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제국의 위협
러시아 제국은 1915년 1월과 2월 갈리치아Galizien과 동프로이센Ostpreußen으로 진격하며 동맹국을 압박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동맹국의 공격을 막아내고 오히려 역습하며 동맹국이 러시아 제국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1군이 남아있는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의 존재는 러시아 제국에게 성가신 것이었습니다. 동맹국은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의 동맹국 군대를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 제국을 침공하기 좋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러시아군은 1914년 9월 16일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를 포위공격했지만 요새 함락에 실패했습니다. 허나 요새를 방치한다면 동맹국에게 좋은 명분을 주기 때문에 러시아 제국은 요새의 존재를 빨리 지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1915년 초 러시아 제국은 유리한 상황일 때 제국을 위협하는 변수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 열약한 요새 생활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 안의 상황은 러시아군의 포위로 열약했습니다. 첫번째 요새 공방전으로 요새의 많은 것이 파괴되었고 부상병이 속출했습니다.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1군은 무료 배급을 전제로 요새도시에 사는 여성들 중 간호사로 활동할 인력을 선발했습니다. 간호사 일에 지원한 여성들은 주로 빈민가 여성들로 하루 식량을 얻기 위해 간호사에 지원했습니다. 의료 물자가 부족한 야전 병원은 환경이 열역했고 야전 병원의 병사들과 간호사들은 각종 질병으로 고생했습니다. 더불어 콜레라도 요새 도시 안에 유행하면서 도시 안 사람들은 콜레라를 비롯한 각종 질병에 노출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량은 부족해졌고 러시아군이 요새 도시 주변에 나타나면 병사들과 도시 시민들은 요새 안에 갇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춥고 혹독한 1915년 겨울 러시아군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1군은 요새 안에서 곧 있을 전투를 준비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전서구와 항공 우편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부에게 전보를 보냈지만 일부는 러시아군이 가로채 내용을 파악했습니다.
- 제2차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 공방전
1915년 2월 러시아군은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러시아군은 요새를 공격하기위해 야포를 동원했습니다. 러시아군은 요새를 약화시키기 위해 며칠간 야포 사격을 가했습니다. 러시아군의 포격에 요새는 점차 무너져갔고 1915년 3월 13일 러시아군은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의 북부가 약해졌다고 판단하고 병력을 요새 북부로 보내 요새를 공격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1군은 저항했지만 러시아군은 장기간 포격으로 요새의 거의 모든 것을 파괴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1군은 병기와 지원품, 방어물이 없는 열약한 환경에서 방어전을 치뤄야 했습니다.
러시아군은 요새 도시 안으로 진격해 요새 북부 마을 일부를 점령했습니다. 이에 1915년 3월 1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1군은 러시아군을 요새도시 외부로 몰아내려는 시도를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러시아군의 반격에 후퇴해야 했습니다. 러시아군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쫒으며 요새 도시 전체를 점령해갔고 퇴로가 없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1군은 1915년 3월 22일 마지막 병력도 러시아군에게 포위되어 항복했습니다. 결국 1915년 3월 22일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는 함락되면서 러시아 제국 내에 위협이 사라졌습니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치명적 손실
러시아 제국 내에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가 존재해 러시아군은 병력의 일부를 차출해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 도시를 담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군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공격하는데 조금의 제약을 받았습니다. 허나 러시아군은 수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 공방전은 큰 손실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약한 국가 기반력에 세르비아 왕국과 러시아 제국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전선 방비와 공격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더불어 언어가 달라 병사들끼리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지휘체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대의 결집력은 약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부는 병사들을 모집하고 유지하는 것 자체에 힘을 들여야 했습니다.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부는 잘 훈련된 병력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 도시에 포위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1군 13만 8천명 병력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양호한 사단이었기 때문에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 함락으로 제1군 병력을 상실했다는 것은 제국에게 치명적인 손실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부는 제2차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 공방전이 발발하기 전 1914년 프세미실Перемышля 요새 수복 작전을 시행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그 이후에도 그들을 지원할 여력이 되지 않아 요새 안에 갇힌 병사들을 돕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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