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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공화국6

[더 큰 전쟁으로: 오스트리아 병합] 게르만 통일 독일국과 오스트리아 연방의 갈등 게르만 민족주의자들의 오랜 논쟁은 같은 게르만 국가인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통합해야하는가였습니다. 1866년에는 그 해답으로 통합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들고 일어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발발하고 북독일연방과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양강분열했습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 된 바이마르 공화국과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힘을 합쳐 다시 강성한 게르만국가로 성장하기를 원했습니다.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국명을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으로 정한 이유는 위의 이유였습니다. 허나 승전국들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바이마르 공화국과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 통합을 금지했습니다. 그렇게 둘은 통일하지 못했고 그 사이 두 국가에 새 독재자가 등장했습니다.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 2022. 12. 15.
[더 큰 전쟁으로: 초인플레이션] 전쟁 배상금의 늪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쟁 배상금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제국은 전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화폐 체계였던 금본위제를 중단하고 무작위로 차입을 사들였습니다. 이들의 계획은 독일제국 신민에게서 세금을 걷어들이는 대신 무작위로 빚을 내 전쟁자금을 마련하고 전쟁에서 승전해 연합국으로부터 전쟁 배상금을 받아 그 배상금으로 빚을 갚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제국은 막대한 빚을 빌려 국가 신용도를 떨어뜨렸고 미국 달러에 대한 독일 마르크 환율은 달러당 4.2에서 7.9로 꾸준히 추락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독일제국은 미국원정군의 공격으로 대전쟁에서 패배했고 1919년 베르사유 조약 결과 바이마르 공화국이 배상금을 납부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어 1921년 1월 배상위원회가 열려 바이마르 공화국이 승전국에 전쟁 .. 2022. 12. 6.
[남은 상처: 돌아온 자] 생환자의 상처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전례없는 규모의 전쟁은 역사적인 전투를 남겼습니다. 대규모 전투로 한번에 수많은 인력과 물자가 소모되었고 그럼에도 참전국들은 끊임없이 병력과 물자를 소모했습니다. 양측은 생각보다 더 오래, 더 많은 것을 소모했고 소모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18년 미국원정군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압도적인 소모전을 벌였고 팽팽한 균영은 연합국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원정군 참전 후 1년도 되지 않아 전쟁이 끝났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생존한 병사들은 고향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병사들은 더이상 전쟁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셸 쇼크Shell Shock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포탄의 기술은 이전보다 발전했고 파괴 규모가 더 커졌습.. 2022. 11. 2.
[인민전쟁: 전쟁 후 사회] 많은 것이 바뀌다 여성투표권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참전국의 모든 사람이 전쟁에 동원되었습니다. 남성은 징집되어 전쟁터로 갔고 여성은 사회에서 남성의 빈자리를 채우고 간호사를 자원해 전쟁터의 부상병들을 치료했습니다. 모든 것이 총동원 되던 전쟁 와중 여성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참전국의 사회는 엉망이 되었을 것이고 여성은 사회를 지탱하는 엄청난 수고를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참전국의 지도자들은 여성의 사회 참여 노력을 인정해 여성들에게 보상을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선거권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큰 권리였습니다. 대전쟁 전 뉴질랜드와 핀란드 대공국이 여성에게 선거권을 주었지만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 미국은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전쟁 이후 여성들의 사회 활동 능력을 확인한 지도자들은 여.. 2022. 5. 19.
[제1차 세계대전 종료: 베르샤유 회담] 종전 후 서유럽의 질서 https://youtu.be/eL1_WxTvnuw 바이마르 공화국 1918년 11월 독일제국이 새로 출범한 임시정부는 곧 공화국을 선포했습니다. 새 공화국은 국명을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제정하고 휴전협정 후 연합국과 최종 협정을 기다렸습니다. 동시에 바이마르 공화국 내부에서 일어난 공산주의 혁명 등 정치 소요사태를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내부 문제로 혼란스러울 때 연합국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재기 불능으로 만들기 위해 벨기에와 프랑스에 주둔한 연합군이 1918년 12월 1일 룩셈부르크와 독일 국경을 넘어 라인란트Rhineland로 진격해 라인란트Rhineland 서쪽을 장악하고 대영제국 왕립 해군은 독일 연안에 기뢰를 더 많이 부살해 독일의 잠수함이 활동할 수 있는 원천을 차단했습니다. 바.. 2022. 2. 9.
[서부전선: 11월 혁명] 독일제국의 붕괴 기나긴 전쟁 카이저 빌헬름 2세가 즉위해 통치를 펼치는 1900년대만 해도 독일제국 신민들은 빌헬름 2세에게 열광하며 그를 신뢰했습니다. 빌헬름 2세의 신민을 위한 각종 지원정책과 세계 최강대국으로 등극하기 위한 전함 건함은 독일제국 신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고 세계 최강대국의 일원이 되고 싶은 신민들의 욕구를 채워줬습니다. 그리고 빌헬름 2세의 세계정책은 주변국들을 자극해 결국 1914년 독일제국은 프랑스 제3공화국과 러시아 제국과의 양면전을 치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일제국 신민들은 전쟁을 낙관하며 독일제국 정부를 신뢰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대영제국의 해상봉쇄로 독일제국의 경제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독일제국의 카이저 빌헬름 2세는 거의 모든 기혼가능 남성들을 전쟁터로 보냈고 .. 2022.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