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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구/서부전선

[서부전선: 미국원정군의 참전] 미군이 온다

by 롱카이. 2022. 2. 7.
  • 미합중국의 참전

제1차 세계대전 미국 대서양 수송로
미국 원정군의 이동로

1917년 1월 치머만 사건이 미국을 발칵 뒤집은 이후 미국 의회는 표결을 통해 1917년 4월 6일 독일제국에게 선전포고했습니다. 그 후 일단 미국의 소수 병력을 모아 서부전선으로 보냈지만 그 병력은 적은 병력으로 연합군에게 실질 도움을 주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자원병으로 병력을 소집해 1918년 5월 대규모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파견하기 위해서는 대서양을 건너야 했는데 대서양에는 독일제국 해군 잠수함이 숨어있었습니다. 독일제국 해군 잠수함은 대서양을 건너는 미국 선박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할 것이 분명했고 미군의 피해가 생길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미군을 최대한 안전하게 대서양을 횡단시킬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미국은 그 방법으로 호송 작전을 세웠습니다.


  • 대서양 호송 작전

제1차 세계대전 대서양 호송 작전
대서양 호송 작전

미국은 미국원정군이 탑승한 선박을 안전하게 서부전선까지 수송하기 위해 대서양 호송 작전을 세웠습니다. 대서양 호송작전은 미국원정군을 태운 배가 한 가운데에 있고 그 옆으로 구축함과 각종 무장 호위함을 배치해 무장 호위함들이 독일제국 해군 잠수함에 대항해 대잠수함 작전을 펼치며 수송선을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호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럴 경우 독일제국 해군 잠수함은 호송대 내부에 있는 수송선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잠수함을 잡는 임무를 부여받은 호위함대의 감시망을 피해 공격하거나 호위함대와 정면승부를 벌어야 했습니다. 이는 어뢰와 포가 한정적인 독일제국 해군 잠수함에게는 부담스러운 작전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대서양 상선 수송 작전
상선 수송 모습

이 호송작전은 대영제국 왕립 해군이 유럽의 중립국 수송선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 도입된 이후로 대영제국 왕립 해군을 중심으로 발전하던 작전이었습니다. 미 해군 역시 대영제국 왕립 해군의 작전을 그대로 수용해 호송작전을 시행했습니다. 이는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직접 명령한 것으로 미국원정군을 실은 수송함은 서로 가까이 붙어 무장하고 그 주변을 구축함 함대가 호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미 해군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구축함대를 소집해 미국원정군이 탑승한 수송선을 호위했습니다. 이는 대영제국 왕립 해군의 방식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고 독일제국 해군 잠수함은 적게나마 대영제국 왕립 해군의 호송대를 뚫어 중앙의 수송선을 격침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 해군 대서양 호송대는 대영제국 해군 호송대와 분명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 물량으로 승부를 본 미국 대서양 호송대

제1차 세계대전 대서양을 건너는 미국 상선
대서양을 건너는 미국 호송대

그것은 대영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막대한 물량이었습니다. 미 해군은 1918년 280만명의 병력을 서부전선에 보내기로 결정하고 수많은 배를 건조했습니다. 미국은 280만명의 미국원정군을 하루 빨리 보내기 위해 수송선을 미친듯이 만들었고 수송선을 호위할 구축함도 더 많이 건조해 거대한 호송대를 형성했습니다. 미국의 작전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한번에 엄청난 양의 배를 소집해 거대한 호송대를 만들어 대서양을 건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면 독일제국 해군 잠수함의 공격으로 몇척의 배를 잃더라도 엄청나게 많은 배들이 살아남아 서부전선에 한번에 많은 미국원정군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의 작전은 막대한 물량으로 승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독일제국 해군 잠수함은 몇척의 배를 공격했지만 너무나도 많은 배를 일일이 공격하는데 실패하고 포기했습니다. 때문에 수많은 미국원정군과 무기, 물자, 식량이 서부전선 연합군 기지에 하루마다 공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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