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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구/서부전선

[서부전선: 국경전투 2편] 벨기에 전투

by 롱카이. 2022. 1. 18.

제1차 세계대전 돌격하는 프랑스군 흑백사진
돌격하는 프랑스군

  • 독일군의 벨기에 침공

독일은 슐리펜 계획에 따라 벨기에를 통과해 프랑스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벨기에는 독일군의 통행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 대가로 벨기에 영토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벨기에는 수세에 몰렸지만 지원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방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벨기에는 밀려났고 독일군은 벨기에-프랑스 국경 근처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조프르 총참모장은 벨기에에 독일군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벨기에 방면으로 프랑스군을 파견해 공세를 하려고 했습니다. 많은 장성들이 벨기에를 포기하라고 요청했지만 조프르 총참모장은 무시하고 꿋꿋하게 공세를 준비했습니다. 조프르 총참모장은 아르덴Ardennes 숲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벨기에 북부에 독일군이 진출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해안선을 따라 크게 우회해 진격하는 독일군을 막기 위해 샤를루아Charleroi로 병력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르덴을 포기하지 못했던 조프르 총참모장은 아르덴과 샤를루아 두군데에서 독일에 대한 공세를 명했습니다.


  • 아르덴Ardennes 전투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 컬러사진
아르덴으로 진격하는 독일군

1914년 8월 20일 독일 남부군은 프랑스 제1군과 제2군을 공격하며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21일 프랑스 제3군과 제4군은 공세를 시작했지만 짙게 낀 안개와 호우 속에서 적을 찾지 못하고 아군끼리 만나 뒤엉켰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지휘관들은 충분한 아르덴 전술 지도가 없어 관광지도 등에 의존한 채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아르덴 숲 안개
아르덴 숲 안개

잠시 혼선을 빚던 프랑스군은 다시 진격해 프랑스 제4군은 쓰무아Semois 강을 건너 뇌프샤또Neufchâteau로 진격했고 프랑스 제3군은 아뢸Arlon으로 진격했습니다. 그 사이 독일군은 공세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 빌헬름 폰 프로이센 황태자
빌헬름 폰 프로이센 황태자

빌헬름 폰 프로이센 독일 황태자가 지휘하는 제5군은 아르덴 숲 남부 프랑스의 핵심 요새인 베르됭Verdun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 진군하고 있었고 알프레히트 공작이 지휘하는 제4군은 뇌프샤또로 진격했습니다.

8월 22일 오전 프랑스 제3군은 독일 제5군을 목격하고 돌격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짙은 안개는 프랑스 병사들이 우왕좌왕하게 만들었고 독일군은 참호를 파고 기관총으로 프랑스군을 공격했습니다. 프랑스군은 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는 총알에 맞아 큰 피해를 입고 후퇴했고 독일군은 많은 프랑스 무기를 노획했습니다. 프랑스 제3군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후퇴했습니다.


  • 로시뇰Rossignol 전투

제1차 세계대전 국경전투 로시뇰 전투
패허가 된 로시뇰 마을

동시에 제4군도 독일군의 포격에 큰 피해를 입으며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의 용맹한 식민지군으로 구성된 제3식민군단의 분전으로 뇌프샤또에 더 가까이 진격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오후가 되자 독일군 창기병은 프랑스 제5식민여단과 제17군단을 기습 공격했습니다. 놀란 프랑스 병사들은 도망갔고 독일군 창기병은 프랑스 제4군에 큰 공백을 만들었습니다.

로시뇰에서 프랑스 제3식민사단은 독일군을 향해 용맹하게 돌격했지만 독일군 기관총 공격에 사단장까지 전사하면서 괴멸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사령관은 총참모장에 후퇴명령을 내려달라는 전보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총참모장 조프르 장군은 피해가 커짐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제4군 사령관은 총참모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병력을 후방으로 후퇴해 더 큰 피해를 막았습니다. 23일 끝난 아르덴 전투는 프랑스의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독일군도 전투에서 막심한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독일 빌헬름 폰 프로이센 황태자의 군은 베르됭 요새로 진격하지 못하고 그대로 군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의 목표 베르됭 요새 공략이 실패했음에도 빌헬름 2세는 아들을 칭찬하며 철십자 훈장을 내렸습니다.


  • 프랑스-영국 연합군의 탄생

제1차 세계대전 프랑스군 샤를 랑레자크 참모장
샤를 랑레자크 장군

샤를 랑레자크 장군은 조프르 총참모장을 끊임없이 설득했습니다. 샤를 랑레자크 장군은 독일군이 벨기에를 통과해 프랑스를 침공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고집이 센 조프르 총참모장은 그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결국 끊없는 설득에 질린 조프르 총참모장은 샤를 랑레자크의 벨기에 파병을 허락했습니다. 벨기에 전선 참전을 허락받은 샤를 랑레자크 장군은 8월 15일 제5군 사령관이 되어 벨기에군을 도우러 벨기에로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프르 장군은 고집을 꺽지 않고 프랑스 제3군, 제4군을 아르덴 숲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랑레자크 장군에게아군이 고전할 경우 지원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샤를 랑레자크 장군의 제5군은 쉬지도 못하면서 벨기에 중부지방으로 빠르게 행군하는 와중에 제3/4군을 지원하라는 명은 불가능한 명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영국원정군 존 프렌치 총사령관
존 프렌치 총사령관

다행히 이때 대영제국군이 벨기에에 상륙한 상황이었습니다. 대영제국은 보어전쟁의 영웅 존 프렌치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영국원정군을 벨기에로 보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8월 14일 벨기에 아미엥Amien에 상륙해 프랑스 제5군을 만났습니다. 프랑스-영국 연합군의 탄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연합군의 지휘자인 둘은 첫만남부터 삐끗했습니다. 신랄한 성격이었던 샤를 랑레자크 장군과 변덕스럽고 무례한 행동일 자주 하던 존 프렌치는 회의장에서 서로 싸웠고 프랑스와 영국 지휘부는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충돌했습니다.


  • 샤를루아Charleroi 전투

제1차 세계대전 샤를루아 전투
샤를루아 기념화

8월 20일 프랑스 제5군은 샹브르-뮤즈Sambre-Muse에 진형을 갖추고 독일 제2/3군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21일 조프르 총참모장은 아르덴에 있는 제3/4군과 제5군에게 동시공격을 명했습니다. 아르덴에서 공세가 시작되었고 샤를루아의 프랑스 제5군도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21일 프랑스 제5군은 뫼즈 강과 나뮈르를 포위하고 영국원정대는 몽스Mons를 수비했습니다. 독일군이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전보를 받은 랑레자크 장군은 독일군이 오기를 기다리다 독일군이 나타나자 돌격을 명했습니다. 독일군은 침착하게 프랑스군의 돌격을 막아내고 샹브르 강을 건넜습니다. 프랑스군은 독일군을 다시 강 너머로 몰아내려고 끊임없이 반격했습니다.

22일 프랑스 제5군은 나뮈르 강으로 공세를 계속했습니다. 프랑스 제5군 좌익부대는 독일군의 공세에 대비했지만 독일군은 디낭Dinant을 점령하고 다리를 끊어서 프랑스를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좌익부대 사령관은 더이상 상브르 강에서 방어할 수 없다고 보고하고 후퇴했습니다. 이에 따라 상브르 강은 독일군에게 넘어갔습니다. 전투는 23일에도 진행됬지만 프랑스는 밀렸고 결국 후퇴했습니다.


  • 몽스Mons 전투

제1차 세계대전 영국원정군 몽스 전투
운하를 지키는 영국원정대

한편 몽스Mos에 도착한 영국원정군은 몽스-콩데Mons–Condé 운하에 진을 치고 다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8월 23일 독일군은 전열보병형태로 진군했으나 영국원정대는 기관총으로 독일군을 괴멸시켰습니다. 이윽고 독일군의 공세가 시작되었고 영국원정군은 필사적으로 막으며 24일까지 운하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많은 독일 병력의 압박과 프랑스군의 패퇴에 영국원정군도 후퇴했습니다. 독일군은 운하까지 점령하면서 프랑스로 밀고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위험에 처한 파리

제1차 세계대전 프랑스 파리 에펠탑 흑벡사진
1914년 8월 파리

국경전투에서 패배한 군은 파리 외각으로까지 후퇴했습니다. 프랑스 국경에서 파리까지 수비군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독일군은 비록 벨기에에서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허비했지만 프랑스 파리로 진격할 길이 뚫려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프랑스는 암울한 미래가 다가왔고 독일은 희망으로 가득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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