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암 근대화
라마 6세는 병탄 위기에 빠진 시암을 구하기 위해 빠르게 근대화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타이 지식인들을 서유럽으로 유학보내 그곳에서 새로운 학문을 배우게 지원했습니다. 타이 지식인들은 유럽을 다니며 입헌군주제를 배웠고 전제군주제가 더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며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입헌군주제가 시암 왕국을 구할 체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귀국 후 입헌군주제 설립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라마 6세는 전제군주제를 고집했고 둘은 종종 충돌했습니다.
- 인민당คณะราษฎร
타이 청년 지식인들은 라마 6세가 권력을 놓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게서 전권을 앗아 입헌군주제 국가를 건립하려고 했습니다. 지식인들은 같은 이념을 공유하는 지식인들을 모아 1927년 2월 5일 인민당คณะราษฎร을 창설했습니다. 인민당คณะราษฎร을 이끈 지도자는 쁘리디 빠놈용으로 그는 평화 혁명으로 라마 6세의 안위를 보전하며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준군사조직을 창립했습니다. 그들은 쁘라야 빠홀 뽄빠유하세나 장군을 준군사조직을 이끄는 장군 자리에 임명했습니다.
- 4마리의 호랑이
1911년 라마 6세는 왕국군을 새로 창설한 후 야생범 부대กองเสือป่า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야생범 부대กองเสือป่า는 라마 6세를 호위하는 왕립 직속 부대로 라마 6세와 가장 가까이 있는 세력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야생범 부대원들도 입헌군주제를 원했습니다. 야생범 부대กองเสือป่า를 이끌던 대령들은 모여 입헌군주 설립을 논했습니다. 쁘라야 송주라뎃 대위, 쁘라 쁘라사스삐따야윳 중위, 쁘라야 빠홀 뽄빠유하세나 포병 대위, 쁘라야 리땨까네이 대위 4명의 장군이 입헌군주제를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4마리의 호랑이라고 불렸습니다. 이들은 조용히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1925년 11월 25일 라마 6세가 서거하고 라마 7세가 즉위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좋은 기회였지만 라마 7세는 영리하고 민생을 잘 살피는 훌륭한 군주였기에 그들은 일단 라마 7세의 치세를 지켜보았습니다. 타이 민중은 라마 7세를 존경했고 입헌군주제를 원하는 지식인과 군인들도 라마 7세를 인정하며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라마 7세에게 넌지시 입헌군주제에 대해 문의했고 라마 7세는 반대했지만 최대한 라마 7세의 안전을 보호하며 입헌군주제로 전환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대공황과 쿠데타
라마 7세는 훌륭한 군주였지만 그도 대공황의 여파를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시암 왕국은 일본제국, 중화민국, 주변 식민지와 무역으로 국가를 성장해갔는데 대공황이 발발해 일본제국과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블록 경제로 돌아서 자유무역을 막았고 중화민국은 더 큰 혼란에 빠져 무역량이 급감했습니다. 때문에 시암 왕국은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민중은 고단한 삶에 한숨을 쉬었습니다. 라마 7세에 대한 존경심이 감소하는 것은 덤이었습니다.
입헌군주주의자들은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해 무혈 쿠데타를 계획했습니다. 1932년 6월 24일 라마 7세가 방콕กรุงเทพ의 궁전을 떠나자 군대는 바로 쿠데타를 진행했습니다. 그들은 군대를 즉각 보내 방콕 궁전을 포위했습니다. 군대는 전차와 장갑차를 방콕กรุงเทพ 한가운데의 아난타 사마콤 광장으로 보내 시민들에게 쿠데타 사실을 알리고 라마 7세의 가족을 체포했습니다. 군대가 방콕กรุงเทพ 시내를 정리하자 인민당 당원들이 시내로 입성했습니다.
- 1932년 시암 혁명
군대는 전차를 앞세워 왕실 건물을 포위했고 인민당은 입헌군주제를 알리는 선언을 했습니다. 라마 7세도 이를 순순히 따르며 1932년 시암 혁명은 무혈혁명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인민당은 쿠데타를 일으켜 전제군주제를 폐지했지만 여전히 라마 7세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민중 여론도 신경 써 입헌군주제를 빠르게 실행했습니다.
1932년 12월 10일 시암 혁명이 일어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인민당은 라마 7세 즉위식을 준비했습니다. 라마 7세는 전제군주 자리에서 물러나고 바로 시암 왕국의 입헌군주 자리에 앉아 입헌군주제 시암 왕국의 초대 국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인민당과 민중은 라마 7세의 즉위를 환영했고 시암 왕국은 근대적인 입헌군주제 국가로 발돋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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