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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구/서부전선

[서부전선: 파리 대포] 독일 영내에서 파리를 공격하다

by 롱카이. 2022. 2. 7.
  • 새로운 전략폭격 수단의 등장

체펠린 비행선 프랑스 파리 폭격
체펠린 비행선의 파리 폭격

독일제국은 서부전선 후방 민간인 지역을 공격해 적 민간인들을 교란시켜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고 했습니다. 독일제국은 총력전인 제1차 세계대전은 후방 민간인들이 동요하고 군부가 전쟁의지를 상실하는 순간 전쟁은 끝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거의 모든 국가들이 공유한 전쟁 작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제국은 적의 후방을 교란시켜 참전의지를 상실하게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독일제국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물체를 만들어 지상과 해상이 아닌 상공으로 적 후방으로 가 교란하는 것을 노렸습니다. 이에 독일제국은 체펠린 비행선과 고타 폭격기를 개발해 대영제국의 런던London과 프랑스 제3공화국의 파리Paris를 폭격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제국은 심리적 타격에 성공했습니다. 허나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하늘 위에 나타난 괴물을 공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들은 등화관제를 실시해 밤에는 도시의 불을 꺼 도시를 암흑 속에 숨겼고 확성기와 대공포, 야간 조명과 초창기 레이더를 설치하며 독일제국의 야간 폭격에 대비했습니다. 그리고 전투기들을 개발해 체펠린 비행선과 고타 폭격기를 위협했습니다. 이에 독일제국은 전략폭격 수단, 특히 체펠린 비행선을 상실해갔습니다. 그래서 독일제국 군부는 또다른 전략폭격 수단을 찾아야 했습니다.

독일제국 군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리Paris와 런던London을 공격할 수단을 찾아나섰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항공기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거나 혹은 또다른 방법으로라도 공격할 수단만 있다면 독일제국 군부는 무엇이든 허용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제국 군부는 공격수단을 찾아나섰고 기발한 무기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독일제국 영토 내에서 공격하는 장거리 대포였습니다.



  • 사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대포

독일제국 파리 대포
파리 대포

독일제국의 병기제작을 담당한 크루프 사는 새로운 대포를 연구했습니다. 크루프 사는 신형 대포를 발사해 성능을 시험했는데 시험 과정에서 실수로 고각 발사를 해버렸습니다. 허나 실수로 발사된 대포는 사거리가 예상보다 매우 길었고 크루프 사는 예상 외의 성과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크루프 사는 고각 발사에 대해 연구했고 포탄이 성층권까지 상승해 성층권의 적은 공기로 공기저항을 적게 받은 상태로 더 멀리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공기저항이 적어져 속도를 덜 상실하며 지상 위보다 더 멀리 이동할 수 있었고 일반 야포보다 압도적으로 더 먼 거리를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크루프 사는 신형 대포를 독일제국 군부에게 소개했습니다. 독일제국 군부는 신형 대포에 감격하며 비약적인 사거리를 자랑하는 대포로 프랑스 파리Paris를 포격하기로 했습니다.


  • 파리를 포격하다

파리 대포의 포격
발사되는 파리 대포

독일제국 군부는 신형 대포를 열차에 설치해 열차포로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철도로 대포를 수송해 발사하고 철도로 후퇴해 프랑스군이 대포 사격 장소를 가늠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독일군은 이 대포를 파리 대포라 불렀습니다. 1918년 3월 23일 토요일 독일제국은 프랑스 국경지역에 파리 대포를 설치해 발포했습니다. 파리 대포의 포탄은 100km 이상을 날아가 프랑스 파리paris에 투하되었습니다. 7시간 동안 포격 공격을 받은 파리Paris는 독일군의 공격이라 생각했지만 포탄 파편을 조사한 경과 독일제국군의 야포 포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허나 어디서 날라오는지 몰랐고 항공 감시병에게 독일제국군 항공기가 파리Paris에 출몰했는지 물었지만 감시병은 항공기를 보지못했다고 보고했습니다. 프랑스군은 파리Paris로 날아간 포탄의 출처를 모른 체 우왕좌왕했습니다. 그 사이 독일군은 3월부터 8월까지 파리 대포로 프랑스 파리Paris를 공격했습니다.

파리 대포 미니어처
파리 대포 모형

독일제국 군부는 천문학자를 동원해가며 사거리를 계산해 파리Paris를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유도장치가 없던 기술의 한계로 명중률은 좋지 못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제국은 독일제국 영토에서 프랑스 파리Paris를 직접 포격하며 안전을 보장받고 프랑스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일제국은 프랑스 제3공화국에게 심리전을 걸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프랑스는 항공 정찰로 겨우 독일군이 열차포로 파리Paris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독일군 내에서 가해진 공격이었기에 프랑스군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파리Paris는 파리 대포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파리Paris 시민들은 파리를 떠나 남쪽으로 피신하기도 했습니다. 파리 대포는 1918년 8월 초까지 파리Paris를 위협했지만 루덴도르프 공세가 실패로 끝나고 연합군들이 반격하기 시작하자 해체해 증거를 인멸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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