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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4

[더 큰 전쟁으로: 다다이즘의 탄생] 스위스 연방이 지킨 목소리 전쟁을 대비한 무장중립국 스위스 연방은 유럽에서 가장 험준한 알프스 산맥 중심지에 위치한 국가로 험악한 지형에 비해 자원이 전무해 그 어떤 국가의 이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스위스 연방은 그 점을 이점으로 작용시켜 중립국을 천명했고 20세기 초 삼국동맹과 삼국협상으로 유럽에 전운이 감돌 때 유럽 국가들에게 중립국임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독일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내심 스위스 연방의 참전 혹은 합병을 기대했고 스위스 연방군의 전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스위스 연방은 1907년 스위스 연방군을 창설한데 이어 1911년 군 개혁을 통해 스위스 연방군의 규모를 키웠습니다. 이로서 스위스 연방은 동맹국과 협상국의 침입에 철저하게 대비했습니다. 그리고 1914년 8월 1일 독일제국이 프랑스 제3공화국에게 선전.. 2022. 12. 1.
[더 큰 전쟁으로: 혁명의 확산] 폭풍 후 붉은 물결이 몰아치다 사회주의자의 외침 제1차 세계대전은 19세기 절정을 찍은 민족주의가 폭발해 벌어진 전쟁이었습니다. 민족주의자들은 자민족이 가장 우수한 민족이며 타민족은 야만적이고 열등한 민족이라고 선동했습니다. 이는 문명인으로 간주되던 같은 유럽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인과 독일인은 서로를 열등한 민족이라 생각하며 극단적으로 증오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청년 튀르크당 역시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였고 때문에 오스만 제국 영토에서 튀르크 민족 외의 민족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제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대영제국, 러시아 제국 등 다민족 제국은 군주 하에 뭉쳐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강요했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를 모두 부정했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족주의와 군주제를 증오했고 민족에 상.. 2022. 11. 28.
[동부전선: 10월 혁명] 프롤레타리아 혁명 코르닐로프 쿠데타 러시아 임시정부의 알렉산드르 표토로브나 케렌스키 수상은 러시아 최고 지도자가 되었지만 그는 이미 신임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러시아 인민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고 그의 편이었던 러시아 임시정부 각료들도 그를 의심했습니다. 케렌스키 공세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브루실로프 총사령관의 러시아군은 붕괴되었고 라브르 게오르기예비치 코르닐로프 사령관의 러시아군만 유일하게 존속했습니다. 덕분에 라브르 게오르기예비치 코르닐로프는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브루실로프 총사령관의 뒤를 이어받아 러시아군 총사령관이 되었고 러시아의 군경 치안을 담당했습니다. 러시아 임시정부 내에서 각료들의 신임을 상실한 알렉세이 표토로브나 케렌스키는 뒤늦게 개혁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사형제를 폐지하며 군대 내에서.. 2022. 2. 24.
[동부전선: 케렌스키 공세] 러시아 임시정부의 승부수 휘청이는 임시정부 2월 혁명으로 탄생한 러시아 임시정부는 러시아 제국 시절 하원인 두마дума 출신 의원들과 장군들로 구성된 정부로 보수주의 상류층이었던 이들은 국가 수호를 위해 전쟁 유지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민중들은 전쟁으로 많은 가족을 잃었고 국가 경제는 파탄나고 식량 공급은 끊겨 곤궁한 생활을 지냈습니다. 이에 민중들은 러시아 임시정부를 비난하며 세금 납부 거부와 총파업으로 정부에 맞써 싸웠습니다. 민중 운동은 러시아 전국으로 퍼졌고 러시아 임시정부는 민중들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세금이 걷히지 않자 임시정부의 재정은 악화되었고 러시아 임시정부는 점차 정부의 기능을 상실해갔습니다. 허나 알렉산드르 표토로브나 케렌스키는 러시아의 승리를 중요하게 여겼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갈리치아Gali.. 2022.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