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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7

[더 큰 전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시작] 삼분된 세계 유럽의 파시스트 대공황 이후 유럽에 전체주의 세력들이 세를 얻었습니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혼란을 일으키는 낡은 사상으로 바라보았고 한 인물 아래에 단결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유럽 전체주의는 유럽 국가를 덮쳤고 노르웨이 왕국, 스웨덴 왕국, 핀란드 왕국, 대영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벨기에 왕국 외 국가들이 전체주의로 돌아섰습니다. 명목상 민주주의 국가인 네덜란드 왕국에서도 국가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나 네덜란드 왕국을 파시즘으로 잠식해갔습니다. 그 상황에서 두 파시스트국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그 국가는 이탈리아 왕국과 독일국이었습니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파시즘 국가 모델을 처음 제시했고 아돌프 히틀러는 파시스트국의 눈부신 성장신화를 보여줬습니다. 파시즘은 유럽 전체로 퍼져나가 민주주의.. 2022. 12. 16.
[더 큰 전쟁으로: 전위조국당] 루마니아 정교회 파시스트 대천사 미카엘 군단Legiunea Arhanghelul Mihail 루마니아 왕국에서 태어난 코르넬리우 젤레아 코드레아누는 신실한 정교회 신자였습니다. 막 성인이 된 그는 1917년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키가 폭력적인 방법으로 세를 확장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더불어 그들이 루마니아 왕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 볼셰비키 세력을 심어 적색테러를 일으키며 소요사태를 일으키는 만행을 직접 보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반공산주의 이념을 품었습니다. 그는 유럽 적색테러가 지나간 후 반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23년 4월 3일 반공산주의 조국 수호를 목표로 등장한 국민기독교방위동맹Liga Apărării Național Creștine에 흥미를 느꼈고 그곳에 참여했습니다. 국민기독교방위동맹Liga Ap.. 2022. 12. 8.
[더 큰 전쟁으로: 다이쇼 로망] 일본제국의 번영과 불안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 일본제국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로 성장하던 일본제국은 1905년 러일전쟁 이후 막대한 국가 재정 지출로 잠시 경제가 휘청였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제국은 동아시아의 유일한 산업국가인 점을 이용해 독점 판매로 막대한 부를 얻었습니다. 일본제국 국가 재정은 순식간에 탄탄해졌고 일본제국의 사업가들은 성공한 벼락부자들이 떼로 나왔습니다. 미합중국이 제1차 세계대전 전쟁특수로 광란의 20년대를 맞이했던 것처럼 일본제국도 중산층 급격히 성장하고 이들이 일본제국의 경제를 주도했습니다. 일본제국 중산층들은 미국의 광란의 20년대만큼은 아니지만 화려한 사치를 즐겼습니다. 다이쇼 로망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은 역대 호황기를 맞이했습니다. 일본제국의 중산층들은 사치품을 .. 2022. 12. 1.
[그들의 목표: 소비에트 진격] 무력 혁명수출 소비에트의 서방진격 https://doverequiem1914.tistory.com/140 [끝나지 않은 전쟁: 러시아 내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탄생 분열된 러시아 https://www.youtube.com/watch?v=xAszURtKO44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의 10월 혁명은 러시아 전국의 지지를 받은 혁명이 아니었습니다. 혁명 전부터 볼셰비키에 반감을 가진 세력들은 많았고 doverequiem1914.tistory.com 만약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되지 않았다면 세계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을 수 있습니다. 1919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은 서방으로 무력 투쟁을 전파할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볼셰비키는 옛 러시아 제국 영토에 볼셰비키 단원을 파.. 2022. 11. 24.
[그들의 목표: 소비에트] 세계혁명 이론과 현실 칼 막스의 자본론(자본: 정치경제학 비판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은 자본주의가 가지는 사회불평등을 정확히 꼬집으며 모순을 밝혔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은 자본론으로 세상의 불합리함을 정의할 수 있었고 모두가 평등한 이상향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자본론은 공산주의를 소개한 이론서로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어떻게 공산주의를 실현할 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지식인과 혁명가들은 현실 공산주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던 중 1871년 파리 코뮌이 세워져 공산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왕당파의 탄압으로 2개월 만에 전복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파리 코뮌은 몇몇 공산주의 지식인도 의문.. 2022. 11. 24.
[전쟁 종전 후 협정: 뇌이 조약] 원점으로 돌아간 불가리아 차르국 불가리아 차르국의 항복 1918년 9월 불가리아 차르국의 차르 페르디난트 1세는 연합군의 막대한 물량 공세에 전쟁에서 패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불가리아 차르국을 위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만일 불가리아 차르국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불가리아 차르국은 연합군에게 모두 점령되어 세르비아군의 수중에 놓이게 되고 분노한 세르비아군이 역으로 불가리아인을 대상으로 인종청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불가리아 차르국이 인류 역사에서 완전히 없어질 수 있는 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가리아 차르국을 보존하기 위해 1918년 9월 28일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에게 접근해 항복했습니다. 그는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으로부터 전쟁으로 얻은 영토 반납을 요구받았지만 그는 기존 영토 보전에 안도하며 그 요구를 .. 202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