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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구/동부전선

[동부전선: 폴란드 국경지대 점령] 무주지대 점령

by 롱카이. 2022. 2. 15.
  • 선전포고와 제국의 전쟁

제1차 세계대전 7월 위기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할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도시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 흑수단에게 암살당한 이후 한달 뒤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 왕국에게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게 선전포고 하기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 총참모장은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사건을 세르비아 왕국을 점령해 제국의 영역을 확장할 기회라 보았습니다. 헝가리 총리 이츠반 티사는 전쟁을 반대했고 이에 오스트리아 총리 카를 폰 스퇴르크는 전쟁 찬성파와 반대파의 의견을 정리하고 독일제국의 의견을 듣기 위해 알렉산드르 폰 효요스 백작을 독일제국의 카이저 빌헬름 2세에게 파견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단독으로 세르비아 왕국과 전쟁을 벌일 시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우방인 독일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지지하는지 확인하고 싶어했습니다. 독일제국의 카이저 빌헬름 2세는 전쟁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왕국 간의 국지전으로 보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제국의 관료들은 이 전쟁은 국지전이 아닌 유럽 전체에 벌어지는 대전쟁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독일제국의 카이저가 제국을 지지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했습니다. 그 선전포고문은 유럽으로 전해졌고 러시아 제국 역시 선전포고문을 받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진격
룩셈부르크로 진군하는 독일군

러시아 제국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절대자 차르 니콜라이 2세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니콜라이 2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독일제국이 동맹국임을 잘 알았고 세르비아 왕국을 돕기 위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전쟁을 벌이면 독일제국과도 전쟁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독일제국과 전쟁을 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의 차르 니콜라이 2세와 독일제국의 카이저 빌헬름 2세는 사촌이었고 니콜라이 2세의 아내는 독일 출신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평소 신임하던 그리고리 라스푸틴은 전쟁을 반대했고 그보다 라스푸틴을 더 신뢰하던 그의 아내는 그에게 전쟁은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을 지원하지 않으면 슬라브 민족국가인 세르비아 왕국을 돕는다는 범슬라브주의를 스스로 어기는 것이 되고 러시아 제국은 발칸반도의 지배자 자리를 잃고 범슬라브주의와 동방 정교회의 수호자라는 자리를 스스로 걷어차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니콜라이 2세는 1914년 7월 30일 총동원령을 내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이에 독일제국의 카이저 빌헬름 2세는 급히 편지를 보내 러시아 제국이 총동원령을 내리면 카이저마저 독일제국의 반러 감정과 전쟁 참전 의지를 막을 수 없다며 총동원령을 취소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그는 총동원령을 취소했지만 대신들의 거센 반발로 총동원령을 다시 내려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이 전쟁 준비를 한다는 소식은 독일제국에게도 전해졌고 독일제국은 1914년 8월 1일 러시아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했으며 독일제국의 전쟁장관들은 슐리펜 계획을 발동해 프랑스 제3공화국을 빨리 굴복시켜야 한다고 카이저를 압박했습니다. 결국 카이저는 슐리펜 계획 발동을 승인했고 1914년 8월 3일 독일군이 서부전선으로 진격하며 서부전선이 발발했습니다.


  • 폴란드 입헌왕국

러시아 제국령 폴란드 입헌왕국
폴란드 입헌왕국 깃발

1815년 등장한 폴란드 입헌왕국은 빈 체제로 탄생한 폴란드 국가로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으로 폴란드 지역을 3등분해 러시아 제국이 영향력을 행사한 지역이었습니다. 폴란드 입헌왕국은 러시아 제국과 동군연합한 국가였지만 폴란드 입헌왕국은 러시아 제국의 국력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폴란드 입헌왕국은 민족주의를 받아들여 폴란드인의 민족국가 건설을 원했고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완전한 분리 독립을 원했습니다. 이에 러시아 제국은 폴란드 입헌왕국을 침공해 1867년 폴란드 입헌왕국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러시아령 폴란드로 만들었습니다. 폴란드 입헌왕국은 기존에 있던 자치권의 상당수를 상실한 체 러시아 제국에게 동화되어갔습니다. 하지만 폴란드 민족국가 건설을 원하는 폴란드인들의 열기는 러시아 제국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독일제국 동맹국 군대와 전쟁을 벌여야 했던 러시아 제국에게 폴란드Польша 전선은 제국의 돌출부로 동맹국 사이를 가르고 동맹국을 공격할 수 있는 전략적으로 좋은 위치의 전선이었습니다. 독일제국 역시 폴란드Польша의 입지를 잘 알았기 때문에 동부전선의 목표로 폴란드Польша 전선 제거를 택했습니다. 1914년 7월 30일 러시아 제국의 차르 니콜라이 2세가 제국에 총동원을 내렸지만 러시아 제국은 폴란드Польша에서부터 시베리아Сибирь까지 광활한 영토 곳곳에 총동원령을 내리느라 병력 소집에 시간을 빼앗겼습니다. 때문에 동맹국과 전쟁을 벌여야 할 폴란드Польша 전선에 충분한 병력들이 집결되지 않았습니다. 독일제국은 이를 기회라 보고 폴란드Польша 지역에 선수를 쳤습니다.


  • 칼리시Kalisz 도심 파괴

제1차 세계대전 폴란드 지역
러시아령 폴란드 지도

러시아령 폴란드의 칼리시Kalisz현은 독일제국의 슐레지엔Schlesien과 포젠Posen에 인접한 곳으로 칼리시Kalisz는 칼리시Kalisz 현의 수도였습니다. 때문에 칼리시Kalisz는 교통이 발달했고 러시아 제국의 철도선이 연결된 곳이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1914년 8월 1일 독일제국의 선전포고를 받자 독일제국의 포젠Posen을 침공하기 위해 칼리시Kalisz에 철도로 무기들을 수송해 칼리시Kalisz 도시 창고에 보관했고 수많은 철도 창고들이 칼리시Kalisz에 있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칼리슈Kalisz에 많은 무기들을 보관했지만 러시아군을 아직 소집하지 못해 칼리시Kalisz는 병력이 없는 빈 곳이 되었습니다. 독일제국은 이를 노렸습니다. 독일제국은 러시아군이 포젠Posen으로 침공하지 못하게 먼저 칼리시Kalisz를 공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동부전선 칼라시 파괴
파괴된 칼리시

1914년 8월 3일 독일군은 병력을 모아 야밤에 칼리시Kalisz를 기습공격했습니다. 독일군은 시내로 들어가 러시아군 보초병을 사살하고 도시를 점령해 출판사의 문을 강제로 닫게 했습니다. 그 뒤 독일군은 야포 사격과 기관총 사격으로 도시를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독일군은 8월 22일까지 칼리시Kalisz 도시를 완전히 파괴한 뒤 독일제국 영토로 후퇴했습니다. 칼리시Kalisz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고 러시아군은 칼리시Kalisz에 보관한 병기를 잃고 철도선마저 파괴되어 포젠Posen 방면 공격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독일군은 도시를 파괴해 러시아군의 진군로 중 하나를 제거했습니다.


  • 쳉스토호바Ченстохова 점령

제1차 세계대전 쳉스트호바
쳉스트호바 도시

쳉스토호바Ченстохова는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인접한 러시아 제국의 도시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 러시아군은 쳉스토호바Ченстохова에 집결해있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 군부는 작전을 위해 쳉스토호바Ченстохова의 러시아군을 불렀고 1914년 8월 3일 러시아군은 군부의 명령에 따라 도시를 떠났습니다. 도시는 러시아군이 없는 상태가 되었고 같은 날 독일군은 항공정찰로 러시아군이 후퇴했음을 파악했습니다. 독일군은 곧바로 쳉스토호바Ченстохова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1914년 8월 6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러시아 제국에게 선전포고했고 폴란드 의용군은 병력을 소집해 쳉스토호바Ченстохова에 집결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대로 편성되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로 향했습니다. 동맹국 군대가 쳉스토호바Ченстохова를 점령했지만 러시아 제국은 군대를 편성하느라 동맹국의 쳉스토호바Ченстохова 점령을 신경쓰지 못했습니다. 허나 러시아군은 곧 독일제국의 심장을 공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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