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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전쟁으로

[더 큰 전쟁으로: 스페인 내전] 더 큰 전쟁의 전초전

by 롱카이. 2022. 12. 14.
  • 알폰소 13세의 퇴위
알폰소 13세
알폰소 13세

1886년 5월 17일 태어나자마자 즉위한 알폰소 13세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연합국 참전이라는 여론을 잠재우고 중립국을 고수해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입헌군주제에 불만을 품고 사람들이 대전쟁에 정신이 쏠린 틈을 타 전제군주제 부활을 꿈꿨습니다. 그는 대전쟁 동안 의회의 힘을 약화시키고 전제군주제로의 회귀를 꿈꿨지만 1921년 리프 전쟁에서 패배해 국민들의 신망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이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국왕의 위신을 지켜주었기 떄문에 망신을 면했습니다. 한숨을 돌린 그는 스페인 의회를 해산시켰고 스페인 국민들은 이에 집단반발했습니다. 스페인 사회주의자들이 반군주제를 외쳤고 카탈루냐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1929년 대공황이 스페인 왕국을 덮치자 더 극렬하게 발발했습니다. 국민들은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 해임을 외쳤고 1930년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이 사임했습니다. 알폰소 13세 역시 국민들의 분노에 놀라 전제군주제를 취소하고 의회를 세워 입헌군주제로 복귀하려고 했지만 1931년 스페인 의회는 공화당이 의석을 차지하며 공화국 건립을 외쳤습니다. 결국 알폰소 13세는 퇴위해 이탈리아 왕국으로 피신했고 에스파냐 제2공화국이 들어섰습니다.


  • 풍전등화의 에스파냐 제2공화국
에스파냐 제2공화국
에스파냐 제2공화국

에스파냐 제2공화국의 지도자가 된 사회주의 정당은 카톨릭의 봉건 특혜를 철폐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며 여성 참정권을 허용했습니다. 또한 에스파냐 제2공화국의 은행과 철도 등을 국유화했습니다. 허나 에스파냐 제2공화국도 대공황의 여파를 해결하지 못했고 에스파냐 제2공화국의 경제회복은 더디었습니다. 에스파냐 제2공화국은 자신의 무능을 직면하고 농민과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지주와 자본가들의 눈치도 보며 개혁안을 발표했고 피지배층과 지배층 어느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정책들을 양산했습니다. 이는 피지배층과 지배층 모두 돌아서게 만들었고 심지어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즘에게도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 틈을 타 민족주의 우파가 모두의 지지를 받으며 떠올랐고 우파 정당들은 스페인 자치 우익 연합Confederación Española de Derechas Autónomas을 결성해 1933년 총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총선에서 승리한 에스파냐 자치 우익 연합CEDA의 목소리카 커지자 1934년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의 아들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가 국민생디칼리슴 공세평의회 에스파냐 팔랑헤Falange Española de las Juntas de Ofensiva Nacional Sindicalista를 결성했습니다. 팔랑헤Falange는 민주주의를 거부하며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받아들여 전체주의를 기조로 삼았습니다.

호세 칼보 소텔로의 장례식
호세 칼보 소텔로의 장례식

좌파 정당도 인민전선Frente Popular으로 결합했고 에스파냐 자치 우익 연합CEDA가 국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1936년 총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인민전선FP은 개혁을 다시 시작했지만 인민전선FP 내부에서도 온건 좌파와 급진 좌파로 나뉘어져 서로 의견충돌을 보였습니다. 이에 우익 인사들은 인민전선FP의 개혁에 노골적으로 반발하며 백색테러를 일으켰습니다. 인민전선FP는 군대를 동원해 우익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하는 것으로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팔랑헤Falange 역시 백색 테러에 가담했습니다. 그러던 중 팔랑헤Falange 대원은 정부의 준군사조직인 돌격 경찰대의 장교를 암살하자 돌격 경찰대가 우익 인사의 거두였던 호세 칼보 소텔로를 처형했습니다. 우파 인사들은 호세 칼보 소텔로의 죽음을 슬퍼했고 우파 성향이었던 군부는 쿠데타를 준비했습니다.


  • 스페인 내전 발발
7월 쿠데타를 일으킨 스페인군
7월 쿠데타를 일으킨 스페인군

1936년 7월 18일 스페인령 모로코의 스페인군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스페인군은 스페인령 모로코인들의 공화주의 정부에 대한 불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신실한 무슬림이었던 모로코인들은 알라الله를 부정하는 공화주의자들에게 분노했고 스페인군은 모로코군단을 정예부대로 내세워 마드리드Madrid로 진격했습니다. 하지만 반란군은 마드리드Madrid 점령에 실패했고 공화군은 이들에게 역공을 가했습니다. 허나 공화군 지휘관도 전쟁을 전혀 공부하거나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으로 전술에 대해 전혀 몰랐고 스페인 내전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마드리드Madrid 함락에 실패한 스페인군은 리프 전쟁 전후 현지인 반란을 진압하며 실전경험을 가진 에밀리오 몰라 장군의 아프리카군과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아프리카군이 가담하면서 국민전선으로 전력이 강화되었습니다. 실전경험이 없던 초기 스페인군과 달리 두 장군의 아프리카군은 풍부한 실전경험을 가진 스페인 최정예부대였고 이들은 풍부한 실전경험을 살려 국민전선이 전장에서 우위를 선점했습니다. 이에 좌파 세력들이 더 많이 응집하면서 스페인 내전은 공화파와 국민파 두 세력으로 양분되었습니다. 공화파는 에스파냐 제2공화국의 인민전선과 전국노동연맹(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맹), 노동자 총연맹, 카탈루냐 공화파 정당, 바스크 국민당, 각 지방의 좌파 정당들이 연합 결성해 완성되었고 국민파는 스페인군, 아프리카 군단, (통합) 팔랑헤, 스페인 복벽군, 카톨릭 군단이 합쳐 결성되었습니다.


  • 국제 연대로 비화된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

국민파와 공화파 둘 다 낮은 전쟁 이해도로 미숙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스페인 내전은 전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대결로 알려진 스페인 내전은 파시즘과 공산주의 둘 중 하나의 확산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파시스트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는 스페인 내전에 관심을 보였고 극단주의 확산을 우려한 민주주의 국가도 극단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개입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체로 중립의 자세를 보였고 공산주의 국가는 공화파를 지원하고 파시스트 국가는 국민파을 지원했습니다.

인민전선과 국제연맹
인민전선과 국제연맹

소비에트 연방의 코민테른은 공화파에 병기와 군수물자를 지원하며 보급을 담당했고 전술을 교육시키고 군사고문단을 파견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의용군을 결성해 스페인에 모여 국제여단을 창설해 공화파를 도왔습니다. 공화파는 소련의 지원과 많은 병력을 무기로 국민파와의 전쟁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했습니다. 하지만 공화파를 한데 묶어 총지휘할 인물이 부재해 각 세력은 각각 전투에 임했고 무엇보다 세력 간의 갈등이 극심했습니다. 스페인 인민전선은 국민파를 섬멸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아나키스트들은 당장 스페인 소비에트 공화국 건립을 주장했고 국제연맹과 코민테른은 공화파 의견보다는 소련의 의견에 충실했습니다. 또한 바스크 국민당은 바스크 자치를 보장하는 공화파에 가담했지만 공화파가 바스크를 해방시켜줄 지 의심했고 독단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내전 후반에는 공화파 세력끼리 서로 배신자라 비난하며 교전을 했고 공화파는 사실상 해체되어 각각의 세력만 남았습니다.

콘도르 군단
콘도르 군단

반면 국민파는 하나로 뭉쳐 여러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습니다. 국민파에게는 스페인군 중 유일하게 실전경험이 있는 아프리카 군단이 존재했고 아프리카 군단을 지휘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아래 응집했습니다. 그리고 독일국과 이탈리아 왕국은 파시즘을 응원하며 각각 군대를 파병했습니다. 독일국은 루프트바페Luftwaffe의 콘도르 군단을 파견해 재공권 장악과 폭격 임무를 맡았고 이탈리아 왕국은 자원병 군단을 파병했습니다. 포르투갈과 라틴아메리카, 아일랜드 등 각국의 파시스트들도 스페인 국민파를 지원하기 위해 자원했습니다. 바티칸과 카톨릭 교회는 국민파의 승리를 응원하며 전쟁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전쟁에 대해 몰랐던 공화파와 달리 국민파는 정예부대와 외국 정규군이 참전해 전쟁에서 승리해나갔고 에스파냐 제2공화국을 압박했습니다.


  • 스페인 내전의 종결
프란시스코 프랑코
프란시스코 프랑코

국민파는 공화파를 일일이 격파해나갔고 공화파는 국민파에게 패배하는 도중에도 자기들끼리 전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1938년 2월 카탈루냐의 마지막 공화파마저 격파당하고 1938년 3월 28일 국민파가 마드리드Madrid에 입성하면서 스페인 내전은 끝이 났습니다. 스페인 내전 후 에스파냐 제2공화국은 해체되고 에스파냐국이 건국되었으며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수령이 되어 전체주의 지배를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내전으로 이베리아 반도에 파시스트국이 건립되었고 아돌프 히틀러와 베니토 무솔리니는 프랑스 제3공화국을 포위하는 파시스트국이 건립된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는 스페인 내전으로 독일국의 무기 성능을 확인했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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