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 큰 전쟁으로

[더 큰 전쟁으로: 이스타두 노부] 새로운 나라

by 롱카이. 2022. 12. 9.
  • 국가독재Ditadura Nacional
포르투갈 5월 쿠데타
포르투갈 5월 쿠데타

포르투갈 제1공화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지만 승전 후 딱히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포르투갈 제1공화국 정계는 여전히 분열되어 서로 공격했을 뿐 화합과 단결을 하지 않았고 포르투갈 제1공화국 혼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포르투갈 민중은 끝나지 않는 혼란에 지쳤습니다. 이에 1925년 세차례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1926년 5월 28일 마누엘 구미즈 다 쿠스타 육군장교가 군사쿠데타에 성공하며 포르투갈 제1공화국 총리와 의회를 체포했습니다. 그 후 5월 30일 비르나르디누 마샤두 대통령이 후세 멘디스 커비사더스 해군 장교를 총리에 임명하면서 포르투갈 국가독재 시대가 열렸습니다.

국가독재 군경
국가독재 군경

포르투갈 국가독재 시대 동안 호세 메디스 커비사더스, 마누엘 구미즈 다 쿠스타, 안토니우 오스카르 프러고주 카르모나 세 군인이 자리를 번갈아가며 독재를 펼쳤습니다. 포르투갈 국가독재 시대 동안 군부는 민중을 억압하며 반발을 무력 진압했고 포르투갈령 식민지에도 군경을 더 파병해 식민지 저항운동을 강경진압했습니다. 그들은 공포통치로 포르투갈을 유지했지만 1929년 대공황의 직격타를 맞고 급속히 힘을 잃었습니다.


  • 반군정 봉기
마데이라 봉기 진압
마데이라 봉기 진압

국가독재 시대 동안 포르투갈 국민들은 혼란보다는 압제 상황이 그나마 나았기 때문에 큰 저항은 하지 않았고 저항의식도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하지만 식민지는 더 압제적이고 더 잔혹해진 통치에 불만을 표출했고 사방에서 반군정 봉기가 발발했습니다. 1931년 4월 4일 포르투갈령 마데이라 제도에서 군인들이 봉기를 일으켰고 8일에는 포르투갈령 아소르스 제도에서, 17일에는 포르투갈령 기니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이에 군부는 정부군을 파병해 봉기를 무력진압했습니다. 허나 이번에는 본국에서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1931년 8월 26일 스페인 제2공화국의 사주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사전 진압되었습니다.


  • 이스타두 노부Estado Novo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리자르
안토니아 드 올리베이라 살리자르

안토니우 오스카르 프러고주 카르모나 대통령 재임 시절 세계 대공황 여파가 포르투갈을 덮쳤습니다. 민중의 삶은 더 궁핍해졌고 군부체제가 뒤흔들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때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리자르 장관은 포르투갈 경제문제를 해결하며 대공황의 폭풍 속에서 포르투갈을 구해냈습니다. 안토니우 오스카르 프러고주 카르모나 대통령은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리자르 장관의 능력에 감탄했고 1932년 그를 총리에 임명했습니다.

국가연합당
국가연합당

하지만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리자르 장관은 총리에 임명되자마자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와 베니토 무솔리니가 한 일을 그대로 모방하며 포르투갈을 극우국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는 국민에게 대항해 시대를 강조하며 포르투갈 전성기를 고무시켜 민족주의를 자극했습니다. 그 후 1933년 3월 19일 국가연합당União Nacional을 포르투갈 유일정당으로 임명하고 이스타두 노부Estado Novo(새로운 나라)를 외치며 포르투갈 제2공화국을 선포했습니다. 안토니우 드 올레베이라 살리자르 총리는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국을 모방해 협동조합 경제체제로 국가경제 성장을 꾀했고 베니토 무솔리니의 검은셔츠단을 모방해 포르투갈 여단Legião Nacional을 준군사조직을 설립했습니다. 포르투갈 제2공화국은 독일국과 이탈리아 왕국을 철저하게 모방한 파시스트 국가가 되었습니다.


  • 바르가스 시대Vargas Era
1930년 혁명과 바르가스
1930년 혁명과 바르가스

한편 브라질 제1합중국도 대공황 직격타를 받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대공황으로 브라질 제1합중국 경제가 반토막이 나자 브라질 지식인들은 강력한 나치즘으로 단결해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브라질 국민 역시 굶어 죽는 것 대신 극단주의 정치를 지지해 일단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브라질 제1합중국 내에서 수많은 파시스트 정당이 탄생했고 이윽고 브라질 제1공화국에서도 영웅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제툴리우 도르넬리스 바르가스로 열렬한 파시스트였던 그는 1930년 브라질 총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등록되었으나 낙선했습니다. 하지만 열렬한 추종자였던 군대는 그 해 10월 3일 쿠데타를 일으켜 총선을 무효화하는 1930년 혁명을 일으키고 제툴리우 도르넬리스 바르가스를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했습니다.

공산군을 진압하러 출동하는 브라질 해병대
공산군을 진압하러 출동하는 브라질 해병대

제툴리우 도르넬리스 바르가스 임시 대통령은 브라질 임시정부를 이끌며 반공 파시즘 노선을 채택했고 아돌프 히틀러와 안토니아 드 올리베이라 살리자르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파시스트 정부를 배웠습니다. 또한 베니토 무솔리니에게서 정통 파시즘을 배웠고 미합중국 뉴딜 정책을 공부하며 국가를 발전시킬 국가경제 모델을 구상했습니다. 공부를 마친 그는 1934년 7월 16일 브라질 새헌법을 발표해 브라질 제2공화국을 선포하고 간접 민주제를 명시화했습니다. 이에 브라질 공산당은 반발하며 1935년 11월 23일 대규모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공산당은 공산군을 형성해 무기를 들고 브라질 임시정부 주요시설을 점령했습니다. 이에 브라질 군부는 공산군이 점령한 항구를 무차별 포격하고 도심지의 공산군 기지도 항공폭격하며 군대를 보내 무력진압했습니다. 또한 공산군은 적색테러를 일삼았기 때문에 브라질 민중은 공산군 진압을 원했고 공산군은 브라질군에게 포위되어 소멸했습니다.


  • 이스타두 노부 쿠데타Estado Novo Coup
이스타두 노부 쿠데타 프로파간다
이스타두 노부 쿠데타 프로파간다

공산군을 진압한 제툴리우 도르넬리스 바르가스 대통령은 1937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의 지위를 널리 알렸습니다. 그는 이 쿠데타를 이스타두 노부 쿠데타Estado Novo Coup라고 부르며 안토니아 드 올리베이라 살리자르가 포르투갈 제2공화국을 선포하며 이스타두 노부Estado Novo를 천명했던 것을 모방했습니다. 그는 쿠데타로 브라질 제3공화국을 선포했으며 그를 우상화하는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브라질 제3공화국은 독일국, 이탈리아 왕국과 수교하며 남아메리카를 대표하는 파시스트 국가로 인정받았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