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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구/동부전선

[동부전선: 폴란드 왕국] 폴란드 민족 국가의 불완전한 탄생

by 롱카이. 2022. 2. 23.
  • 폴란드 의용군의 활약

제1차 세계대전 폴란드 의용군
폴란드 의용군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의 압제를 받던 폴란드인들은 러시아령 폴란드Polska 땅에 폴란드인 민족국가 건국을 희망해씁니다. 그래서 1914년 폴란드인들은 스스로 폴란드 의용군을 결성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부대로 들어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서 활약을 펼쳤습니다. 폴란드 의용군은 동부전선 남부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지원하며 독립적으로 활동했으며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가며 적극적으로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여 동맹국의 승리에 작지 않은 기여를 했습니다. 폴란드 의용군의 활약을 눈여겨 본 동맹국의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러시아령 폴란드Polska에 폴란드 민족국가 건국을 논의했습니다.


  • 11월 5일 선언

제1차 세계대전 폴란드 왕국 국기
폴란드 왕국 국기

1916년 말 독일제국은 베르됭Verdun 전투에서 큰 실패를 겪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남쪽 이탈리아군과의 전투에서 패전을 거듭하며 후퇴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16년 많은 병력을 상실했고 때문에 더 많은 지원병력이 필요했습니다. 허나 다른 동맹국이었던 불가리아 왕국은 규모가 작아 발칸 전선 외 다른 곳으로도 병력을 파병할 여력이 되지 않았고 오스만 제국은 홀로 여러 전선에서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 두 연합국 강대국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신생 국가를 건국해 동맹국으로 편입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 첫 대상은 동부전선에서 활약했던 폴란드Polska였습니다.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동부전선에서 폴란드Polska 지역을 완전히 점령한 상태에서 폴란드Polska 독립국가를 건국하고 동맹국으로 편입시키면 폴란드인들이 폴란드군을 결성해 동맹국에게 병력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폴란드 왕국 영토
폴란드 왕국 영토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폴란드 왕국을 건설해 주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그 이후의 처신에 대해서는 의견충돌을 보였습니다. 독일제국은 레벤스라움Lebensraum에 따라 폴란드Polen을 독일인들이 살아야 하는 땅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독일제국은 궁극적으로 폴란드Polen 땅에 폴란드인들과 유태인들을 몰아내고 게르만인(독일인)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제국은 폴란드Polen을 독일제국 영토로 편입하려 했습니다. 반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폴란드 왕국을 독립국으로 유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폴란드 왕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를 보호하며 폴란드 왕국과의 공생을 추구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동방의 강대국 러시아 제국의 침공을 대비하기 위해 폴란드 왕국을 독립국으로 두고 우방으로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궁극적인 목표가 달라 의견충돌을 보였지만 당장 폴란드 왕국을 건설해 폴란드 독립국가 건설에 한뜻을 모아 폴란드 왕국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11월 5일 선언 폴란드 왕국 건립
11월 5일 선언

독일제국의 카이저 빌헬름 2세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는 1916년 11월 5일 폴란드 왕국 건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독일제국은 폴란드 왕국에 폴란드인들과 유태인들이 살게 한 뒤 차후에 1914년 9월 독일제국이 대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설계한 9월 계획Septemberprogramm에 따라 폴란드 회랑을 합병할 준비를 했습니다. 즉, 독일제국은 폴란드 왕국을 건설하고 바로 독일제국의 식민지로 건설하려고 한 것입니다.


  • 불완전한 독립국가 탄생

폴란드 왕국 건국 풍자화
폴란드 왕국 풍자화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1월 5일 선언으로 폴란드 왕국의 등장을 선포했습니다. 두 제국은 구 폴란드 입헌왕국이자 당시 러시아령 폴란드 영역을 폴란드 왕국 영역으로 설정했습니다. 폴란드 지억은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항가리 제국이 반으로 분할해 임의로 통치하기러 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제국은 폴란드 국경 계획Polnischer Grenzstreifen에 따라 독일제국 영내에 거주하던 폴란드인들과 유태인들을 폴란드 왕국으로 이주시키는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는 독일제국의 민족청소 계획이었습니다. 허나 아직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에리히 루덴도르프 군부관감은 1916년과 1917년 계획을 완성한 이후에도 승인하지 않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동맹국은 폴란드 왕국의 세부 영토를 정하는 것도 연기했는데 폴란드 왕국의 영토를 러시아령 폴란드 영토로 정할 것인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영토로 정할 것인가를 두고 의논해왔고 폴란드 서쪽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의 국경선은 동맹국에게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입니다.


  • 폴란드 임시 정부 의회

폴란드 임시정부 의회
폴란드 임시정부 의회

1916년 11월 5일 선언에 따라 1917년 1월 14일 폴란드 임시 정부 의회가 결성되었습니다. 폴란드 임시 정부 의회 공석은 25석로 독일제국령 폴란드 출신이 15석,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이 10석을 차지했습니다. 폴란드 임시 정부 의회는 바콰브 비모욥스키를 대통령으로 임명하고 2명의 부통령을 선발했습니다. 폴란드 임시 정부 의회는 각종 정책을 입안하며 폴란드 왕국을 통치했지만 폴란드 임시 정부 의회는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꼭두각시로 동맹군의 군사 관련 행정을 주로 맡았습니다. 폴란드인들은 고대하던 폴란드 민족국가 건립에 횐호했지만 사실상 동맹국의 섭정왕국이라는 점에 분노했습니다. 더욱이 독일제국은 레벤스라움Lebensraum의 완성을 위해 독일제국이 임시지배하는 폴란드 지역을 독일제국으로 합병하려고 했습니다.


  • 멩세의 위기 Kryzys przysięgowy

폴란드 왕국 멩세의 위기
무장봉기를 일으킨 폴란드 의용군

이에 폴란드 의용군은 연합국에 가담해 동맹국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 시도는 독일제국에게 들켰고 독일제국은 폴란드 의용군에게 동맹군으로 가담하라고 압박했습니다. 이에 1917년 7월 폴란드 의용군은 조제프 퓌수드키 사령관의 지휘 하에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 폴란드 의용군은 폴란드 왕국 내에 거주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군 기지를 공격해 병사들을 전쟁포로로 잡았습니다. 조제프 퓌수드키 사령관은 폴란드군 총사령관으로 등극한 뒤 폴란드 무장봉기를 총지휘했습니다. 하지만 곧 독일군이 진압작전을 위해 투입되었고 폴란드군 핵심인물들을 채포해 독일제국 내에서 구금했습니다.


  • 섭정 의회

제1차 세계대전 폴란드 왕국 섭정 카를 스테판 대공
카를 스테판 대공

1917년 7월 일어난 멩세의 위기Kryzys przysięgowy 이후 독일제국은 폴란드인들의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폴란드 임시 정부 의회를 해산하고 1917년 9월 12일 좀 더 자치권을 보장하는 폴란드 섭정 의회를 건립했습니다. 폴란드 섭정 의회 구성원은 러시아 제국 페트로그라드Петроград의 두마(러시아 제국의 하원)의 폴란드 의장 출신들이었습니다. 폴란드 섭정 의회는 입헌군주제로 폴란드 의회가 실권을 장악하며 정치를 하는 체계였지만 국왕의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정부는 11월 5일 선언 이후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사촌인 카를 스테판 대공을 폴란드 왕국의 국왕으로 임명하러 했으나 11월 5일 선언 이후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사망하면서 카를 스테판 대공의 폴란드 국왕 임명 절차는 취소되고 이후로도 폴란드 왕국의 국왕을 선출하지 않으며 폴란드 왕국은 국왕이 없는 왕국으로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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