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6년 벨푸어 선언
대영제국의 정치인 중 친유대 인사였던 아서 제임스 벨푸어는 유대인 국가 건립을 꾸준히 주장했습니다. 다른 정치인들이 대영제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아랍인 영토로 주장했을 때 아서 제임스 벨푸어는 끊임없이 대영제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자치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여러 유력한 유대인 가문에 도움을 청했고 그들의 자본력을 앞세워 반대인사들의 의견을 묵살하며 유대인 국가 건립을 준비했습니다.
1926년 11월 15일 아서 제임스 벨푸어는 제국의회에서 벨푸어 선언을 선포하며 대영제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자치령으로 선포했습니다. 허나 대영제국의 대영제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지나치게 온건해 다른 나라들의 의문을 샀습니다. 아서 제임스 벨푸어는 유대인과 기독교 아랍인, 무슬림 아랍인으로 구성된 대영제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유대인만을 위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정계에 앉히고 그들이 대영제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마음껏 통치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간섭 역시 최소화해 사실상 독립정부나 마찬가지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영국군을 보내 대영제국 위임옫치령 팔레스타인에서 현지인을 무차별 탄압하고 유대인 이주를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1926년 벨푸어 선언으로 자치령의 개념을 다시 정의했습니다. 이로 자치령은 외교권까지 얻는 더 자율적인 체제가 되었습니다.
- 웨스트민스터 헌장
1926년 벨푸어 선언으로 지치령 정의가 달라지자 자치령은 대영제국 정부에게 자신들도 빨리 적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이미 제1차 세계대전에 대영제국의 더 큰 자치권 보장을 믿고 참전했고 전후 더 큰 자치권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대영제국은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한 법안을 준비했습니다. 1931년 12월 11일 제국의회는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발표했습니다. 대영제국은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자치령에게 외교권을 제공했습니다. 대신 대영제국 왕실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고 대영제국의 군사활동을 지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자치령에게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채택할 권리를 제공해 사정에 따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제공했습니다. 자치령들은 이에 만족하며 더 자율적인 정부를 준비했습니다.
- 각 자치령의 웨스트민스터 헌장 발효
반영 감정이 심했던 아일랜드 자유국은 웨스트민스터 헌장은 필요없다며 항의했습니다. 아일랜드 자유국은 이미 1922년 독립을 선언했고 대영제국은 아일랜드 자유국의 독립을 불허했지만 아일랜드 무장 투쟁을 두려워해 실질적으로 독립을 허용하며 아일랜드 자유국 내부 사정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아일랜드 자유국은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북아일랜드의 친영세력은 웨스트민스터 헌장에 관심을 가졌고 이를 발동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아일랜드 자유국은 무시로 일관했습니다.
캐나다 자치령은 웨스트민스터 헌장 발표 직후 대영제국-북법안을 통과해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발효했습니다. 캐나다 자치령은 외교권을 얻었고 뉴펀들랜드 자치령에게 캐나다 자치령의 일원이 되기를 권고했지만 뉴펀들랜드 자치령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뉴펀들랜드 자치령은 이미 대공황 여파로 피폐해졌고 1934년 자치령이 아닌 대영제국 식민지를 자처했습니다. 그래서 북아메리카에는 캐나다 자치령과 대영제국 식민지가 공존했습니다.
홀로 아프리카에서 자치령이었던 남아프리카 연방은 대영제국의 지원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고 아프리카 대륙 특성상 대영제국 본국과 문화가 매우 달라 독립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남아프리카 연방은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환영했습니다. 남아프리카 연방은 1934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발효해 사실상 독립국으로 분리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연방도 1937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부분 발효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은 대영제국 본국과 문화가 달랐지만 척박한 오스트레일리아 영토 특성 상 자립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은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부분 채택하며 독립을 천천히 준비했습니다.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홀로 있는 뉴질랜드 자치령은 대영제국에게 의존했기 때문에 1930년대 동안 웨스트민스터 헌장을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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