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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바꾼 것들/남은 상처

[남은 상처: 경제적 피해] 전쟁 후의 경제

by 롱카이. 2022. 11. 1.
  • 경제를 파괴한 전쟁
독일제국 잠수함
독일제국 잠수함

예로부터 전쟁을 할 때 적군의 문자를 차단하는 것이 승리를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전쟁이 일어나면 서로 봉쇄작전을 펼쳐 서로에게 경제적 피해를 입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역시 연합국과 동맹국이 서로에게 경제적 타격을 입혔습니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은 서로 경제적으로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시기에 덜컥 전쟁이 발발해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렸고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해상 물류수송을 마비시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발했습니다.

무제한 잠수함작전
무제한 잠수함 작전

독일제국이 대영제국의 해상봉쇄에 대한 반격으로 실시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대영제국을 역으로 해상봉쇄했습니다. 대영제국은 당시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대영제국이 세계의 거대한 소비 시장이었습니다. 다른 국가, 특히 아메리카 국가들은 대영제국의 소비에 전적으로 의존했고 때문에 독일제국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은 대영제국에 물자를 수출하는 국가에 큰 경제적 피해를 입혔습니다. 또한 파멸적인 전쟁과 무자비한 소모전은 경제를 약화시키고 식량 등 필수품을 귀하게 만들어 인플레이션을 유발했습니다.


  • 제1차 세계대전 주요국 경제
제1차 세계대전 주요국 경제적 피해
제1차 세계대전 주요국 경제적 피해

제1차 세계대전의 주요국은 독일제국, 대영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미합중국입니다. 이 중 서부전선에서 소모전을 벌인 독일제국, 대영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은 GDP가 감소하고 부채가 증가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특히 대영제국은 전쟁물자를 소비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미합중국에게 빌려 사용했기 때문에 전후 부채가 급증했고 세계 경제의 중심지 지위를 미국에게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착취
카자르 제국 석유시추
카자르 제국 석유시추

대영제국은 경제적 우위를 상실했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영제국이 1913년 카자르 제국의 석유시설을 획득했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카자르 제국의 석유시설을 노리고 침공한 오스만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산유시설을 지켜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전후 대영제국은 카자르 제국의 석유를 대량추출해 자국 에너지를 수호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유럽 본토의 국가들은 석유 기업이 부재했고 어떻게든 에너지와 자본을 빨리 전전 수준으로 복귀해야 했습니다.

벨기에령 콩고 목화 농장
벨기에령 콩고 목화 농장

벨기에 왕국은 전후 전 국토가 파괴되었고 이를 복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대영제국으로부터 자본을 빌려 급한 것부터 복구했습니다. 그 후 바이마르 공화국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벨기에 왕국은 1919년 파리 강화회의를 기다리며 일단 식민지인 벨기에령 콩고에서 현지인을 착취하며 목화를 대량생산하고 판매해 자본을 마련했습니다. 프랑스 제3공화국 역시 마찬가지로 바이마르 공화국으로부터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을 돌려받아 석탄광장과 철광산을 돌려받고 다시 산업을 재가동했습니다. 이 때 프랑스 제3공화국의 청년 남성들이 거의 전멸해 기업은 여성노동자로 공장을 운영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본토에서 가까운 프랑스령 알제리의 은행에서 돈을 빼가고 자원을 착취해 프랑스 본토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당연히 이 행위는 알제리인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 살아난 이탈리아 경제
이탈리아 왕국 공장
이탈리아 왕국 공장

지독한 소모전의 연속이었던 서부전선과 달리 이탈리아 전선은 이탈리아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은 서부전선 국가들처럼 물자를 소모하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전쟁물자 생산으로 공장을 대규모 가동하면서 생산량이 증가하고 높은 고용률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이탈리아 왕국의 자본가들은 애국을 명분으로 노동자를 착취했고 이탈리아 공장은 식량, 생필품이 아니라 군수산업에 치중했습니다. 그 결과 식량과 생필품은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도 생활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이 현실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이 틈에 이탈리아 사회주의 세력이 부상했습니다. 특히 공장이 많은 북부에 이탈리아 사회주의 물결이 불면서 전후 이탈리아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 패전국의 경제
패배 후 폐기된 항공기
패배 후 폐기된 항공기

승전국도 경제적 피해를 입었으니 패전국의 경제적 피해는 극심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독일제국 시절 에리히 루덴도르프의 명 아래 군수물자를 집중 생산했고 식량과 생필품이 정말 귀해졌습니다. 거기에 해상봉쇄로 식량과 자원이 유입되지 않았고 독일 노동자들은 하등 쓸모없는 군수물자만 생산하며 굶었습니다. 그리고 이 현실에 분노한 신민들이 11월 혁명을 일으켰고 독일제국이 무너졌습니다. 불행히도 그 후에도 식량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연합국의 통제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발전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때문에 바이마르 공화국은 추락한 GDP를 회복하지 못했고 인플레이션은 계속 증가했습니다.

오스트리아 국가은행
오스트리아 국가은행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된 이후 각국의 운명은 달랐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은 대규모 공업지대를 차지해 전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했지만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농경지 밖에 없어 경제성장이 느렸습니다. 머저르 왕국은 보유한 영토의 1/3을 빼앗기고 산업기반이 낮은 영역만 남아 과거보다 경제적으로 빈곤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후손답게 빈Wien에 동유럽을 책임지는 은행을 보유해 금융업으로 다시 성장했습니다.

전후 콘스탄티니예
전후 콘스탄티니예

불가리아 차르국은 전쟁 전부터 가난한 국가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고 항구를 상실하는 것 외에 경제적 충격이 적었고 튀르키예 공화국은 전쟁에서 승리해 영토를 얻었지만 경제적 손실이 막대했습니다. 때문에 튀르키예 공화국은 전후 갈등을 최대한 피하며 자국 산업 경쟁력을 강화시키는데 집중했습니다.


  • 남아메리카의 피해
1918년 아르헨티나 봉기
1918년 아르헨티나 봉기

제1차 세계대전은 참전국 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의 경제에 피해를 입혔습니다.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어 남아메리카는 중계무역의 이점을 활용할 수 없게 되었고 남아메리카의 수출국이 대영제국과 독일제국이었습니다. 때문에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남아메리카는 독일제국이라는 시장을 잃었고 1915년에는 독일제국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실시해 대영제국으로 가는 남아메리카 상선을 격침하며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혔습니다. 결국 남아메리카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고 미국이라는 시장에 의존해 미국에 종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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