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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구/서부전선

[서부전선: 국경전투 1편] Pour la Glorie

by 롱카이. 2022. 1. 18.
  • 마지막 수업La Dernière Classe

마지막 수업 Vive La France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의 마지막 장면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La Dernière Classe>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 프로이센 영토가 된 알자스 지방의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알자스에 살던 주인공 프란츠는 평소 공부보다는 노는 것을 좋아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어느 날 평소처럼 학교에 갔지만 그는 학교 분위기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프랑스어 선생님이었던 이멜 선생님은 평소에 입지 않던 정장 차림을 하고 프랑스어 수업을 중단하고 독일어 수업을 하라는 베를린의 명령을 학생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이 수업이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이라고 말했습니다. 평소 프랑스어 수업을 소홀히 듣던 프란츠는 후회했지만 이멜 선생님은 프란츠가 반성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며 위로했습니다. 곧 종소리가 들리고 프로이센군이 나타났습니다. 이멜 선생님은 칠판에 Vive La France(프랑스 만세)라고 쓰며 수업이 끝이 났습니다.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은 알자스 로렌 지방을 잃은 프랑스인의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자극했습니다. 프랑스 중공업의 핵심 지방이었던 알자스 로렌 지방의 상실은 프랑스의 침체를 의미했습니다. 프랑스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알자스 로렌 지방의 회복이 필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기회가 왔습니다.


  • 영광을 위하여Pour la Glorie

제1차 세계대전 프랑스군 컬러 사진
1914년대 프랑스 병사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총성이 울리고 8월 1일 독일제국이 러시아 제국에 선전포고하자 프랑스 군수뇌부는 총동원령을 승인하고 다음날부터 총동원령을 명했습니다. 많은 프랑스인들이 게르만족의 침입을 받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군대에 손수 갔으며 민족주의를 거부하고 인터네셔널을 주장하던 사회주의자들도 조국의 위협이 닥치자 자원해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프랑스는 독일에 비해 인구와 병력 수가 적어 많은 이들이 자원해 작은 보탬이라도 되려고 했고 식민지인들도 본국으로 보내 병력을 충당했습니다. 그리고 충원된 대부분의 병력을 알자스 로렌 근방으로 보냈습니다.

조제프 조프르 제1차 세계대전 프랑스군 총참모장
프랑스군 총참모장 조제프 조프르

프랑스군 총참모장 조제프 조프르Joseph Joffre 장군 휘하의 병력은 알자스 로렌으로 빠른 시일 내에 집결했고 전투 시작을 알리는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알자스 로렌 지방으로 돌격하라는 명을 받은 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조제프 조프르는 러시아에서 14일에 러시아와 프랑스가 동시에 대공세를 하자는 제안을 받아 8월 14일 대공세를 하기로 했습니다. 프로이센에게 빼앗긴 알자스 로렌을 되찾을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국경전투 지도
국경전투 지역



  • 뮐르즈Mulhouse 전투

프랑스 산업혁명 뮐르즈
프랑스 산업혁명의 태동지 뮐르즈Mulhouse

조제프 조프르 장군은 8월 14일 대공세를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조프르 장군은 총공세 전 알자스 로렌 지방 일부를 받으면 좋은 선전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8월 7일 단독 공세에 나섰습니다. 조프르 장군은 8월 7일 알자스 지방의 뮐르즈를 공격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프랑스 제7군단은 뮐르즈로 진격했고 독일군은 뮐르즈에서 미미한 저항을 하고 빨리 뮐르즈에서 후퇴했습니다. 독일군 좌익부대는 알자스 로렌 지방을 조금씩 내어주며 전략적 후퇴를 하다 프랑스를 공격 섬멸하려는 작전을 가졌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냥 물러나주었습니다.

뮐르즈 주민들은 마을이 프랑스에게 해방된 것에 기뻐하며 프랑스군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8월 9일 아침 독일군이 반격하기 시작했고 10일 독일군에게 점령당했습니다. 프랑스군은 패퇴했고 조프르 장군은 복귀한 부대를 폴 포Paul Pau 지휘관 휘하의 알자스군에 배치했습니다.


  • 대공세: 로렌 전투

제1차 세계대전 국경전투 돌격하는 프랑스군
돌격하는 프랑스군

7일 시작된 뮐르즈 전투에서 별 성과없이 돌아가고 마침내 프랑스와 러시아가 약속한 14일이 되었습니다. 프랑스군은 14일 보주Vosges 산맥과 자르부르Sarrebourg로 돌격했습니다. 조프르 장군은 두 군이 서로 떨어져있지 말라고 주의했지만 보주 산맥과 자르부르로 나눠서 돌격한 프랑스군은 서로 떨어졌습니다.

프랑스군은 두개로 갈라져 남동쪽에 있는 보주Vosges 산맥으로 진격하는 군과, 도농Donon 산을 넘어 북동쪽에 있는 자르부르Sarrebourg로 진격하는 군으로 갈라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프랑스군은 피해를 입지 않고 순조롭게 진격했습니다. 오직 제26보병사단이 씨헤Cirey를 점령하려고 엄폐물 없이 돌격하다 독일군 기관총 공격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략적 후퇴를 하던 독일군은 15일 본격적 방어에 들어섰습니다. 독일군은 프랑스군 포를 향해 포격해 프랑스군이 대포를 쓸 수 없게 만들었고 엄폐물에 숨어 방어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큰 피해를 입는 와중에도 병력을 밀어 하나씩 점령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코트 드델메(Côte de Delme)와 모르주-디외즈(Morhang-Dieuze) 방어선에서 독일군의 포격과 역공세에 밀려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계속 진격하며 샤또-샬랑Chateau-Salins, 디외즈Dieuz, 자르부르Sarrebourg를 점령했습니다. 19일에는 프랑스군이 다시 한번 뮐르즈Mulhouse로 진격해 독일군을 패퇴시키고 뮐르즈를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20일 독일군은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 독일의 반격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 바이에른 장군 크라프트 장군
바이에른 장군(좌)와 크라프트 장군(우)

로렌전투가 시작될 때 독일군은 프랑스군을 메스Metz와 낭시Nancy에 묶어두기로 계획을 세웠지만 프랑스군은 독일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독일군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 장군과 콘타르 크라프트 폰 델먼징엔 장군은 독일 총사령부에 프랑스군을 막기 위해서는 방어전이 아닌 반격전을 해야한다고 끊임없이 설득했고 총사령부의 승인을 받은 두 장성은 20일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20일 프랑스 제20군단이 모르주Morhang을 공격하며 시작된 모르주 전투에서 독일군은 야포로 프랑스 제2군 측면을 집요하게 공격했고 제20군단도 기관총으로 막아내며 프랑스 제2군에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페르디낭 포슈 장군은 샤또-샬랑에서 방어해 프랑스 제2군을 후퇴할 시간을 벌여 독일군은 프랑스 제2군을 일망타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국경전투 지도
프랑스군 중앙 요새도시 에피날

하지만 제2군이 후퇴하면서 21일 프랑스 제1군도 위험하다고 판단해 프랑스군이 전군 철수했습니다. 독일군은 후퇴하는 프랑스군을 완전히 섬멸하려고 했습니다. 더불어 프랑스 영토인 에피날Épinal까지 진격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독일군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총참모장은 이 기회가 프랑스군를 섬멸하고 에피날Épinal을 점령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고 본인이 직접 작전을 계획했습니다.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 장군과 콘타르 크라프트 폰 델먼징엔 장군은 이 작전에 항의했지만 몰트케 총참모장은 작전을 밀고 나갔습니다.


  • 트뤼 드 샤름trouée de Charmes 전투

제1차 세계대전 국경전투 트뤼 드 샤름 전투
언덕에서 벌어진 트뤼 드 샤름 전투

1914년 8월 24일 독일 바이에른 제6군은 트뤼 드 샤름trouée de Charmes에 있는 프랑스 제2군 정중앙으로 돌격했습니다. 독일군은 처음에는 우위를 점했지만 프랑스 제2군은 필사적으로 막으며 독일군의 진격을 늦췄습니다. 독일군 제6군은 프랑스 제2군 대형 중앙을 노렸지만 프랑스 카스텔노Castelnau 장군은 독일군 제6군의 우익을 공격해 독일군을 밀어냈습니다. 제2군 뒤바이Dubai 장군은 독일군 제6군 좌익을 공격해 독일군을 밀어내며 독일군을 포위했고 독일군은 큰 피해를 입고 후퇴했습니다. 독일군은 후퇴하면서도 반격해 8월 26일 전투는 프랑스와 독일 양측이 큰 피해를 입은 채 무승부로 끝이 났습니다.


  • 변동없는 국경선

프랑스는 알자스 로렌 지역을 회복하려 대공세를 했지만 독일군의 반격에 결국 다시 프랑스 국경으로 후퇴했습니다. 독일군도 트뤼 드 샤름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어 프랑스 국경을 넘을 병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양측은 이후로 대치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조프르 장군은 대치기간 동안 로렌 병력을 파리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 대치는 1914년 9월 4일 독일이 낭시Nancy를 점령하기 위해 그헝 꾸혼네Grand Couronné에서 전투를 벌이며 깨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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