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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종료/전쟁 종전 후 협정

[전쟁 종전 후 협정: 뇌이 조약] 원점으로 돌아간 불가리아 차르국

by 롱카이. 2022. 3. 4.
  • 불가리아 차르국의 항복

불가리아 차르국 보리스 3세
보리스 3세

1918년 9월 불가리아 차르국의 차르 페르디난트 1세는 연합군의 막대한 물량 공세에 전쟁에서 패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불가리아 차르국을 위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만일 불가리아 차르국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불가리아 차르국은 연합군에게 모두 점령되어 세르비아군의 수중에 놓이게 되고 분노한 세르비아군이 역으로 불가리아인을 대상으로 인종청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불가리아 차르국이 인류 역사에서 완전히 없어질 수 있는 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가리아 차르국을 보존하기 위해 1918년 9월 28일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에게 접근해 항복했습니다. 그는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으로부터 전쟁으로 얻은 영토 반납을 요구받았지만 그는 기존 영토 보전에 안도하며 그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1918년 9월 28일 항복한 그는 10월 3일 장남 보리스 3세에게 차르 지위를 부여하고 스스로 물러나 여생을 보냈습니다. 불가리아 차르국은 연합국에 항복해 전쟁에서 이탈했고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세르비아 왕국에게 불가리아 차르국 침공을 말렸습니다.


  • 뇌이 조약

제1차 세계대전 뇌이 조약
뇌이 조약으로 불가리아 차르국이 상실한 영토

불가리아 차르국의 차르 보리스 1세는 연합국의 조약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1919년 11월 27일 연합국은 불가리아 차르국을 불러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연합국의 미합중국, 대영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일본제국은 불가리아 차르국 대표단을 프랑스 뇌이Neuilly 시청으로 불렀고 그곳에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연합국이 작성한 조약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불가리아 차르국이 점령한 그리스 왕국의 영토와 불가리아 차르국의 서트라키아를 그리스 왕국에게 반납할 것.
2. 그리스 왕국과 인구교환을 할 것.
3.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 왕국에게 영토 일부를 할양할 것.
4. 부쿠레슈티 조약의 무효를 인정하고 부쿠레슈티 조약으로 얻어낸 도브루자 지역을 루마니아 왕국에게 반납할 것.
5. 군대를 2만명으로 줄일 것.
6. 전쟁배상금으로 10억 파운드를 지불할 것.
7.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 왕국을 인정할 것.




  • 제48조항

뇌이 조약 제48조항
제48조항

불가리아 차르국은 뇌이 조약을 수용했고 승전국에게 영토를 할양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왕국에게 서트라키아를 할양하면서 지중해로 가는 항구를 상실했습니다. 때문에 불가리아 차르국은 흑해 무역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불가리아 차르국은 이 점을 항의했고 연합국은 불가리아 차르국에게 에게 해에서 한정적인 무역을 허용했습니다. 그래서 연합국과 불가리아 차르국은 협상해 그리스 왕국 서트라키아 지방 법률에 제48조항으로 불가리아 차르국 상선이 에게 해의 특정 구역에서 무역을 할 수 있다는 법을 제정했습니다. 허나 그리스 왕국은 이 조항을 잘 지키지 않았고 불가리아 차르국은 흑해 무역으로만 외국과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 독재국가 불가리아 차르국

불가리아 알락산다르 스토이메노프 스탐볼리스키
알렉산다르 스토이메노프 스탐볼리스키

1919년 뇌이 조약으로 세력이 약해진 불가리아 차르국의 지도자 차르의 권위는 추락했고 불가리아 차르국에 전제군주정을 폐지하고 입헌군주정을 세우자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1908년 정계에 입문해 불가리아 차르와 갈등을 벌이던 알렉산다르 스토이메노프 스탐볼리스키는 1920년 총선에서 농민국민연합이 승리하면서 불가리아 차르국의 총리로 등극했습니다. 그는 전제군주정을 제거하고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했으며 공산주의 소비에트 정부와 연합해 농촌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는 불가리아 차르국의 농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1923년 총선에서 다시 총리가 되었습니다.

 

불가리아 차르국 독재자 보리스 3세
보리스 3세

허나 차르 보리스 3세는 차르에게 적대적인 총리를 싫어했고 군부와 보수주의자들은 좌파 개혁을 펼치는 알렉산다르 스토이메노프 스탐볼리스키 총리에게 불만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총리가 자신들의 이권을 강탈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1923년 총선에서 승리한 알렉산다르 스토이메노프 스탐볼리스키가 총리를 연임하자 그를 암살해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차르 보리스 3세는 전제군주제를 부활하고 강력한 독재 정치를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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