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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구/서부전선

[서부전선: 캉브레 전투] 전술의 완성

by 롱카이. 2022. 2. 7.
  • 믿을 수 없는 철덩어리

영국원정군 마크 전차 컬러사진
영국원정군 마크 육상전함

대영제국이 무인지대 돌파를 위해 개발한 육상전함 마크 전차는 기대 이하의 성능을 보여줬습니다. 마크 전차는 솜 전투와 제3차 이프르 전투에 투입되었지만 상당수의 전차가 무거운 무게와 빈약한 케터필러(무한궤도)로 무인지대 구덩이에 빠지고 케터필러가 탈선해 기동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최초로 개발된 장갑전차인 만큼 엔진과 변속기 기술이 미흡해 엔진이 퍼져 멀쩡히 가던 중 작동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엔진을 전차 한가운데에 놓은 설계는 전차 승무원들을 열기와 매연, 소음으로 고통받게 했습니다. 더불어 전차는 총탄을 막아냈지만 기관총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독일군이 야포를 동원해 조준사격을 가하자 전차는 파괴되었습니다.

무인지대에 버려진 마크 전차
무인지대에서 버려진 마크 전차

결국 마크 전차는 움직이는 거대한 철덩이에 불과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마크 전차는 그 크기 때문에 제작비용이 컸고 제작한 육상전함들도 너무 거대하고 무거워 철도로만 수송이 가능했고 전쟁터로 필요한 개수가 동원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투입된 육상전함들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무인지대에 처박힌 채 멈췄습니다. 그리고 여러번 마크 전차를 상대한 독일군은 더이상 전차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마크 전차는 영국인들에게 실패작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처음 마크 전차가 전장에 투입될 때 수많은 영국인들이 참호를 돌파할 결전병기가 등장했다고 환호했지만 예상보다 심각한 성능에 사람들은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전차의 형편없는 성능과 내부의 열약한 환경 때문에 전차 승무원들은 전차를 불신했고 전차 탑승을 꺼려했습니다.


  • 육상전함에게 찾아온 기회

존 풀러 영국원정군 지휘관
존 풀러 영국원정군 육상전함부대 지휘관

허나 전차의 잠재성을 알아본 인물이 있었습니다. 영국원정군 전차부대 지휘관 존 풀러였습니다. 그는 제3차 이프르 전투에서 육상전함이 진창인 곳에서 이동하다 빠져 기동불능이 된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육상전함이 단단한 지면에서 활동한다면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육상전함이 활동할 곳으로 캉브레Cambrai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전략을 세운 뒤 줄리안 빙 직속상관에게 보고했습니다. 줄리안 빙은 작전이 성공할 거라 생각하고 계획을 정리해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에게 보고했습니다.

줄리안 빙 장군 마크 전차
줄리안 빙 장군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후방에서 솜 전투와 제3차 이프르 전투 결과를 보고받았기 때문에 기록 속 육상전함의 형편없는 전과에 실망했습니다. 허나 그는 육상전함이 왜 전과를 올리지 못했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줄리안 빙의 계획안을 무시하고 제3차 이프르 공세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11월 중순 진창으로 더이상 제3차 이프르Ypres 공세가 불가능해지나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캉브레Cambrai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캉브레Cambrai는 독일군 지크프리트 선(힌덴부르크 선)의 일부로 만일 돌파에 성공한다면 지크프리트 선을 처음으로 돌파하는 업적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독일군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난공불락 방어선을 돌파한다는 상징성을 가져 대영제국의 사기를 올리고 독일제국에게 충격을 안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줄리안 빙이 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승인했습니다.

캉브레 전투 기차 위의 마크 전차
캉브레로 동원된 육상전함들

줄리안 빙은 바로 공격준비를 했습니다. 존 풀러는 육상전함을 적 참호 기습 돌파해 교란한 뒤 철수하려는 작전을 세웠지만 줄리안 빙은 더 나이가 육상전함을 선봉으로 내세워 참호를 대규모 돌파하며 독일군 후방으로 밀고들어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줄리안 빙은 육상전함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단점을 보완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가용가능한 모든 육상전함을 집결했고 야포와 전투기를 소집했습니다. 그 와중에 11월 중후반에 폭우가 내린다는 예보가 발령되며 수많은 영국원정군 병사들과 지휘관이 제3차 이프르Ypres 전투의 악몽을 떠올리며 동요했지만 줄리안 빙은 흔들리지 않고 준비를 이어갔습니다.


  • 대규모 합동작전

캉브레 전투 참호를 돌파하는 마크 전차
캉브레 전투

1917년 11월 20일 캉브레Cambrai 날씨는 화창했고 줄리안 빙 야전사령관은 공격을 명령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사전포격없이 육상전함 부대를 총동원해 무인지대를 돌파했습니다. 영국 왕립 항공대는 근접 지원으로 독일군 방어선을 공격했고 영국원정대 마크 전차들은 쾌속 진격하며 독일군 참호를 돌파했습니다. 마크 전차들은 독일군 참호에 다다르면 전차 위에 설치한 나무더미를 떨어뜨려 참호를 메꿔 길을 만들고 다음 참호선으로 돌격했습니다. 전차가 돌격하는 동안 보병들은 전차 후방에사 암폐하며 진격했고 독일군 참호 안으로 들어가 독일군 병사들을 상대했습니다. 독일군은 사전 예고 없이 기습 공격한 영국원정군의 공세에 대비하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육상전함을 앞세운 영국원정군은 공격구간 전 구간을 돌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3시간만에 3km를 돌파했습니다. 이는 서부전선 참호선 이후로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멀리 돌파한 대성공이었습니다. 이 예상치 못한 대성공으로 영국원정군과 대영제국 전체는 사기가 올랐고 승리에 도취되었습니다. 이날 영국 본토 모든 곳의 교회에서 종이 울리며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 독일군의 반격

마을로 진입한 마크 전차
마크 육상전함

하지만 줄리안 빙은 충분한 영국원정군 보병사단을 소집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공세 첫날 큰 활약을 하던 육상전함들은 일부는 독일군이 야포나 급조한 대형 수류탄 등 다양한 수단으로 공격해 파괴되고 나머지 대부분은 기계적 결함으로 더이상 운용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원정군은 독일군 방어선들을 점령했지만 인원과 병기 부족으로 잘 수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성과에 흥분한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공세를 지속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이 먼저 선수를 쳤습니다.

독일제국 슈트름트루펜
돌격작전에 따라 이동하는 독일군 슈트름투르펜

1917년 11월 20일 순식간에 지크푸르트 선에서 밀려난 독일군은 처음 보는 작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캉브레Cambrai를 철수를 고려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은 영국원정군 전차의 약점을 알았고 지크푸르트 선을 지키기 위해 독일군 사령관은 회의 끝에 캉브레Cambrai를 지키고 전선 회복에 나서기로 결정했습니다. 바로 다음날 독일군은 야포 포화사격으로 영국원정군이 점령한 참호선을 포격하고 바로 보병대를 투입해 영국원정군이 점령한 참호선을 빠르게 수복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병력이 부족해 수많은 독일군을 상대하지 못하고 후퇴했습니다. 독일군은 빠르게 캉브레Cambrai 전체를 수복했습니다. 때문에 전후 참호선 변화는 없었습니다.


  • 전투가 양측에게 준 희망

캉브레 전투
제1차 캉브레 전투에서 처음 실전적용한 합동작전

제1차 캉브레Cambrai 전투는 영국원정군과 독일군 양측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이 전투에서 처음으로 육상전함의 제성능을 발휘했고 전차와 보병, 항공기의 합동작전으로 참호를 단숨에 돌파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작전을 세운 줄리안 빙은 비록 캉브레Cambrai 돌파에는 실패했지만 첫날 대성과를 인정받아 유명인사가 되어 명예를 얻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참호전을 종식할 전략을 발견한 것에 흥분했고 끝이 보이지 않던 대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찼습니다.

독일제국 슈트름트루펜 그림
독일군 슈트름투르펜

독일제국 역시 이 전투에서 반격작전을 하며 슈투름룸트루펜의 돌격작전을 완성했습니다. 동부전선에서 러시아군과 싸우며 정립해간 슈트름트루펜 돌격작전은 캉브레Cambrai전투에서 성공을 거뒀고 독일군은 다음 해 봄에 있을 대공세의 핵심작전으로 슈트름트루펜 돌격잘전을 채택했습니다. 그리고 1917년 동부전선에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면서 독일군은 동부전선의 주력부대를 서부전선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독일군 사령부는 대량의 슈트름투르펜을 서부전선에 배치해 슈트름투르펜을 주력으로 연합군 참호를 대거 돌파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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