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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전쟁으로

[더 큰 전쟁으로: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침공] 이탈리아의 자존심

by 롱카이. 2022. 12. 16.
  • 로마의 실현
1936년 이탈리아 제국 계획도
1936년 이탈리아 제국 계획도

이탈리아 파시스트를 주도한 베니토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왕국의 대외팽창을 주도했습니다. 이 때 그의 팽창 의도는 단순히 경제블록 형성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자존심도 있었습니다. 특히 베니토 무솔리니는 로마 제국의 부활을 외쳤고 경제적 이득이 없는 상태에서도 자존심 하나만으로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베니토 무솔리니에게 중요한 것은 로마 제국의 실현이었고 그는 이베리아 반도와 발칸반도를 병합해 이탈리아 제국을 건국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집권 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과 머저르 왕국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리스 왕국, 슬로벤인 크로아트인 세르브인국, 알바니아 공화국에 간섭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는 알바니아 공화국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알바니아 왕국은 이탈리아 왕국이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병합하려다 실패한 지역이자 달마티아Dalmazia 지역을 빼앗은 슬로벤인 크로아트인 세르브인국을 공격해 복수하기 위한 훌륭한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알바니아 공화국에 더 심혈을 기울여 내정간섭을 했습니다.


  • 이탈리아 왕국과 알바니아 왕국의 신경전
조구 1세
조구 1세

베니토 무솔리니는 1925년부터 알바니아 공화국과 조약을 맺어 알바니아 왕국의 자원을 이용할 권리를 얻어냈습니다. 알바니아 공화국은 이탈리아 왕국의 경제침탈을 본격적으로 겪었지만 대통령 아흐메드 조구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데 관심을 표할 뿐 국가 운영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탈리아 왕국은 1926년과 1927년 제1/2차 티라나 조약을 맺어 이탈리아-알바니아 동맹을 결성하고 알바니아군을 이탈리아 왕국군이 교육하며 알바니아 공화국은 이탈리아 왕국에게서 빚을 졌습니다. 이에 아흐메드 조구는 위기감을 느끼고 1928년 스스로 국왕에 등극하고 알바니아 왕국을 선포해 전제군주제로 국정을 바꾼 뒤 반이탈리아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조구 1세는 1931년 티라나 조약을 거부하고 1934년 유고슬라비아 왕국, 그리스 제2공화국과 친선관계를 도모했습니다. 이에 이탈리아 왕국은 전함을 파견해 알바니아 왕국을 협박했지만 알바니아 왕국도 지지않고 이탈리아 왕국의 협박을 무시했습니다. 그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일단 전함을 후퇴시켰고 알바니아 왕국은 기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 독일국의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침공
베니토 무솔리니와 아돌프 히틀러
베니토 무솔리니와 아돌프 히틀러

이탈리아 왕국과 독일국은 우호관계를 유지했지만 베니토 무솔리니는 갈수록 강성해지는 아돌프 히틀러를 내심 견제했습니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1936년 이탈리아 왕국의 영향권에 두려고 한 오스트리아 연방을 1938년 독일국에게 양보했지만 이후 독일국이 주데텐란트Sudetenland를 합병시도하자 불안해졌습니다. 그리고 1939년 3월 15일 독일국이 이탈리아 왕국에게 알리지 않고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을 멸망시키고 뵈멘-메렌 보호령을 건국하며 세력권을 넓혀나가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독일국이 이탈리아 왕국을 능가할 것으로 생각했고 베니토 무솔리니의 자존심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알바니아 침공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1939년 3월 25일 즉흥적으로 알바니아 왕국에게 최후통첩을 선포했습니다. 허나 알바니아 왕국에게 이탈리아 왕국은 강대국이었고 조구 1세는 이탈리아 왕국의 최후통첩을 숨기는 것으로 소극적인 저항을 하려고 했습니다.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 거리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 거리

알바니아 왕국은 최후통첩을 비밀로 하고 국민들에게 아무 일도 없음을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알바니아 왕국의 국민들은 라디오로 선전을 반복하는 정부를 의심했습니다. 1939년 4월 5일 조구 1세의 왕자가 태어나자 조구 1세는 축하의 의미로 축포를 쏠 것을 명했고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던 시민들은 놀라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시민들은 왕자 탄신 축하 축포임을 알고 안심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사람들이 모인 김에 반이탈리아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반이탈리아 시위는 알바니아 왕국 전체로 퍼졌고 4월 6일 이탈리아 왕국은 비행기를 알바니아 대도시로 보내 이탈리아 왕국이 알바니아 왕국을 침공할 것이라는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국민들은 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정부에 반발해 시위하며 무장을 위한 무기를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사이 알바니아 왕국의 고위 공무원은 해외로 도피했고 조구 1세는 동부 산악지대로 몰래 도망쳤습니다.


  •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침공
알바니아 왕국을 침공한 이탈리아 왕국군
알바니아 왕국을 침공한 이탈리아 왕국군

1939년 4월 7일 이탈리아 왕국군은 알바니아 왕국을 침공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군은 전투기의 엄호 하에 4개 주요 항구에 상륙했고 전차를 이끌고 알바니아 왕국 내부로 진격했습니다. 조구 1세는 동부 산악지대에 숨어 국민들에게 무장봉기를 명령했고 알바니아 국민들은 민병대를 결성해 이탈리아 왕국군에 맞써 싸웠습니다. 알바니아 왕국 해군은 4척의 MAS 보트로 이탈리아 왕국 해군에 어뢰공격을 하며 항전했고 알바니아 왕국 북부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조구 1세는 4월 7일 이탈리아 왕국의 침공 소식을 듣고 은행에서 자산을 빼돌린 후 가족과 함께 그리스 제2공화국으로 도망쳤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알바니아 왕국 국민들은 분노하며 이탈리아 왕국군을 환영했고 티라나의 정부청사를 점령했습니다. 4월 12일 알바니아 의회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고 5일간의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 이탈리아 제국 선포
이탈리아 제국
이탈리아 제국

이탈리아 왕국은 4월 12일 이후 알바니아 왕국을 이탈리아 왕국의 괴뢰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4월 15일 알바니아 왕국을 국제연맹에서 탈퇴시킨 후 4월 16일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를 알바니아의 국왕으로 임명했습니다. 또한 베니토 무솔리니는 공식적으로 이탈리아 제국을 선포했습니다. 이로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이탈리아 제국의 국왕이자 에티오피아 제국의 황제, 알바니아 왕국의 국왕이 되었고 베니토 무솔리니가 주장하던 이탈리아 제국이 본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스파치오 비탈레Spazio Vitale
스파치오 비탈레
스파치오 비탈레

베니토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은 이탈리아 왕국은 파시즘이 득세하며 로마 제국의 재현을 외쳤습니다. 그 중 열렬한 파시스트였던 주세페 보타이는 고대 로마 제국처럼 이탈리아 왕국도 지중해와 북아프리카에 혁명적인 파시즘 이념을 전파해야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이탈리아 왕국 팽창의 정당성으로 간주했습니다. 주세페 보타이의 주장은 베니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제국 최종 구상안의 모델이 되었으며 베니토 무솔리니는 발칸반도와 북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를 이탈리아 제국의 영향권 하에 두는 계획을 구상했습니다. 이는 후에 큰 전쟁에서 베니토 무솔리니가 북아프리카에 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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