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1차 세계대전 종료/전쟁 종전 후 협정

[제1차 세계대전 종료: 베르샤유 회담] 종전 후 서유럽의 질서

by 롱카이. 2022. 2. 9.

https://youtu.be/eL1_WxTvnuw


바이마르 공화국

바이마르 공화국 국기
바이마르 공화국 국기

1918년 11월 독일제국이 새로 출범한 임시정부는 곧 공화국을 선포했습니다. 새 공화국은 국명을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제정하고 휴전협정 후 연합국과 최종 협정을 기다렸습니다. 동시에 바이마르 공화국 내부에서 일어난 공산주의 혁명 등 정치 소요사태를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내부 문제로 혼란스러울 때 연합국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재기 불능으로 만들기 위해 벨기에와 프랑스에 주둔한 연합군이 1918년 12월 1일 룩셈부르크와 독일 국경을 넘어 라인란트Rhineland로 진격해 라인란트Rhineland 서쪽을 장악하고 대영제국 왕립 해군은 독일 연안에 기뢰를 더 많이 부살해
독일의 잠수함이 활동할 수 있는 원천을 차단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연합국의 행보에 항의했지만 이미 전쟁으로 붕괴된 제국 위에 세워진 신생 공화국은 힘이 없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연합국의 진군을 막지 못하고 무력해진 사이 연합국은 모여 전쟁배상금과 각종 협정 내용을 두고 의논했습니다.


  • 14개조 평화 원칙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 14개조 평화원칙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

1918년 유럽에서 벌어진 대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된 미국은 이 기회를 먼로 독트린을 해체하고 유럽에도 미국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처음에는 먼로 독트린에 따라 유럽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다른 정치인들의 끝없는 설득과 JP 모건 체이스 은행을 구원하기 위해 결국 유럽 일에 간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드로 윌슨과 미국 연방 의회는 1917년 치머만 사건으로 미국 여론이 반독 참전 여론으로 기울어져있을 때 법안을 재빨리 통과시켜 유럽의 대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유럽에 미국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전세계의 질서를 주도하기 위해 대전쟁 이후의 질서를 구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드로 윌슨의 14개조 평화 원칙으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질서의 청사진이었습니다.

1918년 1월 8일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국회 연설로 그가 구상한 새 질서를 공개했습니다. 그가 대중에 공개한 14개조 평화 원칙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강화 조약은 공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또 공표되어야 한다. 그 체결 이후에는 어떠한 종류의 비밀 회담도 있어서는 안 된다. 외교는 항상 정직하고 솔직하며 공개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2. 평화시와 전시를 막론하고 영해 밖에서 항해의 자유는 보장되어야만 한다. 다만 국제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취해진 국제적 조치에 의해 해양이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봉쇄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3. 평화를 희망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 협력하는 모든 국가들 사이에는 가능한 모든 경제적 장벽을 없애고 동등한 무역 조건을 확인해야 한다.

4. 각국의 군비는 상호 보장 아래 자국의 안보에 필요한 최소 수준으로 감축해야만 한다.

5. 식민지에서 주권과 같은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 당사자인 주민들의 이해는 법적 권리의 결정을 기다리는 정부의 정당한 청구와 동등한 중요성을 가져야 한다. 이 원칙을 엄격히 준수하는 기반 위에서 모든 식민지 문제는 자유롭고 열린 자세로, 절대적으로 공평하게 조정해야 한다.


-영토 문제

6. 외국군은 러시아의 모든 영토에서 철수해야 하며, 러시아는 자국과 관련된 모든 정치적 발전과 국가정책을 자주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또한 러시아는 러시아의 모든 영토에서 외국군의 철수와 러시아와 관련된 모든 사안의 해결을 위해 세계 다른 나라들로부터 최선의 그리고 자유로운 협조를 보장받게 될 것이며, 이것은 정치 발전과 국가정책에 관한 러시아 스스로의 독립적인 결정을 제약하거나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가 어떠한 사회체제를 선택하든 관계없이 자유국가 세계의 일원으로서 진심으로 환영받을 것이며, 러시아가 필요로 하거나 희망하는 모든 종류의 원조를 제공받을 것이다. 우방국에 의해 수개월 안에 이루어질 러시아에 대한 원조는 자국의 이해와 상관없이 우방국 러시아에 대한 선의, 이해 및 사려 깊은 호의를 반영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7. 벨기에는 세계의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주권을 회복하게 될 것이며, 벨기에에 주둔해 있는 외국군은 철수하게 될 것이다. 세계 각국은 이러한 사실에 동의할 것이며, 벨기에의 주권을 제한하려는 어떤 시도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다른 어떤 행위보다도 각국이 자발적으로 국가 간 상호 관계를 정립하기 위하여 설정한 법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치유책이 없이는 국제법의 모든 구조와 효력은 영원히 손상될 것이다.

8. 프랑스의 모든 영토는 해방되어야 하고, 침략당한 지역은 회복되어야 한다. 또한 1871년 알자스-로렌 문제에 관해 프로이센이 프랑스에 가한 부당 행위는 거의 50년 동안 세계 평화를 교란했던 것인 만큼 다시 한번 모든 나라의 이익을 위해 평화가 확보될 수 있도록 시정되어야 한다.

9. 이탈리아 국경을 재조정하는 문제는 확실히 인정될 수 있는 민족적 경계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10.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의 민족들에 대해 우리는 그들의 국제적 지위가 보호되고 보장되기를 바라며, 따라서 그들에게는 자주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기회가 아무런 제약 없이 인정되어야 한다.

11. 루마니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에 주둔한 외국군은 철수해야 하며, 점령 지역은 원상 복구되어야 한다. 세르비아에게는 자유롭고 안전하게 해상에 접근하는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 발칸에 위치한 여러 국가 간의 상호 관계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민족 정체성과 충성심에 바탕을 두고 우호적인 협의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발칸 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독립과 영토 보전은 국제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12. 현재의 오스만 제국 중에서 투르크인이 차지하는 영토의 주권은 확실히 보장되어야 한다. 투르크의 지배를 받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활의 확실한 안전과 절대로 방해받지 않는 자율적인 발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르다넬스 해협은 국제적 보장 아래에 모든 국가의 선박 및 교역의 자유로운 통로로 영원히 개방되어야 한다.

13. 독립된 폴란드인의 국가가 수립되어야 한다. 독립국가 폴란드는 분명하게 폴란드 주민이 거주하는 영토를 소유하며, 해상으로 자유롭고 안전하게 나갈 수 있는 통로를 보장받게 될 것이다. 또한 국제협약에 의해 폴란드의 정치적⋅경제적 독립과 영토 보전을 보장해야 한다.


-국제 연맹

14. 강대국과 약소국을 막론하고 정치적 독립과 영토 보전을 상호 보장할 목적으로 특별한 규약 아래에 전체 국가의 연맹체가 결성되어야 한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14개조 평화 원칙으로 앞으로의 새 질서와 연합국의 영토 문제, 국제 연맹 창설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연설은 민족주의에 입각해 유럽 국가들의 영토를 분할하고 유럽과 세계에 민주주의를 불어넣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전부터 존재했던 민족자결주의를 14개조 평화 원칙으로 세계 질서의 기본 이념으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그는 민족자결주의를 유럽 국가들에게 한정했고 식민지에 대해서는 승전국이 식민지를 분할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의 연설에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영감을 얻었고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운동이 전보다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더이상 대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미국이 세계 질서를 주도하기 위해 국제 연맹 창설을 원했고 국제 연맹 창설에 대한 희망사항도 14개조 평화 원칙에 수록했습니다. 그가 연설을 한 때에는 아직 대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전쟁의 향방이 결정되었고 미국은 마지막 위기인 서부전선을 지키기 위해 출동하며 대전쟁을 연합국의 승리로 끝내는데 큰 공헌을 하고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질서에 순응하게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의 평화 원칙은 대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의 질서를 정리하는데 기본 개념이 되었습니다.


  • 승전국의 요구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의 대영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미합중국은 평화 조약을 작성해 바이마르 공화국과 조약을 체결해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려고 했습니다. 하나의 조약서를 작성해야 했던 승전국들은 각자 바이마르 공화국에 원하는 요구 사항이 다 달랐기 때문에 각자 조약을 작성하고 조약들을 모아 정리해 하나의 조약서를 작성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드르 윌슨 미국 대통령은 제1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주역이었기에 조약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는 14개조 평화 원칙에 따라 조약을 작성하기를 원했고 각 국가들의 조약을 모아 14개조 평화 원칙에 맞게 정리했습니다.

각 국가들이 원한 조약 내용은 상이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붕괴시키는데 공을 세운 이탈리아 왕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점령한 이탈리아 고토를 회복하기를 원했습니다. 허나 발칸 지역에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새로 생겼고 이탈리아 왕국은 아드리아 해 동부 발칸지역의 이탈리아 고토를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조바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왕국은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지배한 피우메Fiume(리예카Rijeka)를 무단 점령했습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이탈리아 왕국의 단독 행위에 이탈리아 왕국을 다독이느라 평화 협정 정리를 몇달 연기했습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예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독일에게 무참히 패배해 자국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제국 선포를 허용하는 치욕을 겪었고 대전쟁 때에는 자국 영토에서 독일제국과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독일제국(협정 준비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기 때문에 전쟁 피해 군인&민간인과 그들의 재산에 대한 모든 전쟁배상금 납부를 요구했습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막대한 전쟁배상금으로 자국을 재건하고 독일을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막아 유럽 대륙의 전통적 강자 프랑스가 유럽을 지배하는 영광을 재현하려고 했습니다. 대영제국은 프랑스의 성장을 견제했고 프랑스보다는 전쟁 피해가 적었기 때문에 별다른 보복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역시 새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프랑스의 가혹한 조약으로 독일과 프랑스가 다시 전쟁하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를 진정시켰습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지도 하에 승전국들은 조약을 작성하고 정리해 하나의 조약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승전국들은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을 불러 평화 조약을 체결하고 대전쟁을 끝맺으려 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항의도 못하고 평화 조약 회담에 끌려나가 패전국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 베르사유 조약

1919년 베르샤유 조약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열린 베르사유 조약

대전쟁 당시 독일제국에 대한 증오심이 강했던 프랑스 제3공화국은 독일제국이 출범했던 베르사유 궁의 거울의 방에 바이마르 공화국을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베르사유 궁 거울의 방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해 프로이센 왕국의 빌헬름 1세가 카이저(황제)에 등극해 독일제국을 선포한 곳으로 프랑스 입장에서는 적에게 좋은 일만 해준 치욕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베르사유 궁 거울의 방에서 독일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배를 인정하면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치욕을 씻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베르사유 궁 거울의 방에서 독일제국이 출범하고 독일제국이 멸망했다는 상징성을 부여하려 했습니다. 다른 승전국들은 프랑스의 요구에 응해 연합국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평화 협상은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궁 거울의 방에서 체결되었습니다.

베르샤유 조약으로 독일이 상실한 영토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바이마르 공화국이 상실한 영토

베르사유 조약에는 많은 조약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1. 바이마르 공화국 영토 분할
2. 알자스-로렌 포기와 독일제국 식민지 포기
3. 라인란트 서쪽 비무장화 및 군비축소와 잠수함 등 대전쟁 때 확보한 무기 파괴와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장 해채
4. 전쟁배상금을 금을 기준으로 갚을 것
5. 게르만 국가들끼리 합병 금지
6. 연합국의 물자 수입을 제한 및 거부하는 것 금지 및 무관세 수입과 관세 수출를 준수할 것

이었습니다. 이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영토를 상실하고 군사력을 축소하며 무역에 있어서 승전국의 물자를 무관세로 수입해야 하고 수출 시에는 관세를 메겨 손해보는 무역을 해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이는 바이마르 공화국에게 가혹한 처사였습니다. 힘이 없는 바이마르 공화국은 조약에 서명해 조약을 체결했지만 조약 내용에 분노했습니다. 승전국들 역시 마찬가지로 조약의 가혹성에 대해 토론을 벌였습니다.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고 1920년 1월 10일 베르사유 조약이 공표되었습니다. 이에 1920년 바이마르 공화국은 조약 내용에 따라 패전국의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