. 28.
  • 유럽의 시대
아시아 아프리카를 지배한 오스만 제국
아시아 아프리카를 지배한 오스만 제국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의 메메드 2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를 함락했습니다. 이는 1000년 제국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 뿐만 아니라 베네치아 공화국 주도의 향신료 무역이 막을 내렸음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비잔티움 제국의 비호 아래 분열되어 있는 서아시아에서 향신료를 낮은 가격에 사 유럽에 비싼 가격에 판매하며 폭리를 취했지만 오스만 제국이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키고 서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지배하자 향신료 무역의 주도권은 오스만 제국으로 넘어갔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향신료 가격을 비상식적으로 높게 책정해 폭리를 취했고 베네치아 공화국과 유럽 국가들은 높은 가격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았습니다.

대항해 시대
대항해 시대

이 때 이탈리아 제노바Genova의 크리스토포로 콜롬보(영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유럽에서 직접 인도로 간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스페인 왕국의 지원 하에 대항해 시대를 열었습니다. 유럽은 대항해 시대로 신대륙을 발견했고 이윽고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해 신대륙과 인도 두 곳에 식민지 확장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네덜란드 공화국, 프랑스 왕국, 잉글랜드 왕국이 식민지 사업에 뛰어들었고 해당 국가들은 식민지의 플랜테이션 농업과 금광 및 자원 채굴로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더불어 식민지 유지를 위해 해군력과 기술을 발전시켰고 식민지 사업에 뛰어든 인도회사들은 자본주의를 태동시켰습니다.

유럽 최대 동인도회사였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유럽 최대 동인도회사였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더불어 18세기 말 산업혁명으로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한 유럽 국가들은 산업혁명으로 경제와 기술을 급격히 발전시켰고 팽창하는 경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식민지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를 완성시켰고 끊임없는 생산과 발전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 유럽 국가들은 빠르게 성장하며 다른 국가들과 격차를 벌렸습니다. 결국 유럽 국가들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고 더 큰 시장 확장을 위해 식민지를 확장했습니다. 단순히 항구에 식민지를 건설한 것에서 벗어나 내륙을 침공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비 유럽 국가들은 유럽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유럽 국가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세계를 분할했습니다.


  • 백인의 짐 The White Man's Burden
백인의 짐 일러스트
백인의 짐 일러스트

유럽인들은 식민지경제로 호황을 맞이했습니다. 유럽의 산업은 날이 갈수록 찬란해졌고 유럽국가들은 감히 유럽 국가에 대항할 국가는 없다는 사실에 흡족해했습니다. 더불어 과학의 발전은 계몽주의와 생물학을 태동시켰고 유럽인들은 계몽주의와 생물학을 접하면서 세계를 지배하는 유럽의 백인White Man은 생물학적으로 우월한 존재라고 판단했습니다. 유럽인들은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을 사회에 적용시켜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지배하는 것이 순리라고 자명했습니다. 여기에 계몽주의를 더해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교육시키는 것이 우수한 인종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1899년 필리핀에서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하자 대영제국의 시인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이 <<백인의 짐 // White Man's Burden>>이라는 시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당시 유럽인들의 이념으로 자리잡은 인종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유럽인은 스스로를 우월한 인종으로 자평했고 그들 스스로를 문명인으로 부르고 식민지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며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을 여실없이 드러냈습니다.


  • 문명인의 신화가 깨지다
러일전쟁 만평
러일전쟁 만평

19세기 절정을 찍은 유럽 우월주의 사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대전쟁으로 처참하게 깨졌습니다. 유럽인들은 스스로를 문명인으로 자부하며 전쟁을 해도 문명인으로서 명예로운 전쟁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18세기 중반 유럽의 아프리카 분할 당시 아프리카 현지인들은 극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유럽인에게 처참하게 패배했고 유럽군은 실전 경험을 통해 유럽군의 강대함을 재확인했습니다. 허나 아편전쟁과 보어전쟁은 명예로운 전쟁을 한다는 유럽인의 확신을 흔들었습니다. 아편전쟁은 오직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건을 조작해 벌인 추악한 전쟁이라는 오명을 썼고 보어전쟁은 같은 문명인인 유럽인끼리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 전쟁이었습니다. 더불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제국이 러시아 제국을 꺾는 대이변이 발생하면서 유색인종이 백인을 이긴 최초의 사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때부터 문명인의 신화는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유색인종 중 유럽인과 대적할만한 국가는 일본제국 밖에 없었고 일본제국 역시 유럽 강대국들과 비교하면 아직 약소국이었습니다. 더불어 미합중국은 유럽을 빠르게 따라잡았지만 먼로 독트린으로 고립주의를 고수했습니다. 덕분에 유럽은 아직 세계의 질서를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유럽은 유래없는 평화인 벨 에포크 Belle Époque를 맞이했습니다. 허나 벨 에포크 Belle Époque 동안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새로운 바람은 머지않아 유럽 전체를 휩쓰는 강풍이 되었습니다.

지옥인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지옥인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왕국 간의 전쟁으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그전과는 다른 총력전의 양상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남아메리카를 제외한 세계 전체에서 발발했고 유럽전선과 중동전선은 그 어떤 전쟁보다 더 참혹했습니다. 명예롭게 싸운다는 문명인들은 서로를 죽이려고 하는 흉폭한 괴물이 되었습니다. 기관총과 야포는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너무도 쉽게 앗아갔고 지휘관들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더 잔인해졌습니다. 특히 전세계를 주도하며 스스로를 최고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던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 독일제국이 싸웠던 서부전선은 한뻠이라도 더 가기 위해 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너무도 쉽게 죽였고 참호를 하나라도 점령하기 위해 독가스와 화염방사기 등등 야만적이고 잔인한 무기들을 거리낌없이 사용하며 수많은 병사들을 무식하게 소모했습니다. 때문에 서부전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장이 되었고 서부전선에 참전한 사람들은 문명인의 실체를 확인했습니다. 지옥이었던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병사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모르는 후방 민간인에게 전쟁의 야만성을 폭로하며 문명인의 긍지를 부정하고 뒤흔들었습니다.


  • 유럽의 등불이 꺼지다
독일군 체펠린 비행선 폭격에 대비한 등화관제로 어두워진 런던
독일군 체펠린 비행선 폭격에 대비한 등화관제로 어두워진 런던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과 지식인들은 대전쟁의 잔인함에 놀라 몸서리쳤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직접 목격한 지식인들은 찬란했던 유럽의 시대가 끝났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총동원한 유럽 국가들은 국력을 전쟁 하나에 무자비하게 소모했습니다. 유럽 국가들이 국력을 모두 소진하고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유럽 국가들은 중립국에게 전쟁자금을 빌리며 전쟁을 지속했습니다. 대영제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미합중국의 JP 모건은행에게 돈을 빌렸고 동맹국은 스웨덴 왕국 등의 중립국에게서 돈을 빌렸습니다. 승전 하나만 바라보는 정치인들이 광기에 빠진 사이 국가 채무는 눈덩이가 되었고 국력은 바닦을 드러냈습니다.

폐허가 된 프랑스 아라스Arras
폐허가 된 프랑스 아라스Arras

1918년 러시아 공화국이 러시아 내전으로 혼란에 빠져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해 이탈한 후 JP 모건 은행은 연합국이 패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원정군을 유럽전선에 보내 오랜 전쟁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JP 모건 은행은 연합국에게 국채 상환을 요구했습니다. 허나 승전국들은 국세를 모두 전쟁에 투입했고 당장 먹을 것을 사고 전쟁으로 파괴된 국토를 재건해야 하는데 돈을 사용해야 하는 와중에 빚도 갚아야 하는 삼중고를 겪었습니다. 패전국은 국가 자금이 없는 상황에서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납부하고 영토를 상실해야 하는 더 가혹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승전국 패전국 모두 전후 빚의 수렁에서 허덕이는 상황이 되었고 유럽의 국력은 영영 유럽 제국주의 시절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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